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승의 노래
달라이라마가 사랑한 연인은 마키아미(瑪吉阿米 MAKYE AME, 순결한 어머니)였다.
그래서 제6대 달라이라마는 파계승이 되었다. 스스로 부처의 자리에서 내려와 한 여인을 사랑하였다. 천 년에 하나 나오는, 여자를 생각하는 남자. 그런 라마가 쓴 사랑에 관한 시詩 66편이 전해지고, 일부는 티벳인들의 연가戀歌가 되었다. 존엄한 달라이라마보다 연애시인으로 더 알려진 ‘창양가조’소년은 48년 만에 완공된 포탈라(홍)궁의 첫 주인이 되었다. 그는 달라이라마가 되어서도 고원의 호수와 아름다운 꽃들과 연인에 대한 사랑의 시를 썼다. 육바라밀을 수행하는 불교에서는 음행淫行을 가장 큰 죄로 여기고 있는데도 한 여인을 잊지 못하고 스스로 파계의 길로 들어서는 창양가조, 티벳 영혼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종교적 교리를 앞세운 내부 세력의 밀계密計에 의해 몽골로 납치되어 라싸 동북방의 중국 청해성에서 2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파계는 자칫 무미건조할 수 있는 종교생활에 사랑의 향기를 불어 넣었다. 법왕으로서의 권위와 명예를 놓아 버리고 우주 만다라의 꽃잎을 흩뿌려 난민의 세계를 더욱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고행길을 스스로 선택하였을 것이다. 아직 지옥의 문이 텅 비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세월이 있기 때문일까.
창문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모습의 ‘마키아미’는 포탈라궁에서 보이는 조캉사원의 뒤편 노란색 2층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하얀 레이스가 달린 모자를 쓰고 슬픈 눈으로 누군가를 생각하는 모습이다. 굳이 ‘창양가조’가 아니더라도 이 청순하고 아리따운 티벳의 처녀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프랑스의 ‘잔 다르크’와 영국의 ‘엘리자베스’, 아르헨티나의 ‘에바페론’이 혁명과 인고와 위로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중국의 ‘서시’를 비롯한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인들이 전쟁의 참화에서 고통 받는 백성들을 위무하기 위해 다시 그림과 시詩로 태어났다. ‘마키아미’는 삭막한 고원의 정서에 모성애의 편안함과 사랑을 전하는 티벳 여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의 ‘심청’과 ‘춘향’은 판소리에 갇혀 있고, 서울의 운종가에서는 뼈를 깎고, 가죽을 부풀려 성형미인을 대량생산하고 있다. 상품으로서의 예쁜 인형과 영혼의 자장가를 부르는 슬픈 여인과는 근본적으로 성품의 차이가 있다. ‘마키아미’는 사랑을 실천한 성자를 고원高原의 음유시인으로 만든 티벳의 ‘순결한 어머니’였음이 분명하다. 청해성의 파계승 ‘창양가조’는 티벳인 전체에게 시와 사랑의 노래를 전한 성인이 되었다. 6六이란 숫자는 수행의 완성을 뜻하면서 미완성을 뜻하기도 한다. 제6대 달라이라마의 파계는 이미 제5대의 전생에서부터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었을까.
모자를 머리에 쓰고 댕기 땋아 묶은 머리.
내가 등 뒤로 넘기자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녀
‘자, 그럼’ 내가 말하면서 당신이 슬플 거라고 생각하니
‘슬퍼’라고 말하는 그녀
‘곧 다시 만날 수 있겠지’라고 말하는 나.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군에 등재된 티벳의 수도 라싸는 1,3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서기 640년경 토번왕국의 '송첸캄포(宋贊岡保)'왕이 네팔의 두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 후 산남(山南)에서 수도를 라싸로 옮기고 불교왕국으로서의 면모를 다지고 있었다. 당태종의 조카딸 문성공주의 의견에 따라 현재의 터전에 조캉사원(大昭寺따자오시)을 세웠다고 한다. 당시의 불사佛事를 두고 지금 여러 의견이 있다. 나찰녀의 심장부에 열 두 개의 기둥을 박아 습지를 매립하였다고 하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백제무왕의 미륵사건립이 신라에서 온 선화공주의 의견에 따라 용화산의 습지를 메우고 건립했다는 전설과 비슷하다. 하지만 미륵사의 건립이 무왕보다 120년이나 앞 선 무령왕 18년 때 건립된 것으로 판명 나듯이, 고향의 친척들과 떨어져 이민족의 후궁이 된 문성공주가 강국의 불교융성을 도왔을 리 없다는 것이다. ‘서시’가 월나라를 도우려고 오나라를 기울게 하였듯이 문성공주도 토번의 수호신을 압제하여 당나라를 도왔을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달콤하고 향기로워 구분하기 어렵다’는 ‘창양가조’의 싯귀절이 예사롭지 않는 대목이다. 어쨌든 현재의 실세는 중국이고 역사는 군사력이 좌우한다. 그래서일까? 2013년 2월 20일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에서 최근 티벳의 승려와 민간인의 분신자살자가 100명을 넘어선 것에 대하여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성명서를 냈는데 다분히 중국의 눈치를 살핀 절제된 표현이었다.
