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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박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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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耳鳴)    
글쓴이 : 박재연    14-02-07 07:24    조회 : 4,876
   당신 귀는 나이를 거꾸로 먹네요!”
   그게 무슨 말이야?”
   없는 소리도 만들어 듣고 있으니 귀가 순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해지고 있잖아요?”
   하늘의 명도 모른 채 나이 쉰을 훌쩍 지난 남편에게 이순(耳順)’이란 정신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당면한 과제인 듯하다.
   걱정 마, 조금만 더 있으면 당신이 하는 말도 안 들리게 될 테니까.”
   남편은 시큰둥하게 대꾸하지만 이건 노화가 한창 진행중이라는 이명(耳鳴)이 틀림없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신체의 균형이 깨지거나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생기는 증상으로 노인은 물론 젊은이들도 많이 앓는단다. 청각은 죽는 순간까지도 남아있는 최후의 감각이라는데 말이다. 그 흔한 성인병 하나 키우지 않기에 건강 체질이라 믿어왔지만, 이날따라 낡은 집의 페인트칠처럼 일어나 있는 남편의 입술을 보니 짠한 마음이 든다. 최근 들어 회사의 스트레스가 극심해진 것 같지만 덜렁대는 나와는 달리 지나치게 꼼꼼하고 세밀한 성격도 한 몫 단단히 챙기고(?) 있음은 안 봐도 비디오다. 혼자만 직장생활 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힘들게 사냐며 위로인지 핀잔인지 모를 야릇한 말을 던진 것도 마음에 걸린다.
 
   2012년 질병관리본부의 보고에 따르면 간암의 원인이 되는 C형 간염 보균자가 50대 남성에게서만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고 이명도 50대가 가장 많아, 60대 이상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비만증가율 1, 나트륨섭취량 1, 황반변성·기관지염 2위 등 50대는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 되었다.
또한 자영업자 부도의 절반이 50대라는 통계와 함께 50대 남성들은 은퇴에 따른 부양 스트레스도 극심하단다. 실제로 친구의 50대 중반 오빠는 폐암이 여기저기로 전이되어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는데도 여전히 직장엘 다니고 있다니, 그놈의 부양책임 때문에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남편에게 얘기를 하니 이해한단다. 자기 같아도 그럴꺼라나.
   마누라와 자식에게는 한없이 후하면서 정작 본인에게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걸 보면 남편의 말도 이해가 된다.
 
   귀만 빼고는 모두 건재하며 당분간 퇴직걱정은 없으니 남편의 정서에는 별 문제 없으리라 믿었는데, 슬쩍 떠봤더니 웬걸 그다지 편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100세 인생의 중간솎음시기라도 되는지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가끔은 지인들의 이혼과 사별을 지켜봐야 하며, 부모님의 별세와 동시에 명실상부한 집안 어른으로 자동 승격되니 그로 인한 심리적 부담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백수자녀와 은퇴한 남편에 등 떠밀려 자아실현과는 무관한 취업 전선으로 내몰리는 중년 여성들도 많다지만 나는 예전보다 더 큰 행복을 느끼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이 50에 가까워지면서는 못 가진 것을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자식 뒷바라지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났으며 아직까진 건강도 좋으니 욕심만 버리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또래의 아줌마들이 백화점 매장에서 고달픈 하루를 보낼 때, 먼지를 일으키며 그녀들 앞을 지나 오늘도 글 쓰러 갈 수 있음은 무엇보다 남편의 그 스트레스덕분이 아니겠는가?
 
  이쯤에서 남편에게 한가지만은 확실하게 약속하고자 한다.
  삼식이가 되더라도 삼식놈이 아닌 삼식씨로 대우해 주겠다고.
 
     <<에세이문예>> 2013.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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