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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매기 출가하다    
글쓴이 : 소지연    17-10-12 06:13    조회 : 8,170

                                                     갈매기 출가하다


웅크린 모양새로 보아 처음엔 오리 떼가 아닐까 생각했다. 은혜로운 아침 해살이 수천 개의 발을 드리우자 바라보기에도 눈이 부신 갈매기들이었다. 회색 망토를 두른 하얀 몸체에 화룡점정 새까만 꼬투리, 치자 빛 부리의 삼위일체는 혼이라도 떨어 내 듯 그들 언어를 뿜어댔다. 갈매기 떼가 수면에 떠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바다가 내어 주는 무수한 길을 따라 가없이 펼치는 날개 짓이나, 외로운 바위 위에 우뚝 서 태고의 전설을 읊어 내기야말로 일상일진데, 어쩌다 물 위를 배회하고 있을까. 태평양 바다 줄기가 숨을 고르는, 샌프란시스코 남단의 한적한 수로가 이들의 방문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엔 색다른 광경마저 벌어졌다. 파도를 타고 놀던 몇몇이 어느 지점에선가 급선회를 하더니 거슬러 헤엄치기 시작했다. 무작정 휩쓸리지는 않겠노라 안간힘을 써 대는 발장구를 물살이 도와주고 있었다. 이윽고 안착한 수면 한가운데엔 언제부터인가 생각을 같이 한 동지들이 모여 있었다. 부드럽게 목을 빼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친구, 부리를 마주치며 두리번거리는 신참, 날개로 수면을 튕기다 기지개를 켜는 노장까지! 그러다가 모두가 동작을 정지하고 죽은 듯이 고요했다. 짧고도 짙은 명상이 끝나자 그들 중 두엇이 나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둘이서 빠 드 되( pas de deux)’를 선보이자 연이어 다른 넷이 '빠 드 까트르( pas de quatre)', 그리곤 여덟이서 한 줄로 발맞추는 군무, '코르 더 발레(corps de ballet)'까지 펼치는 맵시란! 해살에 장단 맞추어 순식간에 백조의 호수가 탄생하고 있었다. 그들이 춤추는 자리는 먼저 온 누군가가 애써 마련한 최적의 무대였다. 거친 하늘의 일상을 잊고 잠시 떠있고 싶던 그들은 마침내 출가하고 있었다, 때로는 유연하게, 혹은 뒷걸음질 치면서. 봄날의 옥빛 호수는 바다 갈매기의 몸짓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나에게도 몇 해 전 특별한 봄이 왔었다. 무의식처럼 흘러가던 일상에서 글쓰기라는 의식의 언덕으로 출가한 용감한 봄이었다. ‘아낙네라는 대수롭지 않은 이름은 아내와 엄마를 거쳐 할머니로 이어지지 않던가. 모래처럼 새 나갈지 모를 의미들을 사유의 그물망에 건져보기 위해서라도 멀리 두고 봐야 했다. 그런 후에 펼치는 한 줄의 이야기에는 아름다웠던 추억도 쓰라리던 순간도 해맑은 실상으로 거듭 날일이었다. 습작의 비탈길은 가파르겠지만 새로운 하늘이 창연하게 열리듯 멀지 않은 곳에서 깨우치게 되리라. 발을 디딘 글쓰기 방에는 감상感傷이라는 덫에 브레이크를 걸어 줄 직관直觀이 망을 봤다. 백지가 무색하지 않을 묘사들도 넘실댔다. 바야흐로 춤판은 벌어지고 있었다. 비슷한 이유로 출가한 사람들이었지만 춤사위만은 모두가 달랐고 각별했다. 그 속에서 나도 어떤 장단의 춤을 췄다. 뒤뚱거리는 내 몸짓이 아낙네의 범주를 뛰어 넘지 못한 것이었다 해도, 그래서 더 절실했다.

처음엔 객관으로 출발해 봐! 그리곤 주관적 스텝을 밟아 봐!”

햇빛 같은 사명감이 귓속말을 해 왔다. 그리곤 나도 몰래 빨려 들어갔다, 까다롭고도 세련된 그 춤판으로.

