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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코의 색면회화    
글쓴이 : 소지연    17-10-12 06:05    조회 : 8,369

                                                       로스코의 색면회화

 알림 창에 로스코(Rothko) 전시 마지막 날!’이란 아슬아슬한 일정이 떴다. 당장이라도 동행의 의지를 내비칠 막역한 친구가 있어 초대 문자를 띄운다. 휴일이라 다른 약속은 없으리라. 있다 해도 취소하고 따라 나서리라는 낙관이었다. 우리는 가끔 그렇게 예정에 없는 만남을 하는 사이다.

 맥없이 밥만 먹자는 것이 아니라 차원 높은 전시이어선지 그녀로부터 금 새 답이 왔다. 우리는 친구의 아파트에서 삼백 미터 쯤 떨어진 예술의 전당까지의 아스팔트길을 헐떡이며 걸어갔다. 평소에 오래 걷기를 꺼리던 그녀는 오늘 따라 용감하다.

  햇살의 그림자가 로비를 쓸고 가는 늦은 오후임에도 관람객을 엮은 줄은 몇 겹이나 용트림을 이루고 있다. 바이러스 확진 자가 오늘만은 제로라는 뉴스여서인지, 뛰어난 추상표현주의의 거장이란 이름 때문인지, 장안의 사람들 반은 다 모인 것 같은 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줄의 꼬리를 찾아 이리저리 맴돌았다. 땀이 송골하게 맺히기 시작한 친구의 얼굴에서 살짝 짜증스런 기분을 엿보았지만, 마침내 관람이 시작되어 몰입하다 보면 가라앉고 말리라.

 소그룹으로 나뉘어 빨려들 듯 진입한 전시 홀 안은 어두웠고, 서너 사람의 머리 사이로 겨우 화폭의 단면이 들어 올 만큼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는 초입에서부터 밀리고 헤어지다가 그림과 떨어진 한 가운데서 마주쳤다. 성가심이 채 가시지 않은 그녀의 눈에 약간의 끄덕임이 담겼다고 느낀 것은 공감을 향한 나의 바램이었을까.

 “좋지?” 내 단호한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모처럼 난 넓은 시야를 향해 줄달음치더니 한 광활한 적갈색 톤의 캠퍼스 앞에 섰다.

 “내사 모르겠다!” 나보다 훨씬 더 단호한 음성이 들려왔다. 생경한 표정이 된 그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솔직하기만 하다. 뒤쳐져 가면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천착하던 나는 혼자 들뜬 것만 같아 멋쩍은 기분이다. ‘어쩌지? 잘 못 오자고 했나?’

 개막 전에 로스코 간담회를 연 국내파 철학 박사 강신주는 마침내 예술이 해내다우리를 깨우는 그림이라는 말로 이번 전시를 요약했다. 그가 말한 핵심이 불확실한 나의 미술적 소양을 불사할 만 한 위력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외국 박물관이라면 늘 상 소개되는 여러 세기의 그림들 끝에 영락없이 단 몇 줄의 색 만으로 큰 벽을 차지하고 섰던, 20세기 중반 화가의 기괴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그림들을 가까이서 더 많이 음미할 좋은 찬스를 마지막 날 까지 미루었다고 자책하며, 아마도 나는 그녀를 끼운 나를 데려간 것인지 모른다. 워싱턴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50점 뼈다귀 같은 작품들이 현장 공사 탓에 네덜란드에 이어 우리나라로 나들이 온 것을, 살아생전에는 다시없을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10세 때 미국으로 이민 온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1903-1970)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세계대전을 겪은 후, 비극이나 숙명, 또는 죽음을 막연한 낙관으로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으로 말을 건다. 그는 일반적인 전시개념이 아닌, 그림과 관람자간의 완전한 만남을 추구한다. 그의 작품과 마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근원적 감정을 만나 공감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기적을 꿈꾸었기에, 가끔 실제로 전시장에 나타나 관람객의 표정을 살필 정도였다 한다. 나 역시도 지금 막 서너 개의 색들이 홀로 또는 겹치며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무제( Untitled)’들 앞에서 눈물 아닌 한숨을 터뜨리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녀를 찾으려면 전시 공간 몇 개는 건너뛰어야 하리라. 공교롭게도 그때는 내 맘속에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의 심도가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중이어서 나는 잠시 그녀를 잊어보기로 한다.

