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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붕어빵에는    
글쓴이 : 백두현    16-01-06 08:38    조회 : 7,235

나의 붕어빵에는

                                                                                               백두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이름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직까지는 붕어빵밖에 남길 것이 없을듯하다. 남들처럼 명품 붕어빵이 아니라 내세울 자랑거리도 못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그뿐이다. 다행이라면 그나마 붕어빵을 셋이나 찍어냈다는 사실이다. 질보다 양이라는 심정도 아니고 세월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결코 많은 것도 아니지만 현실적인 분위기만 생각하자면 그렇다.

“아빠! 삼촌이 저더러 붕어빵이라는데 무슨 뜻이죠?”

“그건 네가 아빠를 닮았다는 뜻이야”

“그럼 제가 크면 얼굴이 아빠같이 변하는 건가요?”

“응”

“그렇다면 실망인데...”

녀석... 내가 더 실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못하는 우리 집 세 째 붕어빵과의 대화내용이 이런 식이다. 조금 늦게 본 자식이라 누나나 형보다 더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란 녀석인데 갈수록 생각이 자기중심적이다. 제 삼촌의 말은 그런 녀석의 생김새가 나와 붕어빵이라는 것인지, 마음 씀씀이가 그렇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닮았다는 말이니 감수할 일이긴 하나 문제가 따로 있다. 지난 학기에 학기말 성적표랍시고 가져왔는데 역사시험 성적이 25점이었다.

“시험이 주관식이냐?”

“아니요. 객관식이요”

“객관식이면 확률적으로 한 문제도 몰랐다는 거네?”

“아니요. 그 점수는 전부 아는 문제고요, 찍은 건 다 틀렸어요.”

“...”

요즘 중학생의 객관식 시험이 5지선다형이라고 듣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이렇게 생각이 다를 수 있을까. 내 준으로 보면 완벽하게 0점인데 녀석은 아는 문제만 맞고 찍은 문제는 다 틀려서 40점 정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대차이라고 생각하기엔 괴리가 너무 크다.

하긴 뭐,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면 유전자가 그렇다는 말이니 할 말이 궁색하긴 하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탓하자니 나를 닮았다는 말이니 그 또한 쑥스럽다. 그렇더라도 인생, 공부가 전부냐는 식의 자기 위안은 아무래도 나 무식하다는 광고나 다름없는 세상 아닌가. 백 번을 양보해도 공부라도 잘해야 좀 더 행복해질 확률이 높아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무튼 이대로는 안 된다. 붕어빵의 집안 내력을 돌이켜보건대 혼내서 변할 녀석이 아니다. 생각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 가지 꾀를 냈다. 그나마 봐줄 만한 과학 성적을 빌미로 사탕발림을 한 것이다.

“우리 아들은 이과 머리야. 아무래도 과학자가 되려나보다”

“정말로 그럴까요?”

“당연하지! 사람마다 발달된 뇌가 조금씩 다른데 넌 그쪽에 재능이 많은가봐”

“...”

회초리 대신 당근책을 폈더니 제 딴에는 듣기 좋았나보다. 그날 이후 과학 한 과목이라도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을 받아왔다.

말을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좀 더 달래보고 싶은 욕심에 몸이 달았다.

“과학 잘한다고 과학자가 되고 그림 잘 그린다고 화가가 되는 게 아니야”

“그럼요?”

“외국의 과학 책은 거의 영어던데 영어를 못하는 과학자는 없겠지?”

“영어는 못하고 과학만 잘하면 어떻게 되죠?”

“기계 수리공이나 자동차 정비 같은 것을 하지 않을까?

녀석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이제 뭔가 되려나보다. 영어까지 재미를 붙이면 다음은 수학이다. 가슴 벅찬 기대가 물밀 듯 일기 시작했다. 다음 작전의 설계로 하루해가 짧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실패했다. 영어성적이 오르기는커녕 느닷없이 녀석의 꿈이 과학자에서 카센터 사장으로 바뀐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던데 포기하는 방법 말고 정녕 묘안이 없다는 말인가.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녀석을 바꾸지 못하니 슬프더라도 내가 바뀌는 방법밖에 없었다. 사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붕어 대신 앙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붕어빵에는 나를 닮은 앙꼬만 있으면 되는데 인정하지 않고 이런 저런 욕심을 채우려고 했다고 생각키로 했다. 얼른 크지 않는다는 걱정, 공부에 관심이 없다는 걱정, 스마트폰을 아끼는 것에 대한 걱정 같은 것들을 채우느라 시간을 허비하느니 속없더라도 느긋하게 기다려 보려 한다.

내게 남은 정년기간보다 녀석의 학업기간이 길게 남았다는 조급증도 버리기로 했다. 그간 은퇴를 앞둔 나로서는 커다란 압박이 아닐 수 없었다. 홧김에 사표를 던질 수도 없었고 더 나이 들기 전에 하고 싶었던 일들이 무산될까 마음이 무거웠다. 아직 두 다리에 힘이 남아있을 때 전국일주도 하고 유럽여행도 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증이 참 심했는데 사표를 던지는 것 말고는 다 이루어야 되겠다.

변하고 또 변하리라. 붕어빵을 바꿀 수 없다면 붕어가 변하는 것도 방법이다.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속담을 우직하게 믿는 것이다. 제 먹을 것은 다 타고난다는 격언도 소처럼 되새기면서 살리라.

마침 해도 바뀌었다. 두 달 후면 나의 붕어빵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지역을 대표하는 학교도 아니고 기숙사가 딸린 외국어고교는 더욱 아니다. 변하지 않았으면 절대 양에 차지 않았을 우리 집 붕어빵의 성적에 알맞은 인문계 고등학교다. 오래 전 연합고사를 보고 추첨으로 학교를 정해 진학했던 바로 나의 그때 그 고등학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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