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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욕(半浴)하다 반욕(半慾)하다    
글쓴이 : 공인영    12-07-16 14:30    조회 : 5,394
     반욕(半浴)하다 반욕(半慾)하다 
 
                                                        

  낮으로 한 차례 장마 비가 지나간 탓에 무겁게 젖은 여름밤이다.가로등 불빛이 어룽어룽 녹아든 호수를 바라보며 숨차게 걷는다. 체격이 월등한 남편과 보폭을 맞추려니 걷다가도 몇 번씩 투(two) 스텝을 해야 한다. 쳐졌다 따라붙다 노력이 가상한데도 남편은 씩 한번 웃어줄 뿐 한 걸음도 늦추질 않는다. 장딴지가 당기고 두 팔도 뻐근해지는 것이 그래야 운동이 된다나 어쩐다나.
  몸이 나이값을 한다고 군살이 게으름처럼 달라붙는다. 그래봤자 정신의 비계덩이만 하겠냐며 얕보았더니 이제 슬슬 삐거덕거리기까지 한다. 때로는 깊은 밤 통증으로도 몰려와 사람 놀라게 하기에 모처럼 큰 맘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늦은 밤인데도 사람들 참 많다. 어른도 걷고 아이들도 걷고 데리고 나온 애완견들까지 종종거린다. 마냥 정겹다가도 가로등 불빛이 번진 안개 속에 뒤통수만 무리 지어 움직일 땐 얼핏 유령의 행렬 같기도 하다.
  느릿한 산책으로 몸과 마음을 쉬면 좋으련만 그저 숨 가쁜 이 걸음들이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늦었다고 여길 때가 제일 빠르다기에 우선은 건강을 위해 열심히 걸어볼 참이다.
한 시간쯤 걷고 나니 예열된 듯 몸이 덥다. 기분 좋게 돌아와 욕조에 물을 받고 반신욕(半身浴)을 하기 위해 들어앉는다. 흔히 ‘반욕'이라 하는데, 늘 하던 목욕과 다를 바 없지만 더운 물을 배꼽 아래까지만 채우는 게 조금 다르다면 다를까.
  혈액 순환에도 좋고 질병도 예방한다는 말엔 건성이더니 살도 빠진다는 데서야 솔깃했던 걸 보면 요즘 서로의 모습이 볼만했단 말이렷다. 과욕 하는 습관으로 살다가 이젠 또 넘쳐서 빼겠다니 이런 어리석음이 또 있을까.
  유행이란 삶의 질을 다양하게 해주면서 일시에 사람들을 몰개성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걱정인 것은 무엇이든 스펀지처럼 여과 없이 빨아들이려는 우리의 의식이다. 그러면서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웰 빙(well-being) 시대에 가질수록 부족하고 먹을수록 더 배가 고프다니. 바로 거기에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김 서린 안경 너머로 보던 책은 내내 제 자리다. 오히려 낮에 걸려온 전화 속의, 동생네 어려운 가게 일이 맘에 걸린다. 마냥 도울 수도 없으면서 마음만 어렵고 괴로운 일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즐거운 일보다 걱정과 염려가 더 많은 요즘 '호사다마(好事多魔)' 란 말도 옛말이다. 한번 찾아온 어려움은 자꾸 꼬리를 물고 다른 어려움을 데려온다. 나라 안팎의 사정이 이제 서민들의 삶 곳곳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게 없다.
  이런 저런 상념 중에 편하게 살기 위해 외면한 것들도 불쑥 튀어나와 부끄럽다. 관심과 나눔은 비단 혈육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면 좀더 그렇다.
반욕은커녕 물 한 바가지로 때우고 고단해 쓰러지는 사람들, 갈수록 어려운 살림에 두 번 세 번 휘청거리는 수많은 타인이 이젠 결코 남의 모습만이 아닐진대. 그래서 이 짧은 안락함마저 미안해질 때도 있다.
  반욕(伴浴)을 하다가 문득 반욕(半慾)을 생각한다. 반욕이 반만 채운 물속에 앉아 몸의 피로를 푸는 일이라면 또 하나의 그것은 생각도 욕심도 그리고 삶의 지나친 애착도 자꾸 덜어내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사람이 모질어선가 웬만해선 땀도 나지 않는 몸에 드디어 땀이 맺힌다. 신기하다. 목을 타고 가슴을 지나 물 속으로 또르르 굴러 내리는 땀방울 속에 찝찔한 소금기만 내보내고 싶진 않다. 고요히 눈 감고 엉킨 실타래 같은 마음도 풀며 오래 전 꽉꽉 채우지 않고도 즐겁게 살던 때의 소박함을 추억하고 싶다.
  언젠가 남편과 욕조를 서로 들락거리며 반욕(半浴)하다 반욕(半慾)이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그때는 몸과 마음의 두 가지 건강을 전부 회복한 게 분명하리니.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기만 하다면야 우리 오죽 좋으랴./

                                                                           < 문학공간.2005.11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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