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나라 그리스
불어오는 바람 마저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 다녀왔다. 지난 해 가을 한국산문 문우들과 함께였다. 10박 12일 일정이었다.
에게 해와 이오니아 해의 짙푸른 바닷물을 배경으로 해안가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하얀 집들이 인상적이었다. 문득 하이얀 드레스를 입은 순결하지만 서글픈 신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는 곳마다 펼쳐진 올리브와 오렌지 밭은 한가롭기 그지없어 그리스가 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임을 잊게 해 주었다. 봄날의 따스한 햇볕 아래 고양이처럼 그곳은 편안하고 근심 없는 나라였다.
수많은 신들의 길고 복잡한 이름과 신화속의 황당한 이야기들은 뒤에 두고 나는 살아있는 그리스를 구경하기로 여행 전부터 생각했었다.
여행 첫날의 오전 관광은 세계 문화유산 1호인 아크로폴리스부터 시작 했다. 여러 사원들을 잠깐씩 구경하고 소크라테스의 감옥과 영국시인 바이런 동상까지 방문했다. 오후에 우리 일행은 전용버스로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를 걸었던 메테오라 수도원이 있는 칼람바라에 밤늦게 도착했다. 늦은 밤 산책을 나선 내 시야에 거대한 검은 물체가 들어왔다. 오싹 소름이 끼쳤지만 일행에게는 말하지 않은채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그 검은 물체가 메테오라 수도원이 있는 바위산의 일부인 걸 알았다.
메테오라 수도원은 정교회의 수도사들이 터키의 침략을 피해 산으로 들어간 뒤 14세기에 건설 되었다. 총 24개의 수도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몇 개의 수도원만이 관람이 허용된 성지순례 코스다. 우리가 방문한 메테오라는 6개의 수도원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수도원이다.
잔뜩 기대를 품고 수도원의 좁은 문을 통하여 절벽과 절벽 사이를 이어주는 계단을 지나갔다. 수없이 펼쳐진 계단을 오르내리며 예쁘게 꾸며진 정원을 지났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치마를 두루고 성당에 들어갔다. 수많은 이콘들이 빼곡이 펼쳐져 있고 성당 안팍으로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눈길을 끌었다. 유럽의 여느 수도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그곳에는 기도하는 수도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끔 여행 찬넬에서 보았던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도자들의 생활 모습을 기대했던 나의 실망은 컸다. 기념품 가게에서 선물 몇 가지를 사 들고 씁쓸한 기분이 되어 수도원을 나왔다. 돌아오는 버스에 올라 잠깐 이동하여 정차한 장소에서 나는 드디어 바위산 절벽 위에 세워진 수도원의 모습을 보았다. 웅장하고 고독해 보이는 수도원 전체의 모습이 드러났다. 현실 같지 않은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해안에서 몽쉘미셀 수도원을 처음 만났을 때와 버금가는 감동이었다.
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있다.’라는 뜻으로 솟아오른 절벽 바위 위에 세워진 수도원을 뜻한다. 하늘에서 가장 가깝다는 그곳에서 수도사들은 무얼 생각하고 기도헸을까.
오랜만에 나도 감상에 젖어 그들의 속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알고싶어 한다고 알아지는 것도 아닌 삶과 죽음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고뇌 했겠지.
수천년 전부터 있었을 풍경, 앞으로도 수천년 있을 풍경.
늦가을 그곳의 정경은 쓸쓸했다. 곧 겨울이 오겠지. 하얀 눈이 덮힌 이곳에서 한해 겨울을 지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국내선 아침 비행기로 크레타 섬에 갔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고 지중해에서는 5번째 큰 섬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 신이 탄생했다는 동굴부터 여기저기 유적이 많은 섬이다. 요즘 크레타 섬은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단다. 그 이유는 지중해의 지성이며 자유의 상징 니코스 카잔차키스 (Nikos Kazantzakis 1883-1957) 때문이다. 크레타 섬은 카잔차키스가 쓴 <<희랍인 조르바>>의 무대이며 그가 평생 몸 담고 있었던 아름다운 섬이다. 현대 그리스 문학의 대표적 거장 니코스 카잔 차키스는 자유와 철학, 신에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풀어 놓던 작가였다.
우리 일행도 그가 태어나고 묻힌 이라크리오로 갔다. 우선 카찬차키스의 아버지가 살았고 지금은 박물관이 된 집을 둘러 보았다. 박물관에는 그의 초상이 있었고 그의 손때가 묻은 수많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가까이에 있는 그의 묘소를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 들길을 지나 구시가지와 에게 해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그의 묘소는 소박했다. 무덤 앞에는 나무 십자가가 덩그라니 세워져 있었다. 평생을 하느님과 인간의 문제로 방황 했지만 그는 끝까지 신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죽어서 카잔챠키스는 신앙 고백을 해온 동방 정교회 성당 안에 묻히지 못하고 성문 밖에 묻혔다. 예수는 신이면서 인간이라는 그의 작품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 금서가 되었고 그는 정교회로부터 파문까지 당했다.
