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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장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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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한국산문 등단작]    
글쓴이 : 장정옥    12-05-31 15:44    조회 : 4,496
꿈(夢)


                                                                                                                                                                                                                                                                                             장 정옥


  하늘을 훨훨 날다가 곤두박질치던 꿈은 내 키가 164cm로 정해지고 나서부터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깊은 낭떠러지에서 건너편 절벽을 따라 둥둥 떠다니다 깃털처럼 사뿐히 내려앉는 꿈을 꾼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그건 아직도 철이 덜 들어서 애 같은 꿈을 꾸는 거라는 애정 어린 핀잔만 돌아왔다.   
  어쨌거나 누구는 꿈에 수염이 허연 신령이 나타나고 혹은 돌아가신 조부모가 등장하여  알려준 숫자로 "로또"에 일등 당첨도 됐다니 그런 소리를 들으면 부러운 나머지 멀쩡하던 배에 갑자기 통증이 이는 듯하여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에 침이나 흘릴 수밖에 없다.
  어젠가 한번 제법 큰 액수의 현금을 내 딴에는 잘 보관한다며 제대로 숨겨뒀는데 정작 그것을 쓰려고 찾을 때 숨긴 장소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며칠을 치질 앓는 사람처럼 아무에게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애고,  이사 할 때나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고 포기한 날 밤,  꿈에서 그 장소를 알게 돼 자다가 벌떡 일어나 찾게 된 적도 있으니 역시 꿈은 의식이 잠재하고 있는 무의식이라는 프로이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꿈을 해석 하려고 할 때 반드시 강한 저항에 부딪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꿈의 현재 내용’과 ‘꿈의 잠재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며 종종 후자에 의해 변용과 왜곡이 가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또한 꿈을 해석하는 것에 찬성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비단 아들 녀석이 전직 대통령 여섯 분이 탄 버스에 자기도 동승했다며 복권을 샀다가 날린 만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후에 아들 녀석은 그 일등 당첨 확률 100%가 쓰레기통에 처박히게 된 원인은 그들이 앉은 좌석번호를 확인하려 하는데 내가 깨워서 그렇게 됐다고 애먼 사람 속을 긁어 놓더라만 모름지기 모든 일은 과유불급이라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 하였으니 꿈을 해석하기 시작하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잘 되면 신봉자가, 못되면 불신자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심리학적으로의 꿈,  즉 무의식은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거기에는 또 다른 반론들이 넘쳐나지만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 바쁜 나로서는 기분 나쁜 꿈만 꾸지 않으면 족하다.  

  꿈은 램(REM)수면 상태에서 나타나게 되는 현상인데 사람 뇌의 파장을 보면 깨어 있을 때는 빠른 알파파가 나타나고 잠이 들었을 땐 느린 델타파가 나타난다.   잠이 든 어느 순간순간 뇌는 알파파와 흡사한 파장을 보여주는데 이때를 램수면 상태, 즉 꿈을 꾸는 상태라고 한다.
  램(Rapid Eye Movement)수면이란  1953년 미국 시카코 대학 심리학교수 크라이트만이 잠자는 어린이의 모습에서 발견한 후 1974년 ‘세계 수면학회’가 설립 되면서 인간이 잠을 자는 이유와 불면이 어떻게 나쁜 작용하는지 연구가 활발하다고 한다.
  질 좋은 수면은 신체적 심리적 회복뿐만 아니라 단백질 합성 및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하고 수면 부족은 당뇨, 고혈압, 비만,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학설도 있으니 스스로 건강을 생각하여 숙면을 취하도록 해야겠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이런저런 학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없어도 정신분석학적 꿈의 근원을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매일매일 꿈을 꾸며 산다.   다만 기억하는 꿈과 기억 하지 못하는 꿈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꿈 하나가 있다.
  2002년, 월드컵이 온 국민을 하나로 뭉쳐 놓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평년 기온이 좀 높아진 그 해 늦여름 나는 어머니가 먼 곳으로 가시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대추나무 앵두나무 가지에 어린잎이 움트기 시작하던 봄,  이른 꽃을 피우는 시골집 화단에는 꽃망울들이 하나 둘 머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잔인한 4월, 어머니는 감기 기운으로 며칠을 두통에 시달리다 지방의 한 병원에 입원하셨다.   입원한지 이틀 만에 의식을 잃어 깜짝 놀란 자녀들은 부랴부랴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겨 응급시술을 받게 했지만 그 해 8월 21일에 뇌졸증으로 우리에게 안녕이란 말도 못하고 떠나셨다.
  나이가 들어도 철없이 어리광뿐이던 막내딸이 쏟아내는 무모하고 무지한 투덜거림을 여과 없이 스폰지처럼 흡수하시던 내 어머니.  그런 딸을 위해 이 세상에서의 삶이 조금은 수월해지기를 간구하러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교회로 향하셨고 관절파스로 덕지덕지 기워진 무릎과 허리는 나를 향한 간절함의 표징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는 5개월이 나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낮에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이면 병원으로 가  거의 날밤을 꼬박 새고 주말에야 집으로 와서 잠을 잘 수 있었다.   피곤한 육체는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어려서부터 언니들의 보호와 배려 속에 저 잘난 줄 알고 살던 내가 짊어진 병수발은 견디기 힘든 무게였다 . 
  나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를 즈음 어머니는 홀연히 떠나셨다.   어머니라면 50년도 참아냈을 일을 나는 5개월을 견디는데 힘들어했다는 자책감이 잠시 우울증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기도와 염려 덕으로 빠르게 회복해 냈다.   참외를 좋아하셨던 어머니를 닮아 나 또한 그것을 즐겨 찾는데 어쩌다 노랗게 잘 익은 참외를 한입 베어 물면 울컥 치밀어 오르는 단물이 목에 걸린다. 


