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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을 기다리다 -채선후    
글쓴이 : 채선후    14-11-24 12:12    조회 : 5,641
3. 첫눈을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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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박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아침부터 오기 시작한 눈이 어둑해진 저녁이 되어서도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다. 조금 오다 말겠지 하던 눈은 벌써 일주일째 이렇게 내리고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 지대가 높은데다 눈이 워낙 많이 쌓여 자동차가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옆집의 이야기를 들으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내일 당장 아이들 학교 보낼 일이 걱정이었다. 그래도 첫눈을 보니 반가웠다. 올해는 첫눈 치고 제법 많이 오고 있다. 뉴스에서는 대설주의보라는 보도가 빠지지 않고 흘러나오고,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역시 도로가 위험하다는 방송을 긴급히 하고 있다. 겨울이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물어볼 때면 제일 먼저 소나무 위에 버섯모양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흰 눈이 떠오른다.
 
! ! !
눈은 이라고 소리로 내뱉어질 때보다 손끝에서부터 울리기 시작한다. 드르 ~! 마지막 달력 장을 찢는 소리는 첫 눈을 기다려 왔다는 울림이 된다. 변함없이 겨울이 되면 보는 눈이지만 첫눈은 기다림의 울림이 묻어나서 좋다. 그 울림을 따라 겨울의 아름다움을 그리게 했던 설국의 감동이 밀려온다. 설국의 눈()은 나에게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첫눈 내리는 것을 보자, 또 다시 그 아름다움이 잔잔하면서도 거센 파도가 되어 내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올 해의 첫눈은 유난히 알이 둥글면서도 푸지게 오고 있다. 내뱉고 싶었던 말들을 밀어 내듯 함박눈은 알알이 내려오고 있었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차분히 내려오고 있다. 눈에 꽁꽁 매인 이런 날은 따뜻한 이불속에서 설국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감동 속으로 빠지고 싶어진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빌려와야 되는 처지라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오후 내내 라디오 주파소만 이리저리 돌리면서 무덤덤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때까지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차곡차곡 쌓이면서 하얗게 할 말을 쌓아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나도 무슨 말이든 내뱉고 싶지만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다. 나는 좀 더 기다리고 싶은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말들을 곱씹으며 가만히 바라보면서 기다리고 싶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에 십여 년 걸쳐 하고 싶었던 말들을 조용히 쏟아 부었던 것처럼 그렇게 기다리고 싶었다.
나도 십 여 년을 기다리면 하고 싶은 말들을 글로 쏟아 부을 수 있을까? () 속에 숨겨진 말들을 읽어낼 수 있을까? 내 눈()에는 그저 하얀 눈()으로만 비춰지고 있을 뿐인데 무엇을 읽어 낼 수 있을까? 설국을 마음 속 깊이 되새기게 한 고마움의 뜻으로 유리창 앞에 서서 입김을 불어 하얀 눈이라고 써 본다. 그래도 눈()은 내 말에는 관심이 없는가 보다. 아니면 내 성의가 성에 차지 않는지 더 굵게 쌓이고 있다. 나는 눈()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은 무언가 닿기만 해도 순식간 그 모습은 변한다. 녹으면 작은 물방울이 되어 남는다. 나중에는 그것마저도 사라질 것이다. ()을 바라보는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가와바타는 변하지 않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했다.
사라질 아름다움이 잔뜩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니!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 년을 기다려온 눈이지만 아껴두며 보고 싶어졌다. 좀 더 기다렸다 천천히 보고 싶었지만 더는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시끌시끌한 것이 보니 눈싸움을 하고 있는가보다. 그 웃음소리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눈을 기다려 온 이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눈을 반기고 있었다. 무릎까지 내린 눈 위로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소리가 났다. 뽀드득! ()은 소리도 있었다. 그 소리도 눈이 사라지면 같이 사라질 것이다. 녹아지면 듣지 못할 소리라 생각하니 귓구멍 깊숙이 담아 두고 싶었다. 소리 없이 조용히 사라질 줄만 알았는데 다시 소리가 되어 내 귀로 날아든 것이 기특했다. 그 소리는 제법 묵직하게 내 발밑에서 울리고 있었다. 이 묵직함도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이다. 오늘 내리는 함박눈은 쌓일 눈이 아니라 이미 사라지고 있는 눈()으로 보였다. 조심스럽게 두 손은 펴고 가만히 있으니 살포시 내 손바닥 위로 한 송이 앉았다 순식간 녹고 있었다. 그 순간 무언가 녹일 수 있는 뜨거움이 내 안에 있음을 보았다. 내 안의 열기가 녹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미 눈은 뜨거운 불을 품고 내려오는 것이다. 눈은 내가 기다릴 수 있도록 불을 품고 있는 것이다.
 
~! 이렇게 사라지고 있구나!
나는 손 위에서 너를 녹이고, 너는 나를 품으면서 이렇게 사라지고 있구나!
 
나는 첫눈을 기다린다. 그 이유는 첫눈에서 불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로 또 다시 일 년을 살고 싶었다. 그렇게 첫눈은 일 년 동안 나를 얼지 않고 기다릴 수 있도록 뜨겁게 불을 지펴 주고 있었다. 그 불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일 년을 산 것이다. 내 손 위에서 녹은 눈은 물방울이 되어 내 발등위로 톡 떨어졌다. 그 울림은 기다릴 것이라는 약속이 되었다. 또 다시 나는 너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나를 이어줄 말들을 찾아 불을 지필 것이다. 나도 첫눈이고 싶다. 사라지는 것이 좀 긴 첫눈. 나는 언제 녹아 사라질까? 나는 다시 펜을 잡는다. 그리고 그 속에 내가 녹아져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이다. 내가 써 댄 글이 묵직하다 해도 눈처럼 사라지길 바란다. 누군가 내 글을 읽었을 때, 읽는 이의 눈() 속에, 심장 속에 녹아 사라지길 바란다. ‘뽀드득이란 소리조차 없이, 물이 눈을 삼켜 버리듯 그렇게 녹아 사라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심장 속에 뜨거운 불이 지펴지길 바란다. 첫눈처럼.
 
지금쯤 눈이 얼마나 쌓였을까? 하늘은 점점 검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지만 세상은 점점 하얀색 도화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옅은 어둠 속에서 흰빛은 눈()이 부셨다. 하지만 나는 눈()보다 기다란 싸리 빗자루에 더 쏠렸다. 싸리 빗자루 끝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길게 나오고 있었다. 눈을 치운다던 녀석들이 빗자루를 휘두르며 장난을 하는 것이다. 한참 동안 아이들은 그렇게 눈과 함께 놀면서 또 눈을 쓸었다. 그 빗자루 끝을 바라보고 있으니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애졌다.’는 설국이 시작되는 글귀가 떠오른다.
아이들이 장대 빗자루를 휘두를 때마다 내 눈()도 기다란 장대 빗자루 끝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때마다 내 머릿속은 밑바닥까지 점점 하애지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아이들 옷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엄마가 장난치지 말랬지?”
내 얼굴은 금방 붉게 달아올랐다. 벌써 울그락 불그락 열이 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첫눈의 뜨거움이 벌써 내 속으로 들어와 이렇게 얼굴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올해 첫눈은 열이 많은가 보다.
 
이날의 눈이 가득했던 하늘은 아이들의 작은 그림자가 지상에서 거꾸로 은하수에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은하수에 가득한 별 하나하나가 또렷이 보일 뿐 아니라, 군데군데 광운(光雲)의 은가루조차 알알이 귀에 들릴 정도로 또렷한 하늘이었다.
(설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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