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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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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정보지    
글쓴이 : 노정애    18-02-13 18:33    조회 : 6,475


생활 정보지

                                                                      노 정 애

  택시를 탔다. 뒷좌석에 앉으니 누군가 두고 간 생활정보지 벼룩시장이 있다. 더럭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었다. 구인부터 매물, 분양, 중고차 판매와 개인 회생이나 파산을 책임지고 처리해준다는 광고등, 44면에 빼곡히 실려 있다. 일반신문 반 정도 크기인 타블로이드 판(tabloid size)에 총총히 박힌 정보들. 서민들의 기대와 희망, 절실함이 그 속에 있는 듯하다. 그 절실함이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쉬 알 수 없을 것이다. 오래전 생활정보지를 가져다놓고 씨름하던 때가 있었다.

  결혼을 한 90년대 초, 부산에서 서울로 시집온 내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빠듯한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 일거리를 찾았다.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해 일자리를 찾는 시대가 아니었다. 무료로 발간되어 큰길가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꽂혀있는 벼룩시장, 교차로, 가로수 같은 생활정보지가 내게는 유일한 소식통이었다. 매주 오가며 새로 발간된 정보지를 쌓아놓고 꼼꼼히 살폈다. 대단한 월척이 아니더라도 나를 위한 일자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수능 앞둔 아이처럼 빨간 펜으로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치며 전화를 걸곤 했다. 실무 경력이 전무한 나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큰 아이가 태어나면서 직장생활은 포기했지만 적당한 부업을 찾는 일은 계속되었다

  둘째 아이가 걷기 시작할 무렵, 시어른께 선물로 받아 두 아이를 키운 유모차가 더 이상 쓸 일이 없어졌다. 정보지에 드립니다광고를 냈다. 늘 끼고 있던 정보지에는 무료로 드린다는 광고가 곧잘 실리곤 했는데 비용이 무료라 부담도 없었다.

  새벽에 배포했는지 이른 아침에 첫 전화가 걸려왔다. 남자였다. “~ 벼룩시장보고 전화했는데요.” 그는, 아직 물건이 있느냐? 쓸 만한가? 브랜드를 묻는다. 딸아이 둘을 키웠지만 아직도 튼튼하다는 말을 듣더니 이내 자신이 가져가겠다며 오후에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정보지가 떠돌아다닌 일주일동안 우리 집 전화통에 불이 났다. 고작 하루에 한 두통 오던 전화기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며 벌써 가져갔다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일찍 했는데 벌써 가져갔냐고 화를 내는 사람, 자기도 아이 키우는데 다른 것 줄 것은 없냐고 묻는 사람, 영유아 시설인데 아쉽게 되었다며 후원을 부탁하는 사람, 자신들의 절절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낮 시간에 주로 걸지만 전화를 건 사람들의 필요한 물건 찾기는 24시간 깨어있어서 늦은 밤도 새벽도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낡은 유모차를 찾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그들의 절실함은 내게도 느껴져 이제 없다고 말하는 내가 더 미안하고 마음은 핀에라도 찔린 듯 따끔거리고 아렸다. 여유만 있다면 수백 대라도 사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불쑥 들었다. 새 정보지가 배포될 즈음 조금 잠잠해 졌지만 뒤늦게 그것을 본 사람들도 간간히 전화를 했다. 앞으로 살면서 이런 전화 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빌었던 일주일이었다.

  결혼 후 5년여 살며 아이 둘을 낳고 키웠던 전셋집을 급히 빼줘야 하는 일이 생겼다. 중개비가 부담스러워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냈다. 유모차 때처럼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간간히 전화는 걸려왔고 그 중 몇 사람은 집을 보러왔다. 내가 겁이 없어서인지 아님 세상이 아직은 믿을 만 해서인지 낯선 사람의 방문에 두려움도 없었다. 다행이 쉽게 계약이 성사되어 원하는 날짜에 이사를 했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의 1/20도 안 되는 비용으로 계약을 했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한 푼이 아쉽던 시절이었다.

  그 후로도 정보지는 끼고 살았다. 아이들 학원비에 보탤 부업을 찾고 필요한 중고 물품과 저렴한 전셋집을 얻기 위해 기대와 절심함을 담아 보물찾기하듯 매주 나오는 정보지를 가지고 왔다. 지면에 실린 유용한 정보로 꽃꽂이 강사 자격증과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시어른 모시는 일과 아이들 키우는 일에 밀려서 그 자격증이 경제적 보탬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딘가에 나 같은 사람도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여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정보지를 뒤적거리는 일은 습관처럼 계속 되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오랜만에 정보지를 찬찬히 본다. 1면에 개인 회생 파산면책을 처리해준다는 광고들이 큼직하게 실려 있다. 요즘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구인구직에 많은 지면이 할애되고 자동차나 부동산 물건들의 매물도 눈에 뛴다. 부동산 매매나 전세도 주인 직거래보다는 공인중개사를 통하게 되어있다. 간간히 물건을 저렴하게 주실 분을 찾거나 중고 가구나 가전, 애완동물을 판다는 광고도 보인다. 오래전처럼 무료로 드린다는 코너는 없다. 세월은 흘렀지만 서민들의 생활은 별반 달라진 것은 없나보다. 사회는 어수선하고 삶은 벅찰 정도로 힘들어서인지 정보지는 더 두꺼워졌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일보다 오늘 하루를 살았던 나의 지난 시간들과 함께 정보지는 그 자리에 두고 내렸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리라. 정보지에 있던 오늘의 운세코너에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기할 수 있다.’ 가 내 띠별 운세였다.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그 말이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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