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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 가라사데    
글쓴이 : 문영일    14-11-16 20:55    조회 : 6,359
                                     붕어 가라사데
 
                                                                                                             문 영 일
 지난 5월 초 봄이었다. 충북 진천. 초평저수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한 식당 ‘조용한 방’ 이었다. 주인인지 분홍빛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붕어찜 두 냄비를 상에 내려놓았다.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쥔 양반이 새벽에 잡은 놈을 오전 내내 졸였다며, 그 집 단골이자 날 초대한 친구에게 생색을 냈다. 그리고는 내 앞에 놓인 붕어찜을 턱으로 가리키며 야릇한 눈빛과 웃음 띤 얼굴로 내게 말 했다.
 
 “어머나! 사장님 것은 수놈이네, 오늘 밤 사모님께 힘 좀 쓰시겠어. 호호호.”
맞장구치듯 내가 빙긋 웃으며 무언의 답례를 보낸 것은 그놈의 붕어가 과연 팔뚝만 한 게 먹음직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함께 졸인 무시래기 위에 누어있는 큼직한 붕어에서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붕어찜은 용봉탕과 함께 그곳에서 꽤나 알려진 음식이란다. 사슴피, 자라탕, 뱀탕, 개구리 탕, 정력에 좋다면 기를 쓰며 찾아다니는 호색한들도 즐겨 먹는단다. 매콤하고 비릿한 냄새가 방안 가득 피어올라 우선 식욕을 돋구었다.
 
  친구가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미 듬성듬성 칼집이 나 있는 봉어의 등살 쪽에 젓가락을 대고 쭉- 훑어 내렸다. 고추장 양념에 졸여져 겉은 붉은데 속살은 희다. 입에 넣고 씹으니 매콤하고, 비릿하고, 고소하다. 먹을 만했다. 정력에도 좋다는 불로장수의 음식이 아닌가! 다시 젓가락을 놈의 배 쪽에 대려는데 아니! 붕어 그 녀석의 뻐끔한 눈이 날 노려보고 있지 않은가! 그 것도 차라리 연민의 눈초리로. 나도 녀석의 눈에 초점을 고정시키자 그의 눈동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날 새벽, 자기가 고놈의 지렁이 미끼를 물지만 않았어도 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을 거란다. 주방장인지 식당주인인지 가슴이 큰 여자가 자기 몸에 비늘을 걷어내고 듬성듬성 칼집을 내는가 싶더니 고추장에 갖은 양념을 풀어 바르더라는 것이다. 벤 상처에 소금을 뿌려봐라! 얼마나 쓰라리고 아픈지. 그리고는 한참이나 내버려 두었다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를 열고 이미 푹 삶겨져있는 무시라기 위에 자기를 올려놓고 졸임을 시작했다는 거다.
놈의 머릿살 근처로 젓가락을 옮기려는데 미리 알았는지 꺼벙한 눈으로 힐문하듯 말했다.
“여보슈, 정력들 너무 좋아하지 마슈!” 나이도 잡술만큼 잡순 양반들이 너무 밝히지들 말고 순리대로 살라는 거다. 아니! 이놈이 이번에는 친구까지 싸잡아 능멸을 하는 게 아닌가. 왕년에 자기가 초평 저수지에서 한가락 했을 때라면 모르겠단다. 이제 늙어 기력도 없거니와 만신창이가 된 자기 몸이 ‘개뿔이나 무슨 보양이 되겠냐.’는 거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비늘은 전복 속껍질 같이 찬란했고 몸매는 날렵한 제비 같았단다. 유연한 지느러미를 휘저으며 헤엄을 치노라면 첫사랑 붕순이는 말할 것도 없고 터지게 알을 밴 다른 암컷들도 자기 앞에서 살랑살랑 교태를 부렸다나. 그리고는 갈대나 수초가 빼꼭한 곳으로 자기를 유혹하며 끌고 갔단다. 이쁜 짓, 고것들이 촘촘한 수초 사이에 수백, 아니 수천 개 알을 낳고는 ‘언능 책임 좀 져 줘요.’ 코맹맹이 소리를 하면서 꼬리를 흔들어 대면, 자기는 부르르 온몸을 떨며 삭신이 노곤 할 때까지 사랑을 뿌려주었다나. 다른 수컷들은 감히 얼씬도 못해 지금도 그 호수에는 자기 새끼들이 부지기수란다. 따뜻한 봄 날 어린 새끼들과 조무래기들을 앞세우고 회유로를 따라 행차하는 날엔 암컷들이 자기 뒤꽁무니를 뒤질 새라 따라다녔단다.
그의 자랑을 제대로 받아드려 준다면 자기가 ‘밀림의 라이언 킹’ 같은 이를테면 ‘저수지의 붕어 킹’이란 말이 아니겠는가!
 
