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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 내게 말을 걸다    
글쓴이 : 류미숙    12-05-20 08:46    조회 : 4,411
고흐, 내게 말을 걸다
류 미숙
   비행기 좌석 뒷면에 붙어있는 작은 TV 모니터, 그 좁은 공간의 모니터에서 환하게 빛을 내뿜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나는 그림에 대해선 문외한인데 백열등처럼 눈부신 노란 빛에 끌려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외국인 해설자가 고흐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림도 무언가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시선을 가까이 고정시켰다. 노란색이 저토록 고독한 빛이었던가? 그 노란색은 너무 쓸쓸해 마치 울고 있는 듯했고 누군가를 간절히 부르고 있는 것도 같았다. 그 너머 언뜻 보이는 푸른 밤하늘과 별들은 희망과 사랑으로 환희에 차 있었으며 천상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푸른빛과 노란색의 조합은 얼마나 부드럽고 매혹적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가스등에 비친 노란 카페와 밤하늘, 그것은 둘이면서도 완벽한 하나로 그 전체를 이루며 감상자로 하여금 한 눈에 들어오게 하는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마치 선(禪) 세계를 접한 듯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인도에서 집으로 돌아온 며칠 후 나는 인터넷을 통해 고흐의 그림을 다시 찾아보았다. 내가 본 그 그림은 <밤의 카페 테라스>였다. 그리고 <고흐의 방>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고갱이 좋아했다는 <해바라기> 등이었다. 고흐의 그림들은 쓸쓸하면서도 다정했고 따뜻했다. 무엇보다 그림에 대해 어렵게만 생각했던 나의 선입감을 깨어버렸다. 빈센트 반 고흐, 그를 만나기까지 나는 왜 이토록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20년 전 어느 깊은 밤, 처음 다카(방글라데시)에 도착했을 때 앞으로 내가 살 그 집에는 샹들리에는 물론 벽면 여기저기에 흰 유리 커버를 씌운 백열등이 참 많이도 달려 있었다. 한국의 형광등에 익숙했던 나는 그 집의 첫 인상이 노랗다는 것이었다. 또한 지독한 더위와 사람을 홀릴 듯 밤에만 내뿜는 재스민의 짙은 향기는 후덥지근한 습기와 뒤섞여 다카 생활을 늘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몽롱하게 만들었다. 고흐가 압생트를 마시던 기분이 그랬을까? 그 아득한 느낌과 노란 빛은 3년 후 한국으로 돌아가리라 했던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10년, 그리고 인도에서의 긴 고독을 예고하고 있었다.
   갑자기 닫혀버린 언어와 문자는 다른 세계로 건너갈 모든 창구가 막힌 듯 답답했고 그것을 해소할 문화적 갈증은 너무 컸다.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한권의 책을 책장 한 구석에서 찾았다. 한국에서는 도무지 집중되지 않아 다시 읽어보리라 가져왔던 스즈끼 선사의 <<선(禪)>>을 무료한 다카에서 읽으니 불이 번쩍 켜지듯 머릿속이 환해졌다. 이 책을 읽고 다카생활이 훨씬 수월해졌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는 내게 ‘마음의 파문’에 대한 글은 큰 힘이 되었다.
   고흐는 평소 내가 알고 있던 광기어린 열정의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성직자 되려고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무엇보다 자연을 사랑했던 타고난 감성과 탄광촌에서의 고된 노동자들과 지낸 선교활동의 경험들은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연민으로 이어져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는 구도자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예술을 향해 나아갔다. 오직 예술만을 향해 구도의 자세로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해나가면 언젠가 사람들의 가슴에 가 닿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밝은 빛을 찾아 프랑스 아를까지 갔던 고흐는 일본 풍속 목판화 우키요에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일본화의 밝고 선명한 색채, 그 단순한 기법들은 오랫동안 그가 찾던 것으로 <밤의 카페 테라스>도 그 영향을 받은 작품 중 하나였다. 그는 꾸준히 색채를 연구하며 그리기 시작했으며 그 색들은 소박하면서도 진솔함이 묻어나 평화가 깃들어 보였다. 어쩌면 그가 추구했던 ‘숭고함’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도 변화가 왔다. 미지의 땅 인도 벵갈루루를 거쳐 개인 사업을 위해 남인도 섬유타운 티르푸르라는 곳으로 이사했다. 덥고 건조한 티르푸르는 비가 잘 오지 않아 오랫동안 가뭄이 들면 저절로 젖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다.
