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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플하지 않은 그림    
글쓴이 : 노정애    17-12-20 11:48    조회 : 7,053

심플하지 않은 그림

노정애

 

  장욱진(1917~1990)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회고전 소식이 분주하다. 덩달아 나조차 바빠진다. “나는 심플하다라고 말했던 화가는 평생을 자연 속에서 심플한 삶을 살면서 그림을 통해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했다. 그림에 별 관심이 없던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몇 해 전이다.

 한국 근, 현대 회화 100의 전시회(2013. 10. 29~ 2014. 3. 30)에 갔을 때다. 1920년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 회화사에 있었던 뛰어난 작품과 관람객에게 감동을 준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정된 그림으로 김기창,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를 비롯해 57인의 작품이 전시 중이었다. 이중섭의 를 비롯해 익숙한 그림들도 있었지만 낯설고 생소한 그림도 많았다. 처음 보는 그림 앞에 서면 놀랍고 신기해하며 감상했다. 신문 같은 대중 매체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한 작품들을 볼 수 있어 좋았지만 내가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알아보는 작가나 작품은 열손가락 안에 들었다. 이럴 때 느끼는 자괴감이란. 중간쯤 내 눈길을 잡은 A4용지보다 조금 더 큰 그림 <가로수, 1978. 30*40.7cm. Oil on canvas>. 선과 색이 아이들 그림처럼 단순하다. 내가 처음 본 화가의 이름이다. 빗자루 모양의 커다란 나무가 네그루 있고 나무 위는 모두 수평인데 그 위에 집들이 있다. 중앙 두 그루에만 집이 있어 구도는 안정적이다. 하나에는 정자 같은 기와집, 다른 하나에는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있다. 그림의 제일 위쪽 중앙에 붉은 점, 태양이다. 그리고 나무사이의 황토색 길에는 단순한 선과 색으로 표현한 콧수염의 남자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앞장서고 그 뒤를 쪽진 아낙과 아이가 따른다. 저만치 뒤에는 강아지와 소가 있다. 일렬로 줄맞춰 어디를 다녀오는가? 그들은 가족 같아 보였다. 선만으로 그린 그림인데 근처 냇가에서 물놀이 하고 집으로 돌아가며 산새소리 바람소리 벗 삼아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귀가하는 듯하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들의 노래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곁에 있는 그림 <모기장. 1956. 21.6*27.5cm. Oil on canvas>. 노트 크기의 작은 그림 속에는 집 한 채와 열린 방문, 그리고 모기장 안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 있다. 모기장 가장자리에는 칼로 긁어서 조형한 나무등잔, 밥그릇, 작은 솥이 주인공의 전재산인가보다.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과 짧은 낮잠이 주는 달콤한 휴식을 그림이 말해주고 있었다. 1950년대 중반의 어려운 생활형편에도 나물 먹고 팔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이 이만하면 족하다는 화가의 말처럼 자족의 삶을 살았던 독백 같은 그림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의 작은 그림이 주는 묘한 매력이 나를 자꾸 붙들었다.

  전시장을 다 돌고 되돌아가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집에 와서도 내내 그 그림들이 생각이 났다. 일주일 뒤 나는 다시 갔다. 그리고 좀 더 오래 그의 작품을 감상했다. 보고만 있어도 편안해지고 행복했다.

  언젠가 양주 근처를 지나는데 큰길가에 양주시립 장욱진 미술관 개관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있었다. 장욱진이라는 이름을 보자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그곳을 찾았다. 개관 전시중인 작품들은 유화 60, 벽화 2점 개인소장 19점이었다. 미술관은 나는 깨끗이 살려 고집하고 있다는 화가의 평소 말과 어울리게 내 외부가 순백이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건물도 조형미 있게 지어져 예술품처럼 보였다.

  ‘하늘엔 오색구름이 찬연하고 좌우로 풍성한 황금의 물결이 일고 있다. 자연 속에 나 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이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아지가 나를 따른다. 완전 고독은 외롭지 않다는 작가의 말이 들려오는 듯 한 <자화상, 14.8*10.8cm, Oil on canvas>은 황금빛 보리밭 사이로 신사복 차림의 댄디한 그가 걸어오고 있다. 잘 차려입은 신사복과 경쾌한 발걸음이 성공한 사람의 귀향처럼 보인다. 1951년 그려진 이 그림은 그에게 힘든 시기였다. 6.25 전쟁의 격변기에서 유토피아를 꿈꿨다는 평을 받으며 화가의 대표작이 되었다.

