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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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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정씨 고마워요    
글쓴이 : 노정애    17-09-05 20:25    조회 : 6,182

정유정씨 고마워요

 

노정애

 

2016716() 신문을 읽었습니다. 저는 토요일 신문의 신간소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곳에 당신의 글이 있었지요. “인간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새롭고 내밀한 시각을 발견해내고,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정련해 낸 다음, 세계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표현해 내야 한다, 작가의 태도에 관한 로버트 맥키의 말로 서두를 열면서, 안타깝게도 이렇게 쓰인 이야기는 흔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절묘하게 균형을 잡은 이야기는 독자에게 행운이자 고문이 된다. 밥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다. 내일 아침 출근을 해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이야기의 여운과 자기 안의 되울림에 붙들려 끙끙 앓는다. 요시다 슈이치는 내게 이런 밤을 세 번씩 안겨준 작가다라고 하셨지요.

사실 당신의 소설책 7년의 밤을 읽으며 제가 그랬습니다. 좀처럼 책을 놓을 수 없어 밤을 새우고 여운과 제 안의 되울림에 붙들려 끙끙 앓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그런 당신이 소개한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저는 읽은 적이 없습니다. ‘이런 밤을 세 번씩 안겨준 작가다이 글이 훅 하고 제 머릿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당신의 밤을 앓게 했던 책이 어떤 책일지 궁금해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당장 구입하고 싶었지만 남편과 함께 지인의 딸 결혼식에 가야했습니다. 결혼식장에서도 마음은 서점에 가 있었습니다. 빨리 가서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당신이 말한 3권의 책을 사고 싶어 안달을 했습니다. 남편에게 빨리 가자고 계속 채근을 했지요. 주말이라 서점은 무척이나 붐볐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신이 10여 년 전 처음 그를 만났다는 <724일 거리>는 재고가 없어서 <악인><분노1,2>만 샀습니다.

주부인 제게 휴일은 더 바쁜 날입니다. 빨리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좀 허둥거리고 종종거리며 집안일을 했습니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퇴근한다.”고 식구들에게 알렸습니다. 그 속에는 방해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 혹은 이제부터 필요한 일은 스스로 해라. 등의 내용이 담겨있지요.

드디어 <악인>을 열었습니다. 요시다 슈이치가 경영학부를 졸업했다는 사실이 당신이 간호사로 근무했다는 이력을 봤을 때처럼 신선했습니다. 이 작가는 많은 작품을 발표했더군요. 그중 상당수는 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추었고 쉽게 읽히면서도 감수성을 포착해내는 재능이 뛰어나다고 했습니다. 읽기도 전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은 알지만 당신을 믿었기에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섯 개로 나눠진 목차의 제목들이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글은 나가사키 교외에 살던 젊은 토목공이 이시바시 요시노를 목 졸라 죽이고 시체를 유기한 용의자로 체포되었다며 시작합니다. 살인을 시작으로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경위를 밝혀나가는 글의 순서가 추리소설 같은데 트릭이나, 반전, 황당한 이야기나 설정은 없었습니다. 중간 중간 나오는 서술과 인터뷰 형식의 글은 사건과 인물의 윤곽을 파악하게 해주었습니다. 살해된 피해자 요시노와 그 가족이나 주위사람들의 심정과 시점을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펼치거나 좁히고 가해자 유이치 주변 인물들도 이런 형식으로 찬찬히 풀어갑니다. 세밀하고 디테일한 묘사는 한 장면 한 장면이 연극을 보는 듯 했습니다. 살인사건보다는 인간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서인지 그들이 짊어진 외로움에 공감되어 안타까웠습니다. 글의 막바지에 저는 도망쳐, 잡히지마를 목 밑으로 삼켜야 했습니다. ‘악인은 누구였을까요? 작가는 끝까지 그 질문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긴장감과 속도감에 읽다보니 어느새 아침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말한 이런 밤을 세 번씩 안겨준에 저의 첫 번째 밤이 지났습니다.

