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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유산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9:15    조회 : 5,785
 
위대한 유산 

                                                                                                       노 문 정(본명:노정애)
 
 용하다는 철학관을 찾았다. 50대 중반의 그 여인은 감자 자루처럼 울퉁불퉁하고 펑퍼짐한 몸매에 굼벵이처럼 느린 행동을 하면서도 눈빛만은 내 마음도 꿰뚫어 볼 것 같이 맑고 투명해 보였다. 남편의 사주를 풀던 그녀가 다짜고짜 물었다. 정작 물으러 온 사람은 나였는데 말이다.
 “부모한데 받을 수 있는 게 세 가진데 뭔지 아냐?”
 그 순간 내가 떠올린 단어는 ‘돈’ 밖에 없었다.
 “건강, 인성, 돈이다. 이 세 가지 다 받는 사람은 몇 안 돼. 넌 두개 고르라면 뭐할래?”
 “다 받으면 안 될까요?”
 “욕심도 많다. 이 사람은 건강하고 인성을 받았다. 좋은 인품에 건강하니 뭘 더 바래.”
낙서처럼 써놓은 글들을 가리키며 책을 읽듯 술술 잘도 풀어 놓았다.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같이 살고 있는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듯했다.
  삶의 대부분을 밖으로만 떠돌던 시아버지는 술 없이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셨다. 평소에는 샌님처럼 조용하신데 술만 들어가면 난폭하게 변해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오랜 시간 곁에서 시달려온 시어머니가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던 날 자식들은 비난의 화살을 아버지께 돌렸다. 마음 둘 곳 없던 아버님은 더 많은 술로 위로 받으려 했다. 결국 몸이 위험 신호를 보내 왔다. 몇 개월 동안 두 차례의 뇌수술을 받아야했다.
 두 번째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신 아버님은 환각으로 과다 행동을 보이는 ‘섬망증’으로 밤새 같은 병실 사람들을 쫀득쫀득한 욕설로 괴롭혔다. 아침이면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남편은 출퇴근길에 뇌물성 과일과 음료수를 나눠주며 병실 사람들에게 사과했지만 그들도 환자라 견디기 힘들어 했다. 1인용 병실은 꿈도 꾸기 어려운 형편이라 이틀이 멀다 하고 병실을 옮겼다. 어머님의 병도 깊어지고 있었다. 남편의 까만 피부는 대추씨처럼 말라가고 어깨에 돌탑이라도 쌓아올렸는지 작은 키가 한 뼘은 더 줄어든 듯 했다. 언제쯤이면 아버님이 훌훌 털고 일어나실지 걱정이었다.  
 정작 그녀에게 내가 궁금한 것을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몇 해 더 고생해라”였다.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벌을 남편도 함께 받고 있다는 생각에 난 눈물이 났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에서 주인공 핍이 받은 위대한 유산은 막대한 돈이 아니라 가난한 대장장이 자형인 조가 준 사랑과 신뢰임을 알게 해 준다. 쓸만한 연장을 만들기 위해 제 몸을 깎는 숯돌처럼 희생으로 만든 사랑이 거액의 재산보다 귀하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 또한 두 가지나 받았는데 더 뭘 바라겠냐며 몇 십 년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병원에 들렀다가 퇴근한 남편에게 아버님의 차도를 물으니 “아버지가 물려줄 재산이 한 300억쯤 있는 것 같아.”라며 엉뚱한 대답을 했다. 잠시 귀가 솔깃했다. 시골에 있는 손바닥만한 집이 전부인데 왠 300억이냐고 하니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자식들을 괴롭힐 수 있겠어. 부디 정신 놓으시기 전에 어디에 두셨는지 말씀하셔야 할 텐데.”라며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병원비를 대느라 남편의 대출금액은 자꾸만 올라가는 중이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농담을 던지는 그의 여유가 이럴 때는 얄미웠다. 300억이 아니라 3백만 원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종이장보다 얄팍한 내 심사를 드러냈다. 그는 못 들은 체하며 웃기만 했다.
  그 뒤 아버님은 1년여를 더 고생하시다 지난해 천지가 가을로 몸살을 앓을 때 지상의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셨다. 상을 치르는 3일 동안 남편이 우는 것도, 자는 것도 보지 못했다. 화장장을 나와 납골 공원으로 가는 버스에서 백자 납골함을 안고 있는 남편의 옆자리에 앉았다. 피곤에 절은 그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차가 출발하고 10여분쯤 지났을 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가 복받치는 슬픔을 억누르듯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를 한 번도 안아 드린 적이 없네, 이렇게 안고 있으니 참 따뜻하다. 우리 아버지도 가슴은 따뜻한 분이었나 봐. 근데 왜 난 이제야 알았을까.”
  말을 마친 그가 서둘러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난 아무런 위로도 하지 못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남편의 눈은 노을보다 더 붉게 젖어 있었다.  
 
                                                                                     <한국 산문>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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