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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박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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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신세계    
글쓴이 : 박재연    14-10-03 13:46    조회 : 7,904
 
   “엄마는 내 얼굴을 왜 이렇게 오이같이 낳았어요?“
어릴 적 딸아이는 자신의 긴 얼굴에 대해 나를 원망하곤 했다. 오이가 아니라 달걀이라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먹혀들기는커녕 도무지 죄 없는 고슴도치만 들먹이는 것이었다. 하긴 나도 맥없이 쭉 빠진 내 하관(下觀) 마음에 들진 않았다. 사각진 얼굴에 적당히 튀어나온 광대뼈가 훨씬 개성 있고 매력적으로 보였는데. 각진 얼굴의 최대 장점은 볼터치를 해야 할 지점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그러니 딸의 불만도 이해할 만했거니와, 내가 낳지도 않았건만 남편의 얼굴 역시 나를 닮은 걸 보면 긴 얼굴은 각진 얼굴에 대해 열성인자임에 틀림없었다. 양호한 기럭지나 하늘로 솟은 콧구멍은 닮지 않고 왜 하필이면 긴 얼굴을 닮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혹시 내 모습이 슬퍼 보일 때가 있다면 그것은 내면이 아닌 얼굴 모양 때문이란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세 부모 아기시술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는 정자 하나에 난자 둘을 결합하는 방법인데 난자의 세포핵 속에 있는 불량 미토콘드리아를, 기증받은 정상 미토콘드리아로 치환하여 수정시키는 것이다. 찬성론자들은 이에 대해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게 아니라 유전질환을 방지하기 위한 인도적인 시술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조작과 방지의 경계선은 모호한 것 같다. 미국의 공청회는 이제부터의 공식적인 논의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곧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세 부모 아기시술은 유전자 변형 기술의 하나인데 이미 원숭이에서 성공한 바 있다. 또한 이미 300여명 이상의 아이들이 치환이 아닌 섞음이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는 주장도 있다. 두 여성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모두 갖고 태어났다는 그 아이들은 X염색체 이상이나 발달장애를 겪고 있다는데, 정체성의 혼란은 장애에 비할 정도가 아닐 것이다.
 
   영화 GATTACA는 유전자 혜택을 받지 못한 열성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리고 있다. ‘GATTACA’는 완벽함을 상징하는 우주 항공사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DNA 분자를 이루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아민(T)의 조합으로서, 유전자만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미래사회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열성인간 빈센트는 천신만고 끝에 그토록 원하던 우주비행사로 선발이 된다. 그가 불가능했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개량된 유전자가 아닌 정신의 힘이요 불굴의 의지였다. 언젠가 바다 한가운데서 우성인간인 동생을 구해내면서 힘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서 나온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에 씌어진 가장 뛰어난 미래소설이라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아이들은 인공수정으로 태어나 유리병 속에서 보육되기에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지능의 우열만으로 장래의 지위가 결정되며 기계적으로 할당된 역할만을 수행하도록 규정되고, 고민이나 불안은 알약 하나로 간단히 해소된다. 완벽한 유전자를 물려주고 싶은 부모의 열망대로 세 부모를 가진 만능의 인간에게 세상은 정말 멋진 신세계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할아버지가 모두 간암으로 단명하신 걸 보면 나 역시 간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딸아이에게 긴 얼굴과 함께 취약한 유전자도 물려주었을 것이다. ‘만들어진몇몇 사람들에게 멋진 신세계는 태어난보통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신세계가 될 것이다. 죽음에도 생명에도 인간의 오만한 개입이 행해지고 있다
. 우리에게 멋진 세상은 정녕 사라진 것일까.
 
     <<한국산문>> 2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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