내가 5년 전에 티벳을 방문 했을 때도 분위기는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티벳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연일 분신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한 때 조캉사원 입구의 상가대로에서 방화시위와 최루탄이 터지는 등 소요사태가 벌여진 직후인지라 차가운 날씨와 더불어 중국 군인과 경찰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다. 포탈라궁 앞 광장에는 오성기가 티벳의 깃발대신 포탈라궁을 넘어온 겨울의 세찬 바람을 맞고 있었고 그 아래 군인들은 꼿꼿이 선채로 얼음병정이 되어가는 듯했다.
티벳의 옛 국가명은 ‘토본’왕국이다. 그 왕국의 ‘송첸감포’왕이 무력을 통하여 역사상 최초의 통일된 불교국가의 기반을 다졌다면 제5대 달라이라마는 900년 동안 흩어진 티벳민족의 정신을 하나의 종교로 통일시킨 법왕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단절된 900년의 역사의식을 통합시켜 하나의 완성된 통일국가로서의 면모를 어떻게 세울까를 고심하였을 것이다. 먼저 달라이라마의 법통을 세우고 자신은 제5대가 되었다. 다음의 후생자는 당연히 ‘제6대 달라이라마’가 되는 것을 알고서 배분한 생명의 설계이리라. 조캉사원과 포탈라궁을 동일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존립하게 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상징하게하고 깊은 불심으로 평화를 사랑할 수 있다면 보기에 참 좋을 것이다. 물질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이웃과 부모를 배려하고 공경하는 사회가 될 수만 있다면 과연 자신이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를 조용히 생각해보았을지도 모른다. 황량한 고원에 꽃을 피우고 물고기와 두루미를 불러올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더 바라리. 파계를 결심한 그는 포탈라궁 완공 12년 전에 생명의 불씨를 스스로 꺼버린 것이다. 자신의 생명조차도 조절하는 그의 열반은 아름다운 파계를 위한 것이고, 그 파계로 큰 사랑의 꽃을 피웠으니 그게 바로 ‘우담바라’가 아닐까.
그의 충정어린 배려와 같이 티벳인은 역사 앞에 오체투지하고, 영혼의 지도자에게 참배하며 매일매일 수행하면서 지낸다. 그들에게 매일 매일은 참회의 날이고 해뜨기 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그 의식은 계속되었다. 버스도 도량道場이고, 정류장, 구두닦이, 시장, 거리도 온통 불교천지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절하고 시계방향으로 걸으며 두루마리 경전이 담긴 경통(마니차)을 돌린다. 그들의 참배의식은 너무나 크고 진지한 무게를 느낄 정도이다. 마치 산처럼 큰 얼음 속에 온통 울음을 가둬 놓은 것 같은 안타까움이다. 누구에게 그것을 내 보이기 위해 자초한 고난이 아니고 자신의 신앙심을 돋보이기 위한 억지 몰입도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고, 그것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욕망을 흔드는 큰 장애요인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달라이라마는 곧 국가이고, 국가는 라싸였다. 라싸는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향이자 부모의 품안이다. 그래서 죽기 전에 꼭 밟아봐야 할 땅으로 섬겨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눈 덮인 험산을 넘고, 바람 세찬 얼음고원을 지나 라싸로 향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먼 길을 어렵게 돌아서 찾아 온 자식만큼 소중한 자식이 또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죽기도 하는데, 죽은 사람들의 이빨이 조캉사원의 내부 등잔받이 등 구석진 곳에서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들의 오체투지는 그만큼 진지한 행렬이고 거룩한 감동이다. 삭막한 티벳의 산야를 아름다운 생명의 자수刺繡로 장식하고 맑고 푸른 호수를 더욱 청정하게 빛나게 하는 것이다.
독수리는 불사조가 되기 위하여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자신의 부리와 발톱을 스스로 뽑는다고 한다. 그 부리와 발톱이 다시 자라기까지 수많은 세월을 고통 속에서 보낸다. 추위와 굶주림과 외로움은 필수이다. 그것을 이겨내야 비로소 새로운 날개깃이 돋고 지혜가 번득이는 불사조가 되어 창공을 유유히 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에는 항상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그들을 감시하는 무장 군인의 절도 있는 행동에는 제국에 대한 무자비한 충성심이 묵직하게 장전되어 있었다. 사원의 광장에는 두 종류의 독수리가 맴돌고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조장鳥葬을 바라는 굶주린 독수리와 부리와 발톱을 뽑아버린 고행의 불사조가 그것이다. 하나의 개체군은 차갑게 번득이는 AK소총의 총열을 쥐고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었고, 하나의 행군은 엎드리고 쓰러지며 거칠고 뜨거운 숨을 품어내고 있었다. 군인들이 차디찬 화강암반의 거친 바닥을 규칙적으로 밟아가며 지나가는 소리가 마치 제국의 장갑차의 무한괘도가 광장을 점령해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어디선가 화르륵! 불길이 솟아오르며 티벳의 완전한 자유와 독립을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 올 것만 같았다.
