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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추락에 담긴 ‘완곡어법’    
글쓴이 : 박재연    14-02-20 20:09    조회 : 5,761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 직후 그 지역의 한 방송사는 헤드라인에 우리 조종사 4명의 이름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Captain, Sum Ting Wong' (기장 섬 팅 웡)
'Wi Tu Lo' (위 툴 로)
'Ho Lee Fuk' (홀 리 퍽)
'Bang Ding Ow' (뱅 딩 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3음절의 단어들은 사실 조종사 이름이 아니라 중국식 발음으로 저속하게 비꼰 말이었다.
“Captain, Something Wrong" (기장님, 뭔가 잘못됐어요!)
"We Too Low" (고도가 너무 낮아요!)
"Holy Fuk!“ (젠장!)
“Bang Ding Ow!” (쿵 쾅!(의성어), !(감탄사!))
   이러한 해프닝에 대해 방송사는 실수였다고 변명을 했지만 이는 성급하게 우리 조종사들의 잘못으로 몰고 가는 듯한 느낌을 준 것은 물론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라는 비난이 미국 내에서도 거세다고 한다.
 
NTBS(미국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사고의 원인을 놓고 처음에는 기체결함의 가능성을 언급하더니 점점 조종사의 실수 쪽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우선 기장의 비행경력이 짧다는 게 의혹의 시작이었는데 비행을 맡았던 두 조종사의 진술이 서로 엇갈린다는 것에 이어 NTBS의 시각을 확고히 해주는 제3의 조종사가 등장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되었다.
   그들의 섣부른 판단에 든든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이는 아마도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일 것이다. 그는 2009년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책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콕 찍어 얘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말콤은 첨단기술이 일반적인 상업 민항기를 '토스터기'처럼 믿을 만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면서 비행기 추락 사고를 유발하는 실수들은 예외 없이 팀워크나 의사소통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하필이면 1997년 우리 대한항공의 괌 추락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역시나 의사소통의 부재였는데 그런 문제는 경직된 조직문화에 기인한다"면서 특히 우리의 완곡어법을 전혀 완곡하지않은 방식으로 지적한 것이다.
 
    그는 부기장이 기장의 잘못된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위기 상황에서도 애매모호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권위적 문화에서는 미숙한 부기장보다 능숙한 기장이 오히려 사고를 많이 일으킨다고까지 말했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탈무드>>에 나오는 두 이발사를 연상시키는데 한 마을에 헤어스타일이 멋진 이발사와 그렇지 못한 이발사가 있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내 머리를 맡겨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요즘엔 제 머리를 직접 깎는 이발사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의 지적에 대해 책을 읽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궁금해진 것은 물론이다.
   이번 비행에서 오로지 참관만 했다는 제3의 조종사는 뭔가 상황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수차례 경고했지만 앞에 앉은 두 기장이 들은 척도 안했다고 증언을 했다니 그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애국심에 힘입어 대답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던 것일까?
   비행기는 정밀함과 복잡성의 상징이다. 무결점의 품질을 지향하는 식스시그마(six sigma)’가 유일하게 달성되는 분야가 바로 항공우주산업이지만 그 시스템이라는 게 워낙 복잡하다보니 각 단계들은 모두 무결점인데도 그것들이 합쳐지고 나면 뜻밖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상범위 내의 미세한 오차들이 누적되어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런 사고를 정상사고라 부른다(찰스 페로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
아시아나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관제탑의 관제사들은 임무교대 중이었고 자동착륙 유도장치는 공사 중이라 꺼져있었다. 게다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은 지형상 이착륙이 어려운 공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두 있을 수 있는 용인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사고는 큰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있을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 맞물려 일어난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유독 의사소통만을 문제 삼는 건 지나쳐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만도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조종실 내 의견교환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3의 조종사가 증명해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니 의사소통도 비행기 조종 못지않은 고난도 기술임에 틀림없다.
   말콤에 의하면 완곡어법이란 당장 쓰레기통으로 가야 할 권위주의의 유산이지만, 퇴근시간이 다가오는 지금 남편의 회사에서는 말콤이 언어학자 손호민(재미 언어학자. 말콤이 그의 책에서 한국의 완곡어법 사용에 대한 근거로 인용한 학자)을 인용했던 그 완곡한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날씨도 구질구질하고 출출하네”(한잔 하러 가는 게 어때?)
한잔 하시겠습니까?“(제가 술을 사겠습니다)
괜찮아, 좀 참지뭐.”(그 말을 반복한다면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시장하실텐데 가시죠?”(저는 접대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럼 나갈까?”(그럼 받아들이겠네).
 
  <<책과 인생>>  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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