카잔차키스, 그는 조국과 하느님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었나 보다.
그가 생전에 써 놓았던 묘비명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넓은 묘소의 한쪽 구석에 돌담으로 가리워진 작은 무덤이 있었다. 카잔카키스의 두 번째 부인의 묘였다. 잠깐 나는 어리둥절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부의 묘는 합장 아니면 나란히 묻히는거 아닌가. 혹시 정교회의 허락이 없어 호적에 오르지 못한 사실혼 관계였나?
집에 돌아와 궁금했던 사연들을 찾아 보았다.
카잔차키스의 첫 번째 부인은 갈라테아(Galatea)이다. 집안일 보다는 바깥일에 더 활동적인 그녀와는 1926년 그의 나이 43세에 이혼했다. 20년후 63세에 그는 20세 연하의 엘레니 사미우(Eleni Samiou)와 재혼한다. 그녀는 남편을 그녀 나이 21세에 만났다. 당시 41세였던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정무장관으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이런 저런 여론과 정교회의 눈치를 보느라 20년 후에야 결혼했다. 그는 첫 번째 아내에게서는 철학을 경험했고 두 번째 아내에게서는 사랑을 알았다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짐작컨대 두 사람은 이상적인 부부가 아닌가. 나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여기 저기 네이버를 뒤져 남편과 멀리 떨어져 혼자서 외로이 묻힌 사연을 드디어 찾아냈다. 카잔차키스가 쓴 결혼에 대한 유머 섞인 어록이다.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 한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3천 번쯤 될 거요. 정확하게 내가 몇 번인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요?’
(카잔차키스의 어록에서, 네이버 재인용)
100세를 넘기며 홀로산 그녀에게 일행 중 어느 남자 분이 한마디를 던졌다. 남편을 먼저 보내놓고 왜 그리 오래 살았는가. 돌아가는 등 뒤에 나는 눈을 흘겨 주었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서 자유라고 카잔차키스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다지 원하는 것이 없는 나도 자유다. 그렇지만 두려운 것은 있다.
여행 10일째, 마지막 날이다.
이번에도 국내선 비행기로 산토리니 섬에 갔다. 산토리니 섬은 에게 해 남쪽에 자리잡은 작고 둥근 모양의 귀여운 섬이다. 성수기에는 크루즈 여행객들이 배 안에서 차례를 기다릴 정도로 유럽 최고의 관광지로 꼽힌단다. 바닷물이 잠긴 주위 용암층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 아름다웠다. 하얀 집들과 어우러진 정교회 성당의 파란 돔 지붕은 파아란 베레모를 쓴 신세대 발랄한 아가씨들처럼 정겨웠다. 바다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주변의 풍광에 취하여 다리 아픈줄도 몰랐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기념품과 선물가게가 빈틈없이 들어서 있었지만 그것조차 기분좋은 정경이었다. 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골목이기에 말들이 짐을 나르고 있었다. 오래된 집 앞을 장식하는 아기자기한 예쁜 꽃들 사이로 우리 일행은 있는대로 흐트러진 팻션을 뽐내면서 한나절을 누비고 다녔다.
어느덧 일몰 시간이 되어 모두들 섬 끝 전망대로 몰려가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노을은 붉고 찬란했다. 미얀마에서 보았던 작고 쓸쓸했던 일몰과는 비교할 수 없이 산토리니의 지는 해는 웅장하고 화려했다. 서서히 바닷물 속으로 태양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잔뜩 감상에 젖어 사라져 가는 해를 보면서 생각했다. 모든걸 내려놓고 삶을 정리해야할 시간이 왔음을 지는 해가 알려 주는 것 같았다. 잘 살았다는 만족감 보다는 잘 살아 냈다는 안도감이 앞섰다. 남은 시간을 그냥 이대로 무사히 살아내자고 다짐하는 사이 어느새 해가 지고 조금은 슬픈 마음이 되었던 나를 추스르고 있는 사이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또 하나의 태양이 지고 있었다. 나를 포함하여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처음보는 광경이라고 놀라워 했다. 두 번 지는 태양이 나에게 주는 암시는 무얼까. 꿈보다 해몽이다. 아직 끝낼 시간은 아닌가 보다. 기적과 같은 이 신비로운 자연 현상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고 생각했다. 하늘이 나에게 주는 또 한번의 시간을 살아내기 보다는 살아봐야겠다. 혹시 올지도 모르는 최고의 순간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용기있게 살아보자. 내 곁에는 나를 지켜줄 보호자들도 있으니 그들과 함께라면 마지막 가는 길도 두렵지 않으리라.
우리 함께 갑시다.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밤은 산토리니 해안 바닷가에서 별들과 함께했다. 파도 소리와 정겨운 별들을 보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삶과 죽음을 그리고는 사랑과 미움을 생각했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준 그리스에 감사하면서 위기의 이 나라가 서글픈 신부의 모습이 아닌 파아란 베레모를 쓴 발랄한 신세대의 신부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였다.
2016.<<한국산문>>.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