  지하 1층과 1층 사이의 계단 벽면에 걸린 벽화가 눈길을 잡는다. 화가가 덕소에 살 때 부엌 벽에 그렸던 그림 <한상>이다. 벽면을 그대로 떼어 온 것이다. 포크, 나이프, 스푼이 있고 커다란 생선과 가시만 남은 생선, 과일과 사발, 유리컵들이 그려져 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고 딸들에게 에라 오늘은 이것으로 때우자라고 했단다.

  정월의 덕소화실에서 일주일간을 절식하며 그린 <진진묘, 33×24.6cm, Oil on canvas, 1970>. “다른 화가들은 아내 초상을 많이 그리던데 왜 당신은 안 그리느냐는 투정 섞인 말에 일주일을 매달려 아내 초상화를 완성했다. 그런데 고행에 갈비뼈가 훤히 드러난 입상불(立像佛) 뿐이다. 그림 속 적힌 진진묘라는 법명을 보고서야 아내는 부처의 모습이 자신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림을 완성한 후 남편은 3개월을 앓아누웠다. 그래서 <진진묘>는 아내에게 아픈 손가락이라고 한다. 장욱진이 직접 제목을 붙인 몇 안 되는 그림 중 하나다.

  서점을 운영하며 남편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한 아내를 그린 그림에서 고마움과 숭고함이 느껴졌다. 그의 장인이었던 역사학자 이병도박사는 딸을 고생시키는 게 미워서 한 번도 전시회에 찾아오지 않았고 장욱진도 박사 집안 특유의 분위기가 싫어 명절에 세배도 가지 않았단다. 냉랭한 장인과 사위였다. 장욱진에게 장인 집안에 대해 물었을 때 거기 있는 사람은 다 박사야! 사람은 나 하나뿐이야!” 했다고 한다.

  삼십호가 넘는 크기의 화면에서는 참다운 회화성이 살아날 수가 없다는 그의 말처럼 미술관의 그림들은 십호 안팎으로 작다. 5호 이하의 화폭을 고집한 그는 작은 크기여야 동심을 담아 낼 수 있다고 했다.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까치, 기러기, 강아지, , 소 같은 동물들과 해, , 나무 아이들, 초가집 같은 낯익은 사물들이 소재라 왠지 더 정겹다. 말년에 그린 그림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상징하듯 흰옷의 노인이 하늘에 떠 있다. 왠지 신선처럼 보였다. 그리고 전시되어 있는 지인들과의 편지와 그의 모습을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볼 수 있었는데 너무나 인간적인 삶에 더 애정이 갔다.

  장욱진이 말하는 심플은 사물의 본질이 제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형체, , 색의 통일, 조화와 균형을 화폭 속에서 다시 만들고 살려서 본질을 담는 작업을 했다. 그는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 갰다. 남은 시간을 술로 휴식하면서 내가 오로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은 이것뿐이다.’라고 했다 이렇듯 모든 것을 쏟아 냈으니 신선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리라. 술을 유난히 좋아했던 화가다. ‘술을 마시는 것만도 황송한데 안주까지 어떻게 먹느냐며 술만을 고집했다. 그렇게 술만 마시다가 마침내 자신을 들어내야 하는 시점이 오면 술을 끊고 벙어리가 되어 작품에 몰두 했다. 한수산은 전시장에서 그의 그림을 본 느낌을 내가 본 것은 삶의 자세가 아니라 이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땅 위에 부여 받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가르침이었다.’고 했다.

  처음 날 사로잡았던 그의 그림에는 행복한 가족과 우리의 일상, 자연, 삶의 본질과 심플이라는 작가의 마음도 함께 있었나 보다. 장욱진은 사물의 본질을 추구했고 또 그렇게 그렸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심플한 듯 보이지만 결코 심플하지 않다. 작은 그림에 동심을 담아내고, 그 안에 조형요소들의 조합은 밀도가 높은 화폭을 만들고, 함축적이고 치밀하게 구성되었다. 관람자로 하여금 집중하게 만든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한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 짓게 한다. 그리고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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