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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욕지도에 뜨다    
글쓴이 : 김순례    15-01-08 16:02    조회 : 5,953
                                   섬, 욕지도에 뜨다
                                                                                                                     김 순 례
 그때 그 멤버가 다시 뭉쳤다. 도저히 합을 이룰 수 없는 부정교합의 조합이다. 세월을 낚는 강태공, 호스피스 수간호원, 자영업자 우리부부가 재회를 했다. 넷은 일 년 전 금호도 여행 멤버였다. 우리의 교집합은 여고동창 숙과 나로 비롯된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순례야 욕지도 가자!”
 “그래 가자!”
 
 졸지에 맺어진 약속이었다. 언제 왜 가냐고 묻지 않았다.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어 가면 그만이었다. 부산에 살던 A는 숙의 초등학교 남자동창이다. 생의 많은 우여곡절을 건너 알 수없는 지병으로 잘나가던 사업을 모두 접고 혈혈단신 욕지도에 닻을 내렸다. 낚시를 좋아하는 그가 선택한 인생 막바지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자신의 삶과 조우하고 지난날과 화해하는 시간이다. 그를 방해하기 위해 악동들이 떴다.
우리나라 전국 3,510개의 섬 중에 마흔 네 번째 크기의 욕지도는 12.62㎢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모양도 크기도 각각 다른 한려수도에는 둥둥 떠 있는 수 백 개의 섬이 있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 항에서 뱃길로 32km 거리의 남해상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의 섬사람들은 고기잡이배를 타거나 비탈길을 개량하여 고구마와 감귤나무를 심어 생활한다. 섬 중앙에 우뚝 솟은 천왕산은 주말이면 많은 이들이 등산과 산책로를 오간다. 여행객이 많은 주말이면 예약하지 않으면 숙소 잡기가 힘들 지경이다. 섬 주변 21Km 일주도로는 산악자전거, 섬 마라톤 코스로도 많이 이용된다.
 
 호스피스 수간호원인 숙이는 A에 대한 아픈 소식을 듣고 마음이 쓰였나보다. 찾아보고 이것저것 챙기고 사랑의 잔소리도 실컷 퍼 부어주고 와야 할 것 같은 오지랖이 도졌다. 외모에 관심이 없는 A를 위해 옷가지 몇 벌을 준비하고, 밤새워 총각무김치를 담그고, 빵을 굽고 나물 몇 가지를 데쳐서 비닐봉지에 꽁꽁 묶으며 부산을 떨었다. 아마도 가정과 혈육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 주고 싶은 모양이다. 혈육이 없는 A에게 평소에도 진심으로 형제이상으로 마음을 써주는 우정이 고귀한 빛을 발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동병상련의 아픔을 측은하게 바라보아주며 서로를 형제처럼 의지했다.
 숙이 또한 남편과 별거로 혼자 어린 딸 셋을 키우며 억척같이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다. 직업의식이 도져서 주변에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픈 사람들을 그냥 놔두지 못하는 그녀는 천생 백의의 천사였다. 자기에게 다가온 현실(남편의 외도)이 믿기지 않아 그것을 잊고자 더욱 몸을 아끼지 않고 주변사람들을 돌보다 그녀 자신이 병들고 말았다. 지천명에 생긴 병은 자신을 사랑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며 평생 지고 가야할 십자가라며 그녀는 조심스레 웃었다.
 
 섬에 왔으니 갯바위 낚시 체험을 해봐야 한다는 A를 따라 생전처음 갯바위 낚시를 했다. 주섬주섬 낚시 도구를 챙겨 A의 뒤를 따라 바위들이 뾰족뾰족 드러난 길 아닌 길을 아슬아슬 파도를 비껴가며 돌고 돌아 자리를 잡았다. 갯지렁이를 찌에 끼워 바다에 던져놓고 무상무념 찌를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파도소리 시원한 바람 동글동글 물무늬를 그리는 찌 주변을 바라보노라니 제법 오래 된 낚시꾼 같았다. 가르쳐준 대로 찌가 입질을 하자 낚싯대를 쳐들었다. 에구머니나! 고기가 낚였다. 멍청한 고기가 내 찌에 물렸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분위기 반전, 상승기류를 타며 우리 모두 한 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제 머잖아 강태공 한 사람이 나오겠다고 야단법석들이었다. 그 바람에 너도나도 욕심이 생겨 조용하게 낚싯대를 째려보게 되었다. 첫 수확치고 제법인 옥돔 등 몇 마리를 챙겨와 숙의 요리 실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매운탕과 두툼한 회로 변신한 바다가 우리들 입을 행복하게 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정 현종 시인의 시처럼 우리들은 하나하나의 개체가 개성이 각각 다르게 살아온 섬일지도 모르겠다.
 
