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 나는 삶
새벽부터 내리는 비 내음과 생선 비린내가 노량진 수산시장 바닥을 적시고 있다. 질척한 시장 복판을 지나 한 가게 앞에 섰다. 손님이 가장 많은 곳이다. 수족관에는 이름 모를 생선들이 누군가의 선택 앞에 백척간두 숨을 쉬고 있다. 생선을 고르는 사람들, 흥정을 마치고 회 뜨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흥정을 마친 생선들은 손질하는 사람에게 넘겨진다. 살고자 팔딱이는 생선들의 몸부림. 머리를 잘린 생선이 도마 옆 못에 꿰어진 채 잔 몸부림을 친다. 아! 잔인하다. 그러나 마땅히 눈 둘 곳이 없다.
생선을 손질하던 남자가 다가온다. 그는 통통한 살집의 생선 한 마리를 뜰채로 낚아 내게 들이민다. 초여름부터 서해 남쪽에서 잡히는 민어란다. 백성들의 물고기였다는 민어(民魚)가 앞서 흥정한 사람들의 생선보다 배는 비싼 가격이다. 어리숙한 나는 가끔 상인들의 희생양이 된다. 내 어리숙함을 남자가 눈치 챈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망설이는 내게 성질 급한 상인은 작은 광어 한 마리와 매운탕거리 한 마리를 덤으로 준다고 한다. 몇 마디 말없이 두 마리나 덤으로 받아 뿌듯해하며 흥정을 마친다.
내 선택이 생선들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 흥정을 마친 세 마리의 생선들은 차례로 도마 위에 옮겨져 생사를 달리할 것이다. 마지막 덤이 된 삼식이란 놈은 참 못난 얼굴을 하고 있다. 잠시 바라보다 미안한 마음에 눈길을 돌린다. 나의 이중성에 기분이 묘하다. 생선을 덤으로 받아 느끼는 뿌듯함은 무엇이고, 살고자 몸부림치는 생선에 대한 미안함은 무엇인지. 하긴 나의 이중성이 이뿐이겠는가! 삶에 초연한 체 하면서 지금 내 혈관을 팔딱이게 할 싱싱한 것을 사기 위해 비린내 나는 시장에 서있다.
내 헤모글로빈수치는 정상인의 절반이다. 체질상 육류를 멀리했던 나는 한의사의 권유로 생선회를 먹기 시작했다. 그동안 입에 대지 못했던 날것을 부족한 헤모글로빈수치를 채워 볼까 삼킨다. 건강한 삶에의 욕망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가고 있다. 궂은 날 시장 한가운데 서있는 내 모습이 살고자 버둥대는 생선처럼 처량하다.
빛나던 은빛 비늘의 생선은 두 개의 접시 위에 속살만 남겨졌다. 세상은 저들의 몸부림을 벌써 잊었다. 또 다른 생선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다. 생사를 가르는 순간은 사람이나 미물에게나 다를 것 같지 않다. 찰나의 문턱 앞에 생과 사는 마주하고 있다. 삶과 죽음은 상대적 개념으로 공존한다. 자연의 흐름일 뿐, 시작도 끝도 아니다. 몸은 한 생을 건너기 위한 나룻배라고 한다. 그러나 미욱한 나는 이생에 인연 맺은 허름한 육신에 애착한다. 흙과 바람으로 돌아갈 몸의 유희에 농락당한다. 찰나생멸(刹那生滅)하는 존재에 집착한다. 신안 앞바다에서 잡혀왔다는 한 마리 은빛 민어가 내게 생사를 일깨운다.
식탁에 올려 진 연분홍빛 속살의 민어. 내 머릿속에는 비린내 나는 시장 풍경과, 머리 잘린 채 몸부림치던 생선의 잔상이 남아있다. 민어를 처음 먹는다는 친구들의 호들갑에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다. 그들의 입맛 다시는 소리에도 식욕은 생기지 않는다. 마지못해 몇 점 삼키고 젓가락을 내려 놓는다. 삶에의 탐욕도, 존재의 집착도 함께 내려 놓고 싶다.
한때 드넓은 바다에서 자맥질하던 민어는 붉은 피가 되어 내 혈관을 타고 유영(遊泳)한다. 내 삶은 생선들의 비린내 나는 생명과 함께 한다. 내 삶이 다하는 날 나와 함께 흙과 물, 불과 바람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늘도 생각은 비약(飛躍)의 날개를 달았다.
<한국산문 2013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