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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장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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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情) [한국산문]    
글쓴이 : 장정옥    12-06-14 17:10    조회 : 4,808
정(情)
 
 
 
                                                                            장 정옥
 
 
‘정이란 무엇일까’ 라는 국민가수 조용필의 노랫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한국 사람이라면 지구 어느 곳에 있든 된장과 고추장 맛을 아는 민족이라면 정에 대해 할 말이 많을 줄 압니다.
‘그 놈의 정’ 때문에 똥 지린 바지 입고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것처럼 할 말도 못하고 거절도 못하던 어정쩡한 경우를 안 당해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보증’ 입니다. 조금 망설이는 기미가 보일라치면 가족인데, 친척인데, 친구인데, 우리 사이에 그것도 못 해주냐며 마음을 흔들기 시작하고 그러면 바로 깊숙이 숨어 있던 그놈의 정이 꿈틀거리면서 급기야 일을 저지르고(?) 말지요.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처럼 결말이 깔끔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세상일이 그렇게 계획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돈이 속이지 사람이 속이냐는 말부터 배 째라는 말까지 듣다보면 정말 ‘그 놈의 정’이 원망스럽고 울분이 납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저질러놓은 일을 누구 탓 할 수도 없다보니 급기야 속에 불이 나지요.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라 하여 세계의학 사전에 hwa-byung 이라 명기되어 있는 화병도 알고 보면 정이 낳은 불덩어리입니다.
 
그런가 하면 몇 십 년의 모진 시집살이를 지내면서 화병으로 속이 문드러져도 그 독하던 시어미가 불쌍해지는 것은 이미 정이 미움을 희석시킨 탓입니다. 미운 정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정 때문에 우여곡절을 체험한 사람이 또 다시 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봅니다. 다시는 정에 속지 않으리라 다짐해보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정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지요. 지독한 중독성이 있나봅니다. 제 생각엔 아마도 우리가 발효 음식을 저장해 놓았다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먹는 것처럼 ‘그 놈의 정’도 우리의 유전자 속 깊숙이 잠겨있다 어느 순간 감성에 자극을 받으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정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되새김질 하는 소처럼 다시 곱씹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정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나 문제 있는 정치인들이 몇 달, 또는 몇 년 후 다시 나타나 버젓이 활동하는 것이 바로 정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들 입니다. 또한 한국 사람에게 학연, 지연이 단단한 결속력을 가지는 것도 정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민족 정서에 자리 잡고 있는 정은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본시 모든 이치가 양면성이 있다지만 ‘그 놈의 정’은 잊어서는 안 될 일까지도 잊게 만드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은 사랑과는 다릅니다. 사랑은 확인하고 싶어 하지만 정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미움이라는 감정이 생기면 사라지지만 정은 미움까지도 흡수합니다. 사랑은 상황의 변화에 민감하지만 정은 같은 처지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바로 이것이 정의 원칙이며 정의 매력입니다.
 
나는 정이란 이해와 포용이 아닌가 합니다. 꼭 마음이 약해서만 상대의 말이나 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하고 동참하려는 의지의 발동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정이 많은 사람은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가끔 마음이 약해서, 즉 정이 많아서 남의 일을 돕다가 피해를 입고 덤탱이를 쓰기도 하지만 그래도 차갑고 독하게 사는 것보다 낫지 않나요. 어지러운 세상에서 영악스럽게 자신을 지키며 사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겠지만 지나치지만 않다면 정에 넘어 가더라도 약간은 바보스럽게 사람 냄새 나게 사는 것도 괜찮습니다.
 
요즘사회는 개인이나 단체나 모든 것이 계산적이고 계획되어진 생활환경에 적응되어 살다보니 ‘정’ 같은 감성은 불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가 지갑을 열게 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나타나는 것은 왜일까요. 정에 울고 웃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나 봅니다. 휘청거리던 제과회사가 ‘정’ 이라는 초코 과자로 기사회생한 예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욕쟁이 할머니의 욕을 들으면서 다시 그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도 필시 욕 속에 들어있는 정을 맛보기 위함일 것입니다.
 
정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이는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놈의 정은 본인만 힘들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외할머니의 쭈글쭈글 말라버린 젖가슴 같은 그런 정이 있는 세상은 언제나 따뜻합니다. 해서 오늘도 그 놈의 정 때문에 남의 일에 앞장 선 사람에게 사랑이 아닌 정으로 미움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 일이 해결 될 때까지는 조바심이 나겠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그렇다고 화병을 얻을 정도는 아니니 인격수양도 하고 정 있는 사람도 돼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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