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채선후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champ5263@hanmail.net
* 홈페이지 :
  흙은 그를 훔쳤다- 채선후    
글쓴이 : 채선후    14-11-21 12:53    조회 : 4,876
흙은 그를 훔쳤다

 
숨은 흙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 흙에서 잠자던 숨이 깨어나면서 생명의 싹이 돋아나기도 한다. 또 흙은 자러 들어오는 생명에 깃든 숨을 맡겨 놓기도 한다. 그런 흙은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 생명의 숨을 훔칠 수 있다. 그때는 기별도 주지 않고 느닷없이 달려들어 숨을 훔친다.
 
계절은 오고 가야 할 기별을 서로 주고받고 있었다. 겨울은 더 눌러 있을 듯 머물렀지만 봄은 겨울을 쫒아낼 기세로 왔다. 그렇게 봄이 시작되던 삼월 어느 날 아침. 모든 게 어제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는 무언가 쫓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성급히 일어섰지만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변소를 바라보더니 지팡이를 찾았다. 그는 천천히 지팡이를 짚으며 밖으로 나왔다. 현관문은 무겁게 닫혔다. 그는 기둥에 기대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날따라 담배 연기는 무언가 쫓아오듯 빨리 피어올랐다. 지팡이를 내딛으며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변소로 향했다.
 
그는 변소에서 나오자마자 땅바닥에 쓰러졌다. 집 안에 있던 부인이 이를 보고 정신없이 뛰어 나갔다. 그의 부인은 그가 발을 잘못 디뎌 넘어졌는가 싶었다. 천천히 그를 흔들었지만 그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옆집 아줌니까지 달려와서 정신없이 그를 흔들었다. 점점 그의 몸은 힘없이 늘어졌다. 숨소리도 작아지고 있었다. 그의 부인 얼굴빛은 점점 굳어졌다. 그는 구급차에 실렸다. 그가 쓰러지면서 몇 년 전 사고로 뇌수술한 곳에 피가 고인 것이다. 하루가 지나자 다시 그는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육신이 무너진 후 가야 할 길을 재어서 무엇 하겠는가? 누구나 그렇게 왔다 가는 길이거늘! 가는 길에 눈물이 나는 건 걸었어야 할 길을 남기고 떠나기 때문이다. 그는 오십 해를 걸었다. 그가 걷지 못한 길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가 걸었던 길은 갈대가 많아서 바람 소리가 컸다. 그리고 모래가 많아 흙먼지가 많이 날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떤 때는 잘 보이는 길을 찾다가 길을 잘못 들기도 했으며, 그의 길은 늘 배고팠고, 육신은 병들어 고달팠다. 가진 것 없는 자에게는 육신이 고달플수록 마음은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그는 늘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움켜쥐고 살았다. 그의 숨은 삶 속에서 헐떡거렸다. 그래도 그 길에서 누구보다 사랑을 퍼 주고 싶었다. 그는 담배 연기를 뿜으면서도 사랑해야 할 이유를 생각했고, 때로는 술로 세상과 자신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는 그랬다.
 
싸늘해진 육신이 잠들어 있는 관이 산 아래 도착했다. 햇살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더 또렷하게 기억하고 싶어서일까 삼월의 햇살은 유난히 맑았다. 관이 들렸다. 그의 형이, 처남들이, 그가 보고팠던 옛 친구들이, 그와 술을 나눴던 이웃이 그가 누워 있는 관을 들었다. 관은 산길을 따라 올랐다. 삼월 산길은 질퍽했다. 그 길에 발자국들로 가득했다. 마치 그를 배웅한 자를 기억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 발자국들은 도장처럼 박혀 있었다. 관은 산 중턱 그가 놓일 자리까지 올라왔다. 지관은 풍수를 살피며 관이 놓일 자리를 다시 잡았고, 상여꾼들은 땅 아래로 다섯 자, 폭 다섯 자, 길이 일곱 자로 땅을 팠다.
입관! 관 들어가요!
그는 파 놓은 흙구덩이로 서서히 내려갔다. 관 위에는 몇 푼 노자 돈이 놓여졌다.
 
흙은 그를 훔쳤다. 그것도 오십 해 동안을 말이다. 그리고 그를 좁고 덜커덩거리는 길 위에 혼자 덩그러니 버렸다. 그랬던 흙이 이제 그를 있던 곳으로 가라 하는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낯선 길 위에서 말이다.
 
한 삽 흙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자네를 훔친 나를 용서하게. 나는 이곳이 이렇게 자네를 힘들게 할 줄 몰랐네. 이곳에 혼자 두어 정말 미안하네. 진심으로 미안하네!’
 
또 한 삽 흙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 자네를 잊지 않겠네! 내가 자네를 훔쳤어도 자네는 나를 한 번도 원망다운 원망을 하지 않았네. 오히려 나를 정으로 밟아 주었네. 오늘은 자네를 위해 눈물을 흘리려네. 너무 고마워이. 정말 고마워!’
 
이번에는 그가 말했다.
저는 당신이 혼자 버려두어서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가던 길도 멈추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버려 둔 길은 멈출 수도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저를 힘들게 했고, 지치게 했으며, 울분 속에 있게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사랑하는 이를 만났습니다. , 그이는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그는 뜨겁게 마지막 눈물을 뿌렸다.
 
그 눈물에 흙은 가야 할 길도 잠시 잊었다. 그리고 그에게 약속했다.
자네를 훔친 죄로 내 이제부터 그대를 따뜻이 안아주리라. 내 품에 안겨라. 편안히!’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흙이 단단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여행이다. 그런 여행이 빨리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 도 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면 그때는, 그때는 그의 가족도 함께 죽음이 드리운다. 현실이 보이지 않는 죽음 말이다. 나도 그랬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위로 흙이 한 삽, 한 삽 뿌려지면서 모든 빛도 흙과 함께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흙이 너무 싫어 안간힘으로 외쳤다.
--! - 부지!”
 
나는 아버지에게 많은 죄를 지었다. 아버지 것을 너무 많이 훔쳤다.
 
나는 아버지 가슴을 훔쳤다. 만약 내가 훔치지 않았다면, 그 가슴은 더 넓은 세상을 품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 다리를 훔쳤다. 만약 내가 훔치지 않았다면, 그 다리로 좀 더 넓은 세상을 밟고 다녔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 방패도 훔쳤다. 만약 내가 훔치지 않았다면 그 방패는 아버지를 힘들지 않게 단단히 막아주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 시간까지도 훔쳤다. 만약 내가 훔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하고 싶었던 일을 더 많이 하셨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훔친 것이 이렇게 많은데 내 어찌 허술히 살겠는가!

 
   

채선후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5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90267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92271
5 첫눈을 기다리다 -채선후 채선후 11-24 5645
4 십 오년 막걸리 -채선후 채선후 11-21 6558
3 나이는 시끄럽게 오다 채선후 11-21 6076
2 흙은 그를 훔쳤다- 채선후 채선후 11-21 4877
1 설거지 채선후 11-21 5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