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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떼고 포떼고 글쓰기    
글쓴이 : 이우중    16-01-07 15:50    조회 : 9,167
차 떼고 포 떼고
                                                                이우중
5년 전 명예퇴직을 하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지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쫓기던 나는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을 구상해 보았다. 그러나 일을 선택하는 데에는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망설였다.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잠을 자던 중에 과거 아내에게 하였던 큰소리가 떠올랐다. 그것은 일이 없으면 오징어 배라도 타겠다는 말이었다. 그 후 아내에게 눈치가 보여 일단 도서관으로 몸을 피했다. 도서관에서 다시 밥 먹고 잠자기를 반복하였는데 우연히 성남야탑문학 회원을 만나 손쉬울 것 같고 고상할 것 같은 글을 쓰는 일로 들어섰다.
이런저런 생각 없이 글을 배우고 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 글을 쓴다는 것이 오징어 잡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활자화된 글이 가지는 무서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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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 선산에서 벌초하는데 문중 형님이 다가왔다. 그는 2014년에 출간한 나의장편소설 《개미선장》을 읽은 소감을 이야기했다.
“이번 책은 재미있던데 그전 소설《신은 한국을 선택했다》보다 더 재미있어. 많이 팔렸을 거 같은데…… 그런데 말이야……”
나는 정색을 하고 되물었다.
“그런데요?”
“자네 아내도 그 책을 보았는가?”
나는 눈치 빠르게
“제 아내는 책을 안 좋아해서 앞부분만 보았을 거예요”
형님은 이야기했다.
“뒷부분이 야하던데 자네 아내가 오해라도 하면……”
벌초 후 얼마 있지 않아 아내가 이야기했다. 내 책을 읽은 자신의 친구들이 나를 감시하라고 하였다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그 후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느껴졌다. 우선 소재 선택에서부터 그 글이 활자화되고 독자들에게 배포되었을 때 여러 가지 사건을 예측해야 한다는 두려움이었다. 먼저 소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차 떼고 포 떼고 하여야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결혼 전 군대 병영 내에서 여군 하사와 책을 주고받고 외출하여 마주앙을 마시고 영화를 본 이야기,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미모의 여직원을 사모했는데 1대 1 미팅 주선자가 그녀가 나올 것처럼 이야기했고, 나는 가슴이 설레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미팅날 다방에 뛰어갔더니 같은 사무실 여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한 좋은 에피소드를 빼고 글감을 찾기란 하늘에서 별을 가져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 장기판에서 포 떼고 차 떼고 무엇으로 이긴다는 말인가 답답한 지경이다.
일단 소재의 선택까지 어렵사리 되었다 해도 난망(難望)하기는 마찬가지다. 글에서 잘난 척하지 말고 교양 떨지 말고 유식한 척 하지 말아야 독자가 좋아한다. 거기에 웃기고 울려야 한다. 그뿐인가? 조금 모자란 불행한 인간이라는 것을 은근히 알려주어야 더욱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거기서 그치면 또 안 된다. ‘수준 있네, 수준 있어.’ 그럴 정도의 평을 들으려면 나만의 개똥철학과 그럴듯한 사상을 중간 중간에 표시 나지 않게 배치하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렵고 힘든 일이 글쓰기다. 그동안 글 쓰느라 머리카락 많이 빠졌는데 더 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내와 잘 알고 지내는 단골인 삼척 묵호항에서 사업하는 선창횟집 김 사장의 오징어잡이 배를 타는 게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 사장은 묵호근해에서 정치망어장 여섯 곳과 오징어 배 네 척을 가지고 사업을 하고 있다. 내가 아는 김 사장의 오징어잡이는 그리 위험하지도 힘들지도 않다. 과거 오징어잡이는 올빼미처럼 모든 사람이 잠자는 밤에 나가 밝은 전등 수십 개를 켜고 먼 바다로 오징어를 찾아 가서 그들을 유인, 그물을 던져 잡아오는 식이었다. 그 방법은 목숨을 걸고 파도를 넘어야 하는 모험이었다. 그런데 김 사장의 오징어잡이는 복잡한 고난도의 위험한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묵호항에서 300m 떨어진 오징어단체가 단골로 지나다니는 바다 밑에 미리 펼쳐 놓은 정치망에 모여든 오징어를 건져오는 것이다. 어망에 재수 없이 걸려든 독 안에든 쥐 모양의 오징어를 뜰채로 사뿐히 떠서 배의 저장 창고에 가볍게 넣는 작업이 전부이다.
오징어잡이는 복잡 미묘하고 머리카락 빠지는 글쓰기와는 정반대의 단순하고 쿨한 작업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식탁 경제에 이바지하는 대의명분이 확실한 일이며 하루 일당도 짭짤하다는 사실이다.
요즘 내가 느끼는 것은 아차 이 길을 잘못 들어 왔네! 이건 결코 길이 아니야 이렇게 한도 끝도 없이 노력해야 한다면 손대지 않았을 것을,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 돈과 시간과 정열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본전 찾기는 이미 그른 것 같다.
그런데 퇴각하기도 만만치 않다. 조정래 작가가 이야기 하였듯 글쓰기, 이것은 황홀한 감옥이어서 한번 맛들이면 헤어나기가 힘이 든다는 것을 나는 이미 체득하였다. 더욱이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즉 세상의 즐거움 중 으뜸의 하나가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일’ 이라고 하신 말씀은 나의 글쓰기 포기를 망설이게 한다.
평소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내가 피해야 할 음식 중의 하나인 오징어를 좋아한 것은 분명히 5년 전에 글쓰기를 시작하고 부터였다. 그런데 요즘 부쩍 저녁 회식이 있는 날이면 오징어 회와 찜이 먹고 싶은 것은 오징어잡이에 대한 미련 때문인 것 같다.
오징어는 잡기도 쉽지만 먹기도 좋다. 회쳐서 먹고 말려서 먹고 젓갈 해서 먹고, 구워 먹는다. 차 떼고 포 떼지 않고 먹물까지 통째로 찜해서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글은 소재 잡기도 어렵지만, 독자들에게 맛있게 먹게 하기는 더욱 어렵다. 포 떼고 차 떼고 거기에 졸까지 떼어야 한다. 욕먹기를 각오하고 눈을 치뜨고 기다리는 수많은 엄혹한 판관(判官)들과 무상(無常)한 세월에 띄워 보내도 찬사를 받기는 매우 힘들다.
묵호 앞바다 끝없이 펼쳐진 시원한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뜰채로 오징어를 잡는 상상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2015년12월24일출판  창작시대   이우중 산문집 << 산에는 사람이 산다. >> 28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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