향나무 태운 짙은 연기가 광장을 가득 메워가고 있었다. 인도의 바라나시 가트의 분향 연기와 중국 사천성의 아미산 사찰의 참배연기보다 더 짙고 향기 있는 연기이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연기를 피우는 광장이 세계의 어느 곳에 또 있을까? 그 연기 속에 사원의 참배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고, 군인들이 순찰하고, 끊임없이 절을 하는 사람,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 멀리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도 그 연기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군인들이 지나가고 자욱한 연기가 깔린 사원의 광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주고, 관광객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잠시 후 한 소녀가 나타났다. 새로 오체투지한 가족이 도달한 것이다. 소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체투지를 했다. 그 때마다 바닥에 깔린 연기가 풀썩풀썩 날아올랐다. 마치 대양의 돌고래가 수면에 고개를 내밀었다가 유연하게 자맥질하는 것 같았다. 세 걸음을 가고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기도하며 다시 엎드리어 무릎을 꿇고 온몸을 던지듯 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광장의 바닥은 결이 고운 대리석이 아닌 거칠게 다듬어진 화강암 판석이다. 그 거친 바닥에 엎드려 밀면서 이마와 가슴이 깨지고 손바닥에 댄 나무 조각의 살점이 떨어져 나갈 법도 하다. 고무를 덧댄 여린 무릎의 연골이 부서질지도 모르는 지독한 인고의 현장이다. 손바닥에 댄 나무에서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돌과 나무가 부딪혀 나는 소리는 잃은 것을 찾으려고 억지로 울음을 삼키는 소리 같고, 불사조가 되기 위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 같다. 그들은 수 백리 길을 그렇게 걸으며 쓰러지며 왔을 것이다. 넘어지고는 다시 불끈 일어서고 다시 주르르 밀려갔다. 기도란 마음이 한 번쯤 찢겨져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 위로의 마지막 수단으로 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상처가 깊을수록 기도가 더욱 절실한 법이다. 수 백리에 달하는 먼 길을 생명을 걸고 오체투지할 정도라면 세파에 시달린 연륜이 그만큼 있어야 하는 법이다.
이윽고 광장의 중앙에 도달한 소녀가 진행을 멈추고 뒤 돌아섰다. 소녀는 고무앞치마를 갑옷처럼 둘렀고, 무릎아래를 감발하였다. 검게 햇볕에 그을렸지만 눈동자는 샛별처럼 빛났다. 그런데 믿을 수 없었다. 소녀가 우리의 중학교 1~2학년정도로 어려 보였다. 바로 내 눈앞에 전개된 뚜렷한 현실이건만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저 어린 소녀가 어떻게 이 어려운 기도를 다 한단 말인가. 무슨 아픔이 그토록 절절하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고통이 어두울수록, 그게 더 춥고 외로움이 깊을수록 불사조의 깃털이 빛나는 것일까. 사랑이 고통스럽고, 절망감이 더 깊을수록 그 사랑이 환하게 빛나는 것일까?
소녀가 누군가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는데 소녀보다 더 어린 소년이 광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순간 가슴 속에서 큰 바다의 파도가 절벽을 시원하게 때리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요한 호수를 넘고 산과 들판을 날아 희망과 열정의 소식을 가지고 드디어 도착한 것인가. 그들이 불교군대의 선발대였고 ‘마키아미’였고 ‘창양가조’였다. 그들은 고원에 핀 노란 들국화의 정령들이었고, 맑은 호숫가를 맴도는 하얀 두루미들이었다.
총과 군화로도 차마 더럽힐 수 없는 그 광장에 나도 같이 엎드려 기도하고 싶었다. 그들의 상대는 탐욕스러운 제국의 폭력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사랑을 위한 정열이자 자유를 위한 처절한 수행이었을지 모른다. 그들의 목표는 부처에 있지 않고 그 정성을 전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 버린 파계승의 용기가 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간결한 생활의 모습 그 자체였다. ‘부유하지 않지만 탐욕스럽지 않다’며 피난지 다람살라에서 제14대 달라이라마가 술회한 그대로였다. 이방인의 낯선 애수哀愁와 연민이 화려한 위선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나에게 외치고 있었다. ‘놓아라, 지금 당장 놓아라, 모두 다 쓸데없는 것들이다.’라고.
펄럭이는 깃발을 스친 바람을 따라 오고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꽃으로 피어나는 곳. 때로는 정답고 때로는 부딪히는 광장에 동쪽에서 온 달마의 제자들이 사랑과 자유를 위해 자신을 던져버린 101위位를 애도하는 듯 말없이 서있고, 분산의 역사와 난민의 고통사이에 ‘마키아미’와 파계승의 노래가 있으니.
그 달에 내가 모든 경통을 돌린 것은
도를 깨닫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대의 손가락 끝을 만져보고 싶었기 때문이라네.
그 생에 산과 물을 돌고 불탑을 돌고 돈 것은
내세에 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중에 그대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라네. 〈청해성의 파계승 창양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