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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의 정감    
글쓴이 : 문영휘    12-07-14 12:17    조회 : 3,822
  고향의 정감
                                                           
                                                           상헌(祥軒)    문  영  휘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과제는 각 나라마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중에서 한국은 그래도 상당한 변화 발전을 하여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편에 있다. 그러나
아직도 농업의 생산과 유통 수출입 등 국제화의 과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산업의 여건 하에서 나에게는 하나의 감추어진 숙제가 있었다.
  객지에서 공직생활 34년에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농촌을 개발한답시고
지도자 역할을 하면서도 정녕 내 고향 농촌은 돌보지 못한 체 나이만 먹고 정년퇴임을 하였
으니 마음의 부담감이 가득도 하다, 그래도 고향 사람들은 나를 이방인 취급하지 않고 방문
할 때마다 다정하게 맞아주고 있으니 말이다. 때로는 친지(親知)와 정담을 나눈다. 그네들의
고루한 옛 사투리의 인사말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래간만이네, 웃째 왔노! 하며 점심이라도 같이 할 때는 깊은 이야기가 오고간다. 여기에
다 약주라도 한잔 걸치면 근심 걱정 다 버리고 이집저집 안부를 모두 듣게되고 옛날을 그리
는 농촌생활의 추억담이 절로 흘러나온다. 잘 살던 이씨네는 고향을 떠난 후 소식이 없고,
가난했던 김씨네 집은 개발의 영향으로 보상금을 받아 허리를 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이제 우리가 살던 고향도 변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 해진다. 보상만이 아니
다. 농축산 육종학의 발전과 기계화사업 과학영농기술 등으로 변해도 엄청 많이 변했다. 살
림살이도 옛날 부자 부럽지 않게 여유가 생긴 이야기다.    
 
  이렇게 보고, 듣고, 먹으며 받은 많은 예우에서 그냥 서울 집으로 올 때는 미안한 마음 그
지없는데 지역특산품이라며 내 고향의 주산물 청도반시와 복숭아, 청정 한재미나리 등을 
한 묶음씩 안겨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이럴 때마다 나도 정감(情感)의 답례로 하다못해 점
심 한끼라도 보답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몇 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래저래
걸려서 하지 못하다가 바로 지난해 가정의 달 농번기 이전에 잡은 날이 2011. 5월 13일이었
다. 모실 분은 내가 살던 고향 친지 노인 분들이다. 그중 먼저 내가 자란 곳 청도 화양읍 서
상리 어른 분을 모시기로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경로회관에 평소 출입하던 회원 남녀 40여
명 기준으로 초청할 것을 이장과 경로회장에게 의논을 하고 전적으로 일임하였다.
 
  한달 후에 약속한 그날 11시30분 경 귀향하여 지정된‘영남 불고기타운’에 들어 설 때는
이미 여성 노인들이 한켠에서 좌정을 하고 있었고 계속 할아버지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손을
잡고 인사를 할 때는 옛 정(情)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넓은 홀은 꽉 찼다. 옆방까지 가득하
게 이용하게 되었다. 예상 인원수의 2배가 넘는 97명이나 참여해 주셨다. 연령 제한을 70세
이상이라고 했는데도 그랬다고 하며 주선하던 이동휘 이장과 옆에 있던 손추남 경로회 총무
는 오겠다는 분을 통제 할 수가 없게 되었다고 미안해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주신 것이 고맙지 않느냐 하며 즐겁게 참석한 분들의 앞앞이 손을 잡고 경의를 표했다.
이를 때 뜻밖에 군수를 모시고 비서실장도 동참한 것이 아닌가. 군수는 알고 지내던 후배이
긴 했지만 미리 와서 기다리던 정승근 읍장은 전혀 모르던 분이다. 바쁜 일정에 자그마한
 동리 개인행사에 그렇게 참여해 주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고마웠다. 더욱이나 이
중근(李重根)군수는 그의 어머님이 문(文)씨라고 까지 하면서 생각지 못한 알뜰한 모임이라
고 찬사를 하며 나의 소개를 하였다. 한편 읍장은 나를 두고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수한 마음
으로 고향 어른을 위해서 이런 행사를 배풀어 주신 분은 우리 군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비용은 좀더 많이 들기는 했지만 내 마음은 한결 흐뭇했다.   
  고향에 가면 고향 사람과 집만 보는 것이 아니다. 향교 위 언덕(中山頂)에 올라 마을 전경
을 살펴본다. 그리운 곳이다. 때로는 골목골목 누벼보기도 한다. 그때는 대부분 초가집이던
우리동네는 이제 거의 다양한 벽돌로 지은 양옥으로 바뀌었다. 제일 낮은 초가집 한 체가
있었다. 이 집은 옛 모습 그대로 민속보존용으로 관리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몇 개소의
주인 없는 빈집도 있긴 했지만 골목마다 봉고류의 소형트럭이 널렸다. 농산물 출하 등 영농
용이라고 한다. 살기가 좋아졌다. 20∼30년 전과는 다르게 부자동네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인사를 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태어나서 서로
더불어 함께 생활하며 자랐고 그간 힘들고 괴로웠던 고비 고비를 잘 이겨내고 이렇게 옛 향
교와 석빙고, 도주관(道州館: 지방수령의 객사)과 읍성(邑城), 그리고 효제정신(孝悌精神) 등 전통문
화유산을 간직한 고향을 잘 지켜 왔다.
 
  앞으로는 조국 근대화의 초석 새마을 운동 발상지인 이웃 신도마을(청도읍) 못지 않게 우
리 모두가 힘을 모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더욱이 이 군수님은 최경
환(崔炅煥) 국회의원과도 뜻을 맞추어 함께 세계적인 관광사업으로 발전시키고있는 투우장
설치와 소득을 높이는 다양한 많은 사업의 예산을 중앙으로부터 유치하여 우리의 행복청도
를 만드는데 기여하신 분이다. 라고 하였다. 이제 여력은 선조의‘얼’을 후배들에게 어떻게
잘 전하느냐 하는 문제다. 남은 인생 역시 같이 살아갈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일생을 마치
고 다음‘하늘나라에 가서 또 만나야 할 인연이니 마무리를 잘 해야 할 것이다’라고 느낌
을 말하였다. 붉고 푸르게 세상이 바뀌면서 옛 가난한 나라가 발전하여 선진국 대우를 받는
것처럼 우리 고향도 새로운 발전으로 더욱 알찬 부자지역 동네가 되었으면 하고 나는 마음
모아 축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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