   대부분 인도 사회가 그렇듯 새로 이사 한 주택도 안전상의 이유로 이중 삼중의 출입문을 거치도록 되어있었다. 어쩌다 혼자 있을 때면 마치 감옥에 갇힌 듯하다. 이 메마르고 삭막한 땅에서 나는 새 생명의 간절함으로 장미를 키우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화단에 물을 주며 장미를 가꾸는 일은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빨간 장미는 유독 잘 번성해 나는 담장 밖으로 화사하게 늘어진 넝쿨장미를 꿈꾸며, 세월 속에 흩어져버린 나의 꿈들도 저 꽃들처럼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아를에서의 고흐는 동네주민들의 고발로 감옥에 갇히는 불행한 고통을 겪는다. 지독한 가난과 다작의 체력소진으로 자주 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의 심정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동생 테오에게 “너는 인간세상이 이토록 슬픔 가득하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을거야.”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의 고흐는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듯 가장 원숙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유감없이 그려내 이때의 별과 구름, 하늘빛은 마치 꿈의 세계를 보는 듯 환상적이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오랫동안 머뭇거리던 결심을 명확히 했다. 20여 년간 해외를 오가며 깊은 밤 지친 몸으로 공항에 내리는 것, 밤안개 같은 희미한 불빛 아래서 많은 사람들을 비집으며 땅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맨 먼저 조우하게 되는, 무거운 짐을 몇 개나 차에 싣는 따위의 일들이 갑자기 지겨워졌다. ‘인도와 당분간 좀 떨어져 있어야겠다.’ 어느 곳에서도 정착 못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인정하면서 당분간 한국에 머물자는 생각이 벵갈루루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이다.
   한국으로 오는 경유지 싱가폴 창이공항에 새벽에 내렸다. 늘 가던 길목인데도 새로운 아침이다. 활주로가 보이는 창가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러자 내 안에서 작은 등불 하나가 켜진다. 그것은 밝고 환한 빛이 아니라 깊은 밤, 길을 밝히는 가스등 같은 은은한 불빛이다. 그동안 나는 가족들을 핑계로 너무 오래 자신을 방치했다. 자신을 위해 뭔가 시작하려고 할 때마다 항상 반대방향에 서곤 했던 나, 가족도 그런 나를 부담스러워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글 쓰는 일에 미련 없이 마지막 열정을 다하고 싶다. 한국에 도착하기 전 결심과 실천할 준비를 동시에 완료해야겠다. 그렇다. 오래된 두꺼운 외투를 벗고 밝고 가볍게 앞으로 걸어가자. 나는 한국으로 향하는 탑승구로 걸어갔다.
   비행기 안, 내 자리를 찾아가 앉는다. 마침내 비행기는 뜨고 무료해진 나는 좌석 뒷면에 붙어있는 TV모니터의 채널을 돌린다. 언뜻 환한 그림이 지나간다. 다시 채널을 되돌린다. 해설자가 고흐 그림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카페의 노란 불빛은 너무 고독해 보였다. 백열등처럼 눈부셨지만 왠지 쓸쓸했다. 기다림에 지쳐 빛바랜 희망처럼 낮은 톤의 노란색이었다. 그러나 그 하늘 위에는 여전히 희망과 사랑이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다.
 
 
<<한국산문>> 201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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