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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장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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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움과 채움 [한국산문]    
글쓴이 : 장정옥    12-07-19 16:00    조회 : 4,974
비움과 채움
 
 
 
                                                                                                                      장정옥
 
  이사를 간다. 오래전부터 좀 더 넓고 쾌적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컸기에 결정이 난 순간부터 기분이 들떴다. 넓은 거실은 이런 모양으로 해야지. 방들은 저런 가구들로, 부엌엔 이런 것들을 들여놓으면 좋겠어. 욕실은 어떻게 꾸며볼까 궁리했지만 한편으론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라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아마도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부담 때문일 것이다.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이삿짐센터에서 포장으로 깔끔하게 옮겨주기에 특별히 정리할 것도 없다. 그래도 귀중품이나 보이기 민망한 것들은 미리 싸두어야 한다.
  속옷이 담긴 서랍을 열었다. 색깔별로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것들 중 절반은 겨우내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 그대로다. 언젠가부터 서랍의 빈 공간이 생기면 뭔가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꼭 필요하지 않아도 갖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사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땐 내의가 딱 두벌이었다. 그렇다고 지저분하게 자란 건 아니다. 갈아입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여벌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절을 지내면서 내의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관념이 지금의 나를 흔드는지도 모른다.
  연필꽂이 안에는 필기구들이 넘쳐난다. 나는 특히 연필 같은 잡동사니 문구류 사는 걸 좋아한다. 연필 머리에 달린 지우개의 가지각색모양 따라, 또는 방울이나 인형 같은 특이한 형태의 장식이 달린 것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단순히 보기 좋아 꽂아 놓을 뿐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 각양각색의 그것들은 앞으로 20년은 너끈히 쓸 수 있겠다. 풍요가 낳은 소비의 일례이다.
 
  냉장고는 더 심하다.
우리 집에 처음 냉장고가 들어오던 날, 어머니는 아들을 낳았을 때만큼이나 감격해하셨다. 지금은 자취하는 학생들이나 쓰는 200리터 냉장고였다. 그래도 여섯 명의 가족이 한 여름을 지나는데 용량이 적다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여름이면 언제나 시원한 얼음물이 지친 가족들을 황홀하게 해 주었다. 지금은 가족 네 명이 800리터가 넘는 양문형 냉장고를 쓴다. 그런데도 항상 무언가 넣을라치면 빈자리가 없다. 그것도 부족해 김치나 과일은 따로 보관하는 냉장고가 또 있다. 작은 냉장고를 쓸 때도 어머니는 온갖 종류별 김치를 넣어두면서 신 김치를 가족에게 먹인 일이 없다. 나는 대형 냉장고를 쓰면서도 가끔 오래된 반찬이나 채소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곤 한다.
 
  가끔 방송이나 잡지에서 멋진 집 구경을 하게 된다. 누구나 살고 싶어 꿈꾸던 집안을 들여다보자. 하나같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찬장안의 식료품과 그릇들, 곳곳에 자리한 넓은 수납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생필품들, 정리정돈이라는 설명 하에 빈틈없이 채워진 냉장고 안, 수백 벌을 걸어도 손쉽게 찾을 수 있다는 드레스 룸 등 너무나 많은 물건들로 넘쳐난다. 집 안에 빈틈이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살고 있다.
 
  커진 공간, 남는 공간이 있으면 뭔가 채워야 한다는 무언의 암시를 받는다. 그리곤 이어서 욕망이 생긴다. 그것은 부족함과는 별개의 시선이다. 유년시절 가지고 싶었던 마음의 해소도 아니다. 단지 소유욕구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를 끊임없이 채워 넣는다. 이는 가졌다는 자족감일 뿐 후엔 더 큰 상실감이 또 빈 공간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대청마루에 나가 누우면 커다란 쌀뒤주 한 개 외에는 아무것이 없어도 그 공간이 초라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부엌에 가면 작은 찬장과 정갈하게 그릇을 올려놓는 선반 이 전부였지만 멋으로 따진다면 지금의 화려한 부엌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새로운 것으로 가득 채워야만 멋진 공간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술과 맞아떨어지는 소유욕구의 발동이며 나만이 가졌다는, 또는 나도 가졌다는 허세와 자만심 일뿐이다.
 
  이사하며 버린 물건에 대해 이야기 한 후로 가족들과 계획을 실천하기로 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그릇, 가구 외에는 어떤 것도 집안을 채우지 않기로 했다. 마트에 가면 대용량 포장이 많다. 원 플러스원에 현혹돼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 집을 채웠던 나쁜 버릇도 이제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사기로 했다.
식탁이나 냉장고 안에 반찬 이외의 음식이 없으면 자연히 주전부리도 줄어든다. 속이 비면 얼마나 몸이 가벼운지. 몸이 가벼우니 이상하게도 생각은 더 깊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오늘도 T.V에서는 꼭 사야할 물건이라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예쁜 색은 이미 품절이라고 반짝반짝 빛나는 물건들을 들고 외쳐대고 있다.
  비어있는 내 속을 어떤 것으로 채워야 할지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궁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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