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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고등어    
글쓴이 : 공해진    15-02-27 19:28    조회 : 4,405
서산낙일(西山落日).
하늘을 보니 온통 붉은 기운이었다. 쓸쓸한 아버지는 고등어 몇 손을 들고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소를 팔고난 다음 장터에서 막걸리 한사발로 서운한 맘을 달랬다. 소 판돈은 자식 학비로 보낼 양 한 푼도 헐고 싶지 않았지만 빈손이 걸려 큰 맘 먹고 집어온 것이 자반고등어였다. 새끼를 밴 듯 희한하게 꿰어 ‘저건 도대체 한 마리야, 두 마리야?’ 하고 궁금했지만 물어 보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뒤뜰 장독에서 꺼낸 된장으로 찌개를 준비하였고 밥그릇사이에 놓인 고등어구이는 그날 저녁 식탁을 도드라지게 하였다.
 
등이 푸르고 배가 하얀 고등어는 군집 안에서 자라고 수천 킬로의 파도를 가르며 제 몸에 맞는 수온과 먹이를 찾아 우두머리가 이끄는 대로 끊임없는 물보라를 일으킨다. 산란을 하기 위하여 지나가는 날짜와 장소마저도 매년 다르지 않다. 대자연의 대서사시를 다큐는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유선형의 몸체는 오랜 기간 유전자에 새겨진 질주본능의 결과 그리하여 둥근 비행체형이 되었을 것이다. 평생을 그렇게 아름답게 처절하게 살아온 고등어의 휴식은 얄궂게도 그물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였다.
 
그물에 갇힌 그들은 사생결단으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그물에 부딪혀 주둥이만 깨어질 뿐 어찌할 수 없었다. 위기를 느끼게 하는 혹독한 환경은 생존과 번식의 사이 길에서 번민하지도 않는다. 죽음으로 새 생명을 맞바꾸게 하는 종족번식의 본능이 먼저였다. 제 목숨보다 끈질긴 것이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몸을 가혹하게 생채기 낸다. 유전자를 씨 뿌림 함으로써 또다시 잘 자란 새끼 고등어들이 큰 바다를 향할 거라며 죽음으로 그 위대한 생명의 신비함을 보여 주고 있다. 다른 고등어들도 선상(船上)에 올라오자 몇 차례 생명을 다할 힘으로 파닥이다가 바로 죽는다.
 
웅성성대는 소리는 잠든 시장을 깨우고 새벽을 가른다. 선주는 오래된 습관으로 덧셈 뺄셈은 하지 않고 바로 바로 경매시장에 내다 판다. 마릿수도 파악하지 않고 무더기로 셈해 버린다. 현란한 손가락 동작으로 시작되는 어시장이다. 사람들에게는 삶의 열기로 뜨거워지고 활기찬 곳이지만 고등어에게는 가두고 얼리고 난도질당하는 살벌한 장소인 것이다. 지칠 때쯤 아침 해가 시장의 마감을 재촉한다. 붉은 살은 부패가 빠르게 시작된다. 아낙의 빠른 손으로 소금에 절여진 고등어는 자반고등어가 되어 우리들 식탁으로 보내진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철퍼덕 배를 깔고 접시에 누워있는 고등어의 눈은 유난히 또렷했다. 당신 혼자만 드넓은 세상을 방황하다가 삶의 그물에 덜컥 걸린 게 아니라고 이 세상 모든 아버지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분노나 원망을 찾아 볼 수 없었고 어느덧 자신의 운명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은 동지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뒷모습과 고등어는 어찌 보면 등줄이 굽은 모습마저 많이 닮아 있었다. 인생의 그물에 걸려 근육질이 물렁해지고 상해가지만 생명의 연장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살점을 기꺼이 내어 주었다. 그러기에 위로받기를 더 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닷가를 따라 부두 쪽으로 가는 골목엔 고등어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난전에 연탄을 피워 놓고 굵은 소금을 뿌려 석쇠구이를 한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골목이다. 해질녘 막걸리 한 됫박으로 지친 몸을 달래고 안주로 구이를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가을전어는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고 했던가. 가을부터 겨울철에 나는 파드닥 고등어는 정말 맛이 좋아 며느리에게는 먹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고등어는 국민 생선답게 관대하고 착한 가격으로 세상 아버지의 주머니를 민망하지 않게 지켜 주고 우리의 건강도 함께 지켜주고 있다.
 
경매시장에서 생물 고등어를 트럭분으로 샀다. 바닷물로 잘 갈무리하여 자반고등어를 만들었다. 전국 도소매시장으로 팔려 나간다. 오늘도 등 푸른 영혼들은 어느 가정에 가서 힘들어하는 가장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 있을까.
힘들고 지칠 때마다 고등어의 여정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헌신을 본다. 아마도 그들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기’를 원했을 것이다. 붉은 하늘, 아버지와 고등어는 한 손이 되어 있었다.
 
 
<<한국산문>> 201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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