  어느 날 햇살이 환 하게 비쳐드는 오후, 집에 들어서니 연분홍 스웨터를 입으신 어머니가 환한 얼굴로 마루에 앉아 계셨다.  
  "엄마! 연락도 없이 어떻게 왔어?"
  나는 너무 반가워 엄마 손을 잡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우리는 들꽃이 만발한 한적한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그 작은 소로를 빠져 나오니 징검다리 몇 개가 놓인 개울이 있었는데 돌 사이사이로 맑은 물이 잔잔히 흐르는 것이 지금 와서 보니 우리 동네 양재천과 흡사했다. 
  우리는 쑥부쟁이 꽃이 지천으로 퍼진 개울가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먼저 징검다리를 건너기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개울 저편으로 건너가시며 내게도 건너오라는 몸짓을 한 것 같았다.  나도 따라 일어서 첫 번째 돌을 밟으려는 순간  갑자기 개울물이 검푸른 강물로 변하면서 징검다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물은 점점 세차게 흐르기 시작했고 깊이도 너무 깊어서 나는 건너 갈 수도 없었고 무서웠다.  건너편의 어머니를 바라보니 들리지 않는 무슨 말을 하시며 내게 손짓을 하고 계셨다.
  "엄마, 나는 못 가겠어."
  하면서 눈을 떴는데 지금도 그 손짓이 나를 오라는 거였는지  가라는 거였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 꿈이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 즉 이생에서의 완전한 정리라고 말해 주었다.  내세를 믿는 나는 그 꿈의 해석이 어떻든지 상관없지만 그날 날 찾아오신 어머니의 얼굴이 무척 편안하고 밝은 모습이어서 두고두고 마음은 기뻤다.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면 기억도 나지 않는 무수한 꿈을 꾸고 현실인 것처럼 착각 할 생생한 꿈도 꾸지만 역시 평생 잊지 못 할 꿈은 바로 어머니 꿈인걸 보니 난 여전히 불효를 하고 있나보다.  
   사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오래전에 터득했지만 아직도 그 진리를 잊고 실수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더 나는 것은 내 푸념을 고스란히 담아줄 사람은 오직 당신 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길거리 화단에 노란 국화가 한창이다.   시골집 화단에 국화꽃이 만발하면 어머니께서는 그 노란꽃송이를 하나씩 따, 바람 잘 드는 그늘에서 말리셨다. 
  바삭거리지 않게 꾸들꾸들 말린 국화꽃 송이들을 베개 속에 넣고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베갯잇을 씌워 주면서   
  “이것은 막내 것이다.”
  언니들을 제치고 제일 향기 좋은 것으로 골라 머리 밑에 고여 주시던 내 어머니. 
  뒤뜰 담 모퉁이에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거기 있던 아주 오래된 백도 복숭아나무 열매를 따는 날이면 가장 큰놈으로  손에 쥐어 주시던 내 어머니.
  어려서 젖이 모자라 비쩍 말라 허약하기 그지없던 내가 바람이 세게 불라치면 행여 날아갈까 학교까지 업으러 오셨던 내 어머니. 
  고사리나물 뜯느라 시커멓게 물든 손가락으로 막내가 좋아한다며 내 앞으로 밀어 놓으시던 내 어머니. 
  언니들은 결코 신어보지 못한 빨간색 장화를 사오던 날  나는 비가 오지 않아도 그것을 신고 학교에 가곤 했다.

  이제는 특별한 날이나 어머니와 관련된 일이 생길 때에야 떠오르는 얼굴이지만 오늘 밤 꿈에는 어머니를 만나 그 투박한 손잡고 가슴냄새 맡으며 한번만 불러보고 싶다.
  “엄마.” 


 
 
 
 
                                                                                                     2008.  0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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