  놈의 앞부분은 이미 가시만 앙상하게 남았다. 가능한 뒤집지 말고 먹어야 한다 했지만 난 조심스럽게 놈을 뒤집어 꼬리 쪽의 살점을 훑어 내렸다. 잔가지와 비늘이 함께 씹혀 뱉어내고 싶었으나 놈의 자랑이 하도 아니꼬워 조심하며 자근자근 씹어 삼켰다. 술잔을 한 잔 들이키고 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면 그렇지 놈인들 별수 있으랴! 힘없이 들려준 그의 말은 동정심마저 일게 했다.
  어느 날 부터 그의 찬란했던 금빛 비늘은 패장의 갑옷같이 추레해 졌다. 따르던 새끼들이 슬슬 자기를 피하는 것쯤은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봄이 되니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마음은 싱숭생순, 몸은 근질근질, 춘정이 발동했다. 때마침 첫 사랑 붕순이가 앞서가기에 기를 쓰고 다가갔더니 젊은 것들만 따라오라는 듯 ‘휙’하니 내빼버렸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자기랑 마주쳤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모른 척 피해 다녔다. 그의 질투는 분노가 되어 가슴에 켜켜이 쌓여갔다. 몸은 날로 굼떠지고 기력마저 쇄잔 해져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물 빨아드릴 수 있는 날까지 플랑크톤이나 들이마시고, 재수좋은 날 자기처럼 비실비실한 작은 벌레들이나 잡아먹었어야 했단다. 누가 뭐라 하던 혼자 노는 방법을 배워 가며 유유자적 살았어야 했다. 그러다가 생을 마감하는 날 호수 어딘가 갈대 숲 사이에서 자는 듯 죽어 생을 마쳤으면 좋았으련만 그놈의 미끼를 잘못 물어 그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도 그새 놈의 살을 다 발라먹어 뼈와 잔가시만 고스란히 남겼다. 그는 마치 쓰다버려진 머리빗같이 되었건만 남겨진 머리통과 눈만은 아직 살아있는 듯 했다. 휑한 그의 눈에서는 회한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았다. 갑자기 측은해 졌다. 이번에는 내가 연민의 눈길로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가 마지막 말을 이었다.
  그 날 새벽, 잠이 일찍 깨어 어슬렁거리다가 그놈의 지렁이를 발견했다. 인간들이 내려놓은 미끼 같아 자기가 늘 식솔들에게 주의를 주었듯이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전 날 부실하게 먹어 배도 고픈데다 침침한 눈으로 그 먹음직스러운 지렁이를 보니 ‘잠간 눈에 뭐가 씌웠었다.’는 거다. 지렁이 주의를 몇 번 돌다가 꼬리로 ‘툭툭’쳐 보았더니 괜찮더라나.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돌아서는데 갑자기 붕순이 얼굴이 ‘확’ 떠올랐단다. ‘애라 모르겠다.’ 주책이지 단 한 번만이라도 힘을 써 보고 싶어 덥석 물었던 게 천추의 한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디 너 붕어뿐이랴! 미끼에 물린 자들이….
수신제가도 못한 자들이 나랏일을 맡으려다 망신만 당했다. 승승장구 높은 관직에 올라 흠모의 대상이었던 양반이 어쩌다가 사랑이란 덧에 걸려 ‘가문의 영광’을 ‘가문의 수치’로 만들어 버렸다. 온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재벌, 권세가들이 온갖 영화를 누리면서도 부정한 짓을 저질러 쇠고랑 찼다. 일시적 욕망을 참지 못하고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는 짐승 같은 자들은 족쇄를 차고 평생 살아야 한다. 모두 그놈의 미끼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날, 그 붕어눈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고 내게 일러주었던 말들이 고맙고 고맙다.
 
붕어가 내게 가라사대  ‘미끼를 조심 할 지어다!’
<2014. 5 월호 월간 <<순국>>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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