정유정 작가님, 당신의 소설에서 느꼈던 치밀하게 짜인 서술방식을 이 책에서 봤다면 실례가 될까요? 당신의 책에서 봤던 고문 같은 긴장감을 이 책에서도 보았답니다. 당신의 소설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내 심장을 쏴라와는 다르게, 7년의 밤을 읽으며 치밀함과 서늘함을 느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당신의 책들이 제 책장을 더 많이 채워주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당신은 요시다 슈이치처럼 다작하는 작가가 아니라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그날 신문의 기사가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인의 여운을 좀 더 즐기고 싶었지만 분노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책 표지에 있는 띠지에 내게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은 최고였다. 이제 그 생각을 바꿔야겠다. 그는 악인에서 훌쩍 더 나아갔다. 만개한 그가 부럽다.’라는 당신의 글이 있었습니다. 출판사의 의도였겠지만 글로 유혹하는 것이 어떤 것이지 보여주었지요. 허나 열지는 못했습니다. 쪽잠을 자고라도 엄마 출근을 해야 했거든요. 다음날, 일요일은 일이 더 많았습니다. 지난밤 못잔 피로도 몰려와 책의 표지만 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월요일,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집안일은 잠시 미뤄뒀습니다. 드디어 분노를 펼쳤습니다. 악인에서 보았던 매력적이고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목차가 이 책에는 없었습니다. 부부 살인사건이 나고 범인인 야마가미 가즈야가 남긴, 피해자의 피로 쓴 분노라는 글씨가 남아있습니다. 이야기는 사건이 발생한 1년이 지나도록 범인이 잡히지 않은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아이코 부녀와 함께하는 과묵한 청년 다시로, 동성애자 후지타 유마와 동거하는 나오토, 민박 일을 돕는 고미야마 이즈미가 알게 된 다나카. 이 세 남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악인과 마찬가지로 탁월한 묘사와 절제된 표현력은 여전히 좋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살인사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내내 궁금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거든요. 답답했습니다.

1권의 중간쯤 읽다가 옮긴이의 말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이해가 되더군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범인을 찾기 위한 공개 방송 후 밀려드는 제보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과 제보자를 중심으로 처한 입장이나 관계가 다른 세 가지 설정이 이야기로 쓰였다고 했습니다. 사건 해결을 위한 추리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믿음에 대한 문제를 더 깊이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범인을 제외한 모두에게 측은지심을 느꼈답니다. 평소에는 너무나 멀쩡해서 일반인 같은 범인에게 잔인한 폭력성이 감추어져 있음을 알았을 때 온 몸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습니다. 밖에서 만나는 수많은 군중들 속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1,2권을 읽으며 이틀을 보냈습니다. 저의 두 번째 밤이 지났습니다.

정유정 작가님은 악인보다 이 책을 더 높게 평가하셨더군요. 이 책은 인간의 믿음에 대한 본질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애틋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인물이 너무 많아서인지 아니면 서로간의 불신에 대한 답답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드라마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치 정해진 틀에 잘 짜 맞춰서 지어진 조립식 주택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악인에게서 받은 외로움에 대한 공감과 서늘함이 더 좋았습니다.

딸아이가 방학이라 여유가 생겼다며 읽을 만한 책을 달라더군요. 대학교 3학년인 작은 딸아이가 언젠가 당신의 책들을 읽고 이 작가의 책들을 읽으면 우울해진다고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당신이 추천한 책이라고 하면서 주었지요. 요시다 슈이치는 아이도 알지 못하는 작가였습니다. 역시나 아이도 늦은 밤까지 읽더군요. 첫 장을 열면 멈출 수 없는 아주 매력적인 책이 분명합니다. 아이가 책들을 다 읽은 것은 사흘 후 늦은 밤이었습니다. 우리는 두어 시간을 책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본의 문화에 놀랐다는 것과 지형을 몰라 조금 답답했다고 제가 말했을 때 아이는 이름이 나오면 여자인지 남자인지 몰라 답답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악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은 가해자인 유이치가 가장 악인이 아닌 것 같다고 했어요. 저도 그 아이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시노의 부모이야기에 가슴 찡했던 부분에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분노에서 뽑아둔 책속의 한 줄을 보았습니다. ‘결국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는 의미는 지금까지 소중했던 것이 이제 소중하지 않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중한 것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줄어가는 것이다.’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줄은 ‘‘난 너를 의심한다고 의심하는 상대에게 말하는 것은 난 너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거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었지요. 신뢰와 믿음이라는 말은 내게 소중한 사람에게 절대 필요한 것임을 우리는 이 책을 빌어 오래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며칠째 계속되는 열대야로 쉽게 잠들기는 힘든 밤들이었습니다. 100년만의 찜통더위라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아이와 오랜만에 공통의 주제로 이야기하며 더위는 잠시 잊었습니다. 밤을 새워 책을 읽은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소모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당신이 쓴 신문의 글 덕분이라고 정유정 작가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날 사지 못했던 책 724일 거리와 당신의 신작 종의 기원도 주문해 두었습니다. 제게 이런 밤을 세 번 째, 네 번 째 안겨줄 책을 기다리는 이 설렘이 좋습니다. 작가님이라는 말보다는 가까운 벗에게 말을 걸듯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이 더위가 견딜만해 졌어요. 정유정씨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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