 로스코의 작품세계는 그리스의 신화나 철학에서 영감을 받은 초기 구상회화에서 멀티폼( Multiforms-커다란 캔버스에 공간과 색을 배치하는 형식)으로 변천하여 마침내는 몇 개의 색만으로 절제된 구도를 이루는 색면회화로 정점을 이룬다. 이런 그의 추상표현은 심오하고 종교적이어서 고요한 명상의 이미지를 안겨준다. 오늘의 관객들도 그런 평면들 앞에서 환호하기 보다는 침잠하고 있었고, 비평하기 보다는 깊숙이 공감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마감시간까지 한자리에 서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내 알토란같은 친구가 내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몇 칸을 대충 스쳐 복도로 난 한 쪽을 기웃거린다. 그녀는 지칠 대로 지쳐서, 지금 쯤 바깥 어디에서 바람을 쏘이고 있는 것일까.

 유명한 그의 하버드대 벽화가 걸린 맞은편에는 미국 휴스턴에 설치되어 있는 로스코 채플의 축소판인 작은 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신성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그 채플의 그림 14점 중, 7점이 원정을 와서 분위기를 재현해 주고 있었다. 불 꺼진 고요한 자리, 검정 색의 대형 캠퍼스들만이 둥그런 벽을 이루며 잔잔한 빛을 흘려주는 그 곳에는, 어깨동무를 하고 앉아 눈시울을 적시는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 눈을 감고 깊은 사색에 잠긴 남녀도 있었다. 종교와 계파를 떠나 평화를 갈구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의 그림 앞에서 명상하고 치유한다는, 바로 그 채플이 여기에도 있었다. 그때였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한 여인이 희미한 불빛 속을 걸어 나오며 고개를 든다. 그 사람의 눈 끝에 영롱한 눈물방울이 매달리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내 친구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거기에 있었던 거다. 그 순간 나는 가슴 한 쪽을 빠르게 관통하는 슬픔 한 줄기를 맛본다. 로스코, 대단한 화가여!

    찻집에 앉으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녀 사진을 내 놓고 한바탕 웃는다. 그녀가 90이 넘은 고매한 시어머니에 대한 흉을 보면 나는 맞장구를 치고, 여기저기 쑤신다고 토로하면 나도 내 관절을 들먹인다. 그렇지만 내가 제 멋에 겨워 그녀의 고()에 대해 심각해지려하면, 얼른 특유의 낙천성으로 입막음을 할 정도로 그녀는 명랑한 친구다. 그래선지 미국으로 건너간 둘째아들이 어느새 경영학 박사학위를 따서 보란 듯이 대학에 임용됐다. 그런 그녀가 근래 아주 몹쓸 일을 당했다. 여동생 셋 다음인 막내 남동생이 최근 이혼 끝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5년을 모신 치매어머니를 그 사실을 숨긴 채 요양원에 데려다 논 것이다. 사는 동안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는지 오래 동안 마다하던 종교도 가지게 되었다. 오늘도 이른 아침 미사를 치루고 왔으리라. 그녀는 이 간이 채플에서 내게도 잘 내 보이지 않았던 나머지 슬픔을 치유하고 왔을까. ‘화가의 열망이 나보다 그녀에게 더 이루어 졌으면!’ 하고 빌었다.

 우리는 작가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그린 무제(레드, 1970)’, 일명 피로 그린 그림이란 오렌지 빛 단색 앞에 나란히 섰다. 공감을 부르짖던 화가는 외로움과 불안 속에서 혼자 떠나갔다 한다. 전시를 끝낸 우리는 저녁 어스름이 놓인 조금 전의 그 길을 말없이 걸어갔다. 아쉽게 집에 오니 문자가 뜬다.

 “정말 좋았어!”

 공감도가 가장 빠른 사랑스런 내 친구, 그녀는 지금 다이어트도 시작하겠단다.

그래? 그래!” 오늘 따라 끄덕이고 싶은 나는, 화가의 색 면 하나를 안고 잠자리에 든다.

 

<< 한국산문>>>,  201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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