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
류 미 숙
다카(방글라데시 수도)의 4월은 잔인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찜통 같은 한낮, 눈이 아프도록 강렬한 태양빛이 거침없이 거리에 쏟아졌다. 릭샤꾼들이 룽기(긴 천을 반으로 접어 올려서 허리에 두른 채 반바지처럼 입는 옷)와 흰 러닝만을 걸친 채 부지런히 자전거바퀴를 돌리며 낡은 포도 위 열기 속으로 가물거리며 사라졌다. 검게 그을린 어깨며 팔이 마치 부드러운 가죽같이 햇빛아래 섬광처럼 빛났다.
내가 살고 있는 7층 창문아래 보이는 또 다른 쪽에는 건축공사가 한창이다. 그곳 역시 비쩍 마른 노인이 뜨거운 태양아래서 오직 낡고 찢어진 검은 우산 하나에 몸을 의지하며 햇빛을 가린 채 돌 깨는 작업을 한다. 빛바랜 러닝 사이로 드러난 검은 피부는 뿌연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분노를 털어내듯 돌을 향해 쇠망치를 내리친다. 그 옆 쌓여진 돌무덤 위에서도 중년여자와 아이들이 한손엔 검고 두꺼운 고무 밴드를 감은 채 돌 깨는 일에 여념이 없다. 한 무리의 또 다른 여인들은 우르르 그쪽으로 몰려가서는 잘게 깨어진 돌들을 소쿠리에 담아 이고 줄지어 나르기 시작한다. 여인들이 입은 울긋불긋한 사리가 먼지 속에서 펄럭이며 쏟아놓은 돌과, 시멘트가 섞이는 기계소리는 그녀들의 수다소리와 섞여 잘도 돌아간다. 마치 지구가 우리의 삶을 싣고 돌아가듯이.
아마 주변은 빌딩가가 될 모양인지 아파트 앞, 뒤 공터마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우기가 오기 전 끝내버릴 심산인 듯 바쁘게 여기저기서 돌 깨는 소리, 사람소리가 부산하게 진한 삶의 소리가 되어 7층 내가 사는 곳까지 들려온다. 해 뜨는 시각과 함께 들려오기 시작하는 이 소음들은 해가 서쪽으로 아스라이 기울어져 갈 때까지 이어졌다.
체감온도 40도가 웃도는 4월 한낮의 열기는 가히 찜통 같고 몸과 마음은 지치고 늘어져 머리마저 멍해진다. 그들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시간과 내가 창가에서 차를 마시는 시간이 늘 겹쳐져 있다. 카페인이 든 진한 커피 한 잔은 무더위에 지친 심신에 잠시나마 좋은 활력소가 되어준다. 한 모금 차를 마시면 한순간 맑아지는 정신과 안정된 기분이 사소한 모든 것들에조차 따뜻한 시선과 감정이 스며들게 한다.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변하게 해주는 차 한 잔의 시간은 나도 모르게 깊은 사색의 길로 인도한다.
창가에 앉아 가만히 차를 마시노라면 먼 이국 땅 지구의 한 모퉁이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은 저 콕시스바자르(세계 제일 긴 해변, 방글라데시)의 모래알처럼 작디작게 느껴지곤 한다. 매일 스트레스로 다가오던 낯설고 시끄러운 소음도 언제부턴가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우리네 빨래 다듬는 방망이 소리처럼 돌 깨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누군가 혼신을 쏟으며 살아가는 뜨거운 삶 옆에서 귀중한 삶의 진동이 7층 내가 사는 곳까지 울려온다. 한 우주 한 공간 가까운 이 거리에서 서로 공존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티끌처럼 작은 내가 우주라는 큰 울타리 속에서 그들의 존재로 나의 존재감을 느끼고 모든 삶이 나뉘지 않고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7층 아래로 내려오면 하루 종일 먼지와 소음, 돌조각들이 튀어 위험하고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지만 그 속에서 타인의 삶을 발견한다. 그들이 열악한 환경과 싸우며 치열하게 사는 모습을 본의 아니게 늘 지켜보게 되면서 그들의 삶을 통해 욕심과 허영에 들뜬 나의 허상을 위안 받을 때가 많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방글라데시는 내게 불편함을 견디는 힘과 인내, 더불어 사는 의미를 깨닫게 하며 다른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깊은 정서를 길러주었다.
오랜 시간 다카에 살면서 세월의 흐름 속에 배워가는 인간의 참모습은 나를 깨닫는 겸손함이며, 분쟁하고 견제하는 것에서 화해하는 것으로 이것이 삶을 사랑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그동안 인터넷과 휴대폰의 발달로 우리는 너무도 빠르게 편리함만을 추구하며 그것에 길들여져 남을 배려하는 정서를 점점 잃어간다. 내 삶의 한가운데 10여 년간 방글라데시의 생활은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열악한 환경과 악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삶의 진리와 지혜가 보석처럼 펼쳐진 화엄의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