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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든(Walden)에서 날아온 선물    
글쓴이 : 공인영    12-05-18 21:32    조회 : 4,039

                         월든(Walden)에서 날아온 선물
 
 
                                                             
 
“이게 뭘까?”
 크고 두툼한 봉투를 뜯으니 여러 개의 카드가 보였다. 그것들은 겉봉마다 번호가 또박또박 매겨져 있었고 지시사항도 적혀 있었다.“공인영님, 선물이 도착했어요. 제일 먼저 열어 보세요”라고 쓰인 첫 번째 봉투를 열고 카드를 꺼내 펼치는 순간, 무언가 와르르 흩어져 내린다.
  작고 깜찍한 폴라로이드 사진들이었다. 최근 찍은 듯한 큰 딸의 사진과 얼마 전부터 기른다는 고양이‘인’이의 사진, 그리고 낯선 호숫가의 풍경이 몇 장 담겨 있었다. 턱을 괴고 엄마에게 윙크를 날리는 아이를 보는 순간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안녕, 우리 딸!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여기는 엄마가 그토록 좋아하는 H.D 소로가 살던 월든 호숫가에요. 생활에 바쁘다 보니 여태 이 호수가 제가 사는 주(州)에 있다는 걸 몰랐지 뭐에요. 어제야 그 사실을 알고는 곧바로 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혼자 기차를 타고 달려왔어요.”
 아, 그걸 기억하다니...
 몇 년 전, 소로의 <<월든>> 을 읽으며 밤을 새운 적이 있다. 눈물을 자극하는 내용도 아니거니와 오십이 코앞인 아낙에겐 세상사 다 거기서 거기라며 슬슬 여유도 부릴 즈음에 뭐 그리 감동할 게 남았다고, 그만 불쑥 책 한 권에 엎드려 눈물깨나 쏟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하니 그 울음은 무리하게 기를 쓰며 살아가던 내 자신이 무너지는 소리였고 새로운 나와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지 싶다. 삶에 지치고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감추자니 변명이 늘어갔고 그만큼 뒷걸음치던 자신감으로 더 절망스러운 날들이었다. 이루고 싶은 꿈들과 도저히 따라줄 것 같지 않는 능력에 대한 열등이 불안 속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들끓으며 사소한 몸의 증세로도 불쑥 불쑥 돋아 괴롭기 시작할 때 이 책을 만났다.
  거의 두 세기 전(1817~1862)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난 소로는 시공을 초월해 다시 이 시대에 절실한 화두를 가지고 나타났다. 간소한 삶을 경작하고 자연과 호흡하며 신과 우주의 섭리에 귀 기울이라고, 그리하여 자기혁신으로 행복을 되찾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매일 매일 새롭게 일구는 삶의 건강함과 자기 안의 성찰과 수련을 통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채워간 그‘실천’적 태도가 내 안일함의 정곡을 찌르며 마냥 부끄럽게 했다.
  겨우 2년 2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그의 숲속 생활, 시간을 논하자면 무소유의 삶을 경작하고 간 법정 스님의 일생보다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조차 이 책을 추천한 건, 필요한 만큼만 경작하던 생활의 절제와 자연에 순응하는 젊은 구도자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무조건 비우라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한 것만 취하라는 실질적인 무소유의 가르침에 동지애를 느끼며 반가웠던 건 아닐까.
  삶의 자세뿐 아니라 깊고 충만한 사유의 문장에 취한 나도 이토록 진실하고 감동적인 글로 누군가를 열렬히 자극하고 싶던 그 간절함에, 더는 숨길 수 없던 내 마음이 눈물로 사정없이 솟구쳐 나온 것이다.
  카드를 여섯 개나 읽는 동안 아이는 엄마의 그리움을 이렇게 저렇게 위로하며 봉투마다 예쁜 글씨로 그곳 풍경을 전한다. 소로의 삶의 흔적과 조용한 산책길을 따라 걷던 소회를 달고,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은 뒤 설명을 붙여 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비행기에 날려 보낸 것이다.
  아, 살면서 이런 행복이 또 있을까. 이렇게 근사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 티 없는 갓난쟁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며 눈 맞춤 할 때의 그 황홀함만큼이나 다시 벅찬 감격에 온통 욱신거린다. 키우면서 어찌 좋은 날만 있었으랴. 유난히 섬세하고 그만큼 예민해서 다루기도 대하기도 조심스럽던 녀석이 어느 새 성인이 되었고 홀로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고 있다.
  녀석이야말로 제한된 여건 속에서 무엇이든 혼자 해결하며 어느 새 엄마의 마음까지 헤아릴 만큼 컸으니 혹, 월든 호숫가에서 퍼져나간 소로 할아버지의 기(氣)를 진즉 받아 챙긴 건 아닐까.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새 나도 그 숲을 걷는다. 너른 호수와 숲으로 가라앉던 노을을 엄마에게 보여줄 생각에 설렜을 딸아이가 팔랑거리며 앞서 가고 있다. 자연의 속삭임까지 찍으려고 꼼지락거렸을 가녀린 손가락들이 느껴진다. 그 손으로 피아노를 치고 악보를 그리며 밤을 새워 곡을 만들곤 했겠구나...
  가끔씩‘엄마를 위해’만든 거라며 메일로 보내준 음악들이 날 위로하곤 했다. 그리고 이젠 소로의 저 가르침이 변화를 갈망하던 내게 절묘한 타이밍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부풀려진 글쓰기의 경작지를 가능한 만큼만 남기고 잘라냈다. 한동안 미련을 갖겠지만 그만큼 헐렁해진 틈으로 들어찰 더 넓은 사유의 지평을 꿈꾼다. 거기서 땀 흘리며 글밭을 일구는 한 여자의 행복을 상상해 본다.
 
<나는 숲속 생활의 실험으로 적어도 이것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에 확신을 갖고 자기가 상상해 온 삶을 살기 위해 힘쓴다면 보통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중략> 생활을 소박하게 하면 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우주의 법칙들이 그만큼 덜 복잡하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빈곤도 빈곤이 아니며, 연약함도 연약함이 아닐 것 이다.>
                                                         H.D 소로 <<월든>> 양병석 역. 범우사
 
 보고 또 보던 사진들을 봉투 속에 도로 넣으며 딸에게도 작별의 눈인사를 보낸다. 5월이면 졸업이라 아이를 만나러 간다. 4년 여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쉬움만큼 졸업식엔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해 줘야지. 마지막 여섯 번째 카드 봉투에 적힌 귀여운 글씨가 꼬물거리며 기어 나와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
‘곧 만날 그 시간을 그리며...’
 고맙다, 우리 소영! 그리고 내 영혼을 울린 또 한사람의 스승이여!
 
 
 
                                                         < 2011. 수필과 비평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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