우리 중 누군가가 차이콥스키의 백조를 닮아가고 있을 때였다. 내 걸음은 라운드를 더할수록 둔탁해지고 춤사위는 맥이 풀려갔다. 나는 완전히 출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상에의 유혹은 파계 직전의 신부에게처럼 끈질겼고 지천으로 기다리는 삶은 오만가지 날개를 퍼덕였다. 마침내 더듬더듬 돌아와야 했다, 이번에는 엄마를 넘어 할머니의 자리로.

손녀들이 사는 데서 십 여분 떨어진 공원길에 들어서면, 오래 된 갑판을 향해 쉬지 않고 흘러가는 이 물길 앞에 나도 몰래 멈춰 선다. 바람이 수군대는 늦은 오후였나 보다. 수로의 한 지점에 진짜 오리가 등장했다. 물구나무를 서서 머리를 넣었다 들었다,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어쩐지 낯익다. 백조의 춤을 익혀가던 갈매기 친구가 실눈을 뜨고 환대하지만, 머뭇머뭇 달아나 뭍으로 사라진다. 두고 온 삶의 편린이라도 기억했을까.

잠시 후 갈매기 하나가 늪가로 걸어와 누군가를 기다리듯 두리번댄다. 그때였다. 사라졌던 예의 갈색 오리가 모터보트처럼 나타난 것이. 이번에는 두 번째 출가라도 선언하듯 거침없이 전진해오는 기세에 나머지 친구들마저 갈채를 보낸다. 낯선 오리와 한 무리의 바다 갈매기가 펼치는 허허로운 무대를 파도는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이윽고 일몰이 황금빛 주단을 내릴 차비를 하자 술렁이던 갈매기들도 비상을 준비한다. 이제 시간이 된 것일까. 오리와 함께 떠있는 동안, 리처드 바크가 <<갈매기의 꿈>>에서 주력하던 조나단갈매기의 숨은 뜻이라도 반추했을까. 무심하던 하늘에 사랑 하나 보태 놓고 오려나, 나지막이, 조금 더 높이 몇 번씩이나 수면 위를 맴돌고서야 날아가는 그들! 금방이라도 다시 올 것 같다.

할머니, 여기서 나랑 살아! 근데 나, 할머니 서울 집 가고 싶어.” 네 살 박이 큰 손녀가 재잘 댄다

가까이 계시니 얼마나 좋아요! 그래도 한국에 딱히 할 일 있으시면......” 그 어미가 장단 맞춘다.

그들의 갸륵한 발상이 보여 준 아이러니에 내 속내가 들킨 것만 같다. 그렇지 않아도, 어쩌면 나는 눈앞에 놓인 두 개의 성, 본능의 골짜기와 의도적인 출가를 새처럼 넘나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편의 글을 쓰기 위해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 그건 내게 있어 어릴 적 꿈나무와도 같은 특권이다. 아득하다가도 그 꿈은 눈앞에 살랑이고 살뜰한 손길을 내밀다가는 심술궂게 달아난다. 지난겨울 야릇한 그 유혹을 뒤로 하고 아낙네로 돌아와 봄을 여읜다. 꿈의 정체를 알기도 전에 출가한 곳에서 다시 출가 해 오다니! 어느 새 글쓰기 또한 일상이 된 것일까, 온전히 떠나오지 못해 그리워하는 나를 본다. ‘일상이란 두 마리 토끼는 서로의 경계를 기웃거리며 내 주위를 맴도는 선의의 라이벌인가. 존재만으로도 무궁무진한 그 둘은, 이제 내가 어느 편으로 달려가던 넉넉한 품을 내어 줄 것도 같다. 네 명의 손녀들과 치른 이번의 소요 속에서도 미약하리라던 나의 어깨는 날지 않았던가. 수로 같은 여름 날, 문득 할머니 노릇의 진수를 그리고 싶어지면 다시 한 번 수필 방에 떠 있어야겠다. 그때는 백조의 춤이 아니어도 가만히 추어 보리라.

일상이 있어 내일의 출가를 꿈꿀 수 있는 나는 행복한 갈매기다.


<<한국산문>>, 201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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