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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스 푼 제비를 기다리며    
글쓴이 : 공인영    12-06-04 22:07    조회 : 4,538
깊스 푼 제비를 기다리며
 
                                                                                                 

 
  “야, 제비다. 제비가 왔네!”
  지각을 눈앞에 두고도 늑장 부리던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진다. 앞마당 빈 목련 나무에 새 한 마리가 앉았단다. 그저 겨울에도 흔한 까치려니, 돌아보지도 않고 되받았다.
  “그거 제비 아니거든. 늦었으니 얼른 학교 가라니까."
  그래도 정말 제비 같다며 와보라는 통에 물 묻은 손을 대충 닦으며 창가로 갔을 땐 새는 막 날아가는 중이었다. 아이의 말처럼 언뜻 봐도 까치는 아닌 것이 참새보다는 큰 게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나도 그 새가 그냥 제비였으면 싶어진다.
  설거지를 끝낸 뒤 차 한 잔 들고 나오니 TV 속 주말 프로가 한창이다. 그런데 초대 손님이 다름 아닌 ‘제비’ 라는 노래로 유명해진 가수가 아닌가. 어라!
  ‘제비' 하면 어릴 적 읽었던 동화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제 사람들은 제비의 고통은 잊었는지 흥부는 착하고 놀부는 나쁘다 식의 단순한 이분법적 해석만 진부하다며 내용을 우스개로 섞어놓고 재밌어 한다. 합리적 삶의 태도를 물어 둘의 점수표를 슬쩍 바꿔놓기도 하니 가치관이 변하고 또 혼란스러워진 탓에 얼마나 유연하고 엉뚱한 발상들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착하게 살아야 하는데 이유가 있던가. 동화 속 인과응보의 엄숙한 경고는 더 멋진 책으로 여러 번 바뀌는 중에도 끄떡없이 남아 지금까지 건재한 것을. 게다가 아직도 우리는 그 속에 기꺼이 갇혀 살고 있질 않은가.
  자료를 보니 세계 곳곳에 분포된 제비가 80여 종이나 되고 그중 우리나라엔 갈색제비, 흰털발제비, 귀제비에다 일반 제비까지 네 종류가 날아온다. 집 지을 재료를 얻는 일 외엔 땅으로 내려앉는 일도 거의 없거니와 먹이도 주로 날면서 잡아먹는 새란다. 얼마 전 감동으로 본 한 다큐 방송에선, 생명 있는 것들의 본성이 그런지 제비의 삶도 사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신통하기만 했었다.
  짝을 이루면 제일 먼저 집을 짓는 것도 그렇고 셀 수도 없는 반복으로 흙과 지푸라기를 물어다 둥지를 만들던 장면도 그랬다. 가족을 위해 평생 노심초사하는 부모의 고단과 다를 바 가 없다. 그렇게 만든 보금자리에서 알을 품어 마침내 새끼를 부화하던 순간은 내 아이를 낳을 때와 또 겹쳐져, 생명의 경이와 모성을 다시 느끼는 통에 더욱 뭉클하고 눈물겹기까지 했다.
  게다가 하루에 무려 이백 여 번의 먹이를 물어와 새끼들 입에 넣어주는 중노동이라니! 새들의 사랑을 누구라서 부족하다고 말하리. 젖을 먹이는 우리와 종자만 달랐지 그 사랑은 한결같아, 패륜으로 얼룩져 가는 오늘 우리들의 삶을 부끄럽게 할 뿐이다.
  농부의 멀고 먼 후손으로 이미 삭막해진 도시 끝에 붙어살지만 오늘 아침 이렇게 슬쩍 귀향을 예고한 새 한 마리로 겨우내 잠자던 마음이 꿈틀거린다. 제비가 돌아온다. 기껏해야 20센티미터도 안 되는 몸이지만 잘 다려 입은 연미복을 뽐내며 봄의 앞단을 물고 날아온다. 그 멀고 험난한 여정을 무사히 견디고 도착할 제비들에게 잘 마른 지푸라기라도 한 묶음씩 나눠주며 위로하면 좋으련만. 그저 콘크리트로 굳어가는 동네 어귀로 나가 마음만이라도 포근한 처마 끝이 되어 반겨줘야겠다.
  올해도 희망 하나씩 물고 동화책을 열어 푸드득, 우리에게 다시 올 제비와 만나고 싶다. 동화가 빚어낸 아픈 사연 때문에 사람들 밖에서 서성이지 않기를. 그리고 나도, 못 견딜 욕심 때문에 누군가의 다리를 툭 분지르진 못해도 혹 콱 걷어찬 적은 없는지 돌아봐야겠다.
 
                                                                                                           < 월간 에세이 2009.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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