 그 섬에서 또 하나의 섬 숙자 씨를 만났다. 진주에서 이 섬에 여행 왔다가 첫 눈에 반해 그날로 빈집을 사서 14년차 귀촌 중이다. 섬에 닻을 내린지 3개월 밖에 안 된 새내기 A를 극진하게 보살피고 친구처럼 지내는 화끈한 그녀였다. 병색이 완연한 A를 두고 섬사람들이 수군수군 거릴 때 용감한 그녀가 보호자처럼 그를 챙겼다. 그녀 또한 14년 전 그들의 텃새를 겪었던 터라 기꺼이 A의 방패가 되어 주었다. 늦은 나이에 약초공부를 해서 산과 들을 찾아다니며 구석방 하나 가득 약초와 효소를 만들며 세월을 낚는 그녀와 세상을 등지고 오직 자신 안에 어둠과 마주하며 낚시를 하며 세월을 낚는 A는 동갑나기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숙자 씨의 남편은 진주에서 직장을 다니며 주말이면 욕지도를 오가는 주말부부였다. 처음 본 우리 일행에게 장작을 땐 가마솥에 온갖 약제를 넣고 푹 고아서 뽀얗게 우러난 삼계탕과 특별한 술(양귀비로 만든)로 특별한 만찬을 나누었다. 처음 본 사람들과 이렇게 하룻밤을 보내며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그곳이 섬 이었기 때문일까.
 
 IMF의 여파로 한국에 설 땅이 없어진 남편이 물질을 찾아 중국으로 떠났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자기의 가치관을 쫒아 무언가를 찾아 나서지만 결국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는 모습으로 완결되어 진다는 것을 느낀다. 남편과 나, A와 숙이는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물질만능시대에 ‘네가 살아야 내가 사는’ 정으로 뭉친 사람들이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만나듯이 우리는 정서의 고갈을 채우는 공생관계라고 감히 말해본다. A는 평소엔 옷에 대해 관심도 없더니 숙이 가져온 바지와 내가 선물한 티셔츠를 입고 아이처럼 흡족한 듯 거울을 보며 그 옷을 벗을 줄 몰랐다. 틈만 나면 엄마처럼 “굶지 말고 꼭꼭 밥 해 먹고 깔끔하게 입고 다니라”고 이르는 숙과 “알았다”고 끄덕이는 A를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잔소리가 그리웠는지 역발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란다. 무엇이 이곳으로 우리의 발길을 돌리게 했을까? 바다에 둥둥 떠 있어서 육지에 닿을 수 없는 외로운 섬 같은 인생, 그 작은 섬들이 욕지도에서 뭉쳤다. 2박 3일 동안 욕지도가 들썩였다.
 언덕위에 그림처럼 하얀 작은 교회에서 마침 주일을 맞아 친구와 함께 예배를 보았다. 우리 일행처럼 여행객 몇 명과 모두 합해도 15명 정도였다. 이빨이 다 빠진 80대 할머니 권사님의 시류를 다 읽고 있는 절절한 기도소리에 눈물이 절로 났다. 숙자 씨가 빌려준 작은 경차를 타고 섬 일주를 나섰다. 경치 좋은 곳곳에는 예쁜 펜션들이 앉아있었고 폐교는 텐트촌으로 변해서 야영하는 여행객들도 눈에 띄었다. 화초 양귀비꽃이 만발한 언덕에서 사진도 찍고 그렇게 우리가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A는 욕지도 특산물 고구마를 한 상자씩 안겨주었다. A를 위로하러 갔다가 오히려 우리가 위로받고 힐링을 하며 떠난다. 우리 모두는 한데 엉켜 부둥켜안고 또 다음을 기약했다. 부둣가까지 배웅 나온 A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우리를 떠나보내고 그는 곧 병원으로 입원하러 가야 한단다.
 또다시 섬들이 흩어져야 할 시간이다. 섬은 멀리서 바라볼 때 더 아름답다. 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 본 내면의 섬은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떠나온 지 한 주도 안 되었는데 벌써 그 섬들이 보고 싶어진다. (2014. 6.10)
 
                                              2014.10 <순국)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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