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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호크 다운    
글쓴이 : 김창식    13-06-03 13:48    조회 : 6,937

          블랙 호크 다운
 
 종로2가 옛 고려당 뒤 골목길을 지나기라도 하면 지금도 한 무더기의 남녀대학생들이 왁자지껄 쏟아져 나오고 골목길로부터는 "타타타타" 플로펠러 굉음과 함께 날씬한 몸체의 검은 헬리콥터가 불쑥 떠오른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먼지를 일으키며 선회하던 헬리콥터가 갸우뚱하는가 싶더니 건물 벽에 이리저리 날개를 부딪는다. 곧 이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거꾸로 처박힌다. 사람들이 왠일인가 싶어 모여든다. "어, 어어, 저러면 안 되는데……."
                                                                                 *
 1970년대는 청?생?통(청바지, 생맥주, 통기타), 장발과 미니스커트로 대표되던 청년문화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장발(귀를 덮으면 안 됨)과 미니스커트(무릎 위 17cm이면 대상)단속을 피하려 거리를 다닐 때면 전전긍긍, 사주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래도 남자들은 기를 쓰고 머리를 길렀고, 여자들은 한 겨울에도 부득불 짧은 치마를 입었다. 장발과 미니스커트가 저항의 상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울리는 사람의 경우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테지만,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미니스커트가 아름답긴 했다.
 그때는 요즘의 PC 방이나 노래방처럼 분식집과 탁구장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한 집 건너 분식집이요, 두 집 건너 탁구장이었으니까. 분식집은 그 시절 남루한 젊음이 즐겨 찾던 인기 음식점이요, 탁구장은 단체 오락장이라 할만하다. 각종 동아리 모임도 활발했다. 이를테면 우리는, 종로2가에 있던 YMCA의 독서모임이나 회화 동아리에서 모임을 갖고 '애프터(뒤풀이)'는 분식집에서 가졌다. 김밥, 찐 만두, 쫄면, 볶음밥을 나누어 먹으며 못 다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그 곳을 나와서는 3차로 고려당 뒷골목에 있는 2층 건물 탁구장으로 몰려갔다. 비싼 생맥주는 '그림의 술'이었으니 자주 마시지는 못했다.
 탁구장에는 대개 선객(先客)들이 있어 순번을 기다려야 했다. 일행이 많을 땐 주로 복식 게임을 했다. 잘 치는 사람이야 왜 없었을까마는 대충 가위 바위 보로 팀을 나누었다. 남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탐색전이 전개됐는데 마음에 두고 있는 여학생이 파트너가 되었으면 하고 은근히 바랐던 때문이었다. 그래야만 우연을 가장하여 어깨를 부딪는다거나 공을 서로 주우려다 자연스럽게 손끼리 맞닿은 행운을 기대할 수 있었음으로.
 동아리 회원 중 포크 가수처럼 긴 생머리에 무릎 위 한 뼘 가죽 미니스커트가 어울리는 정결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나 역시 그녀가 짝이 되었으면 싶었다. 기대는 매번 빗나가곤 해 허탈할 뿐이었지만. 그녀가 공을 상대 진영으로 받아넘기며 순간순간 머리칼을 이리저리 쓸어 넘기는 모습이라니.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공을 주을 땐 허리를 굽히지 않고 무릎을 맞댄 채 스트레이트로 주저앉았다가 공을 주워 들고선 그 자세 그대로 올곧게 일어서곤 했다. 아, 그럴 때마다 눈부시게 빛나던 흰 무릎의 순수(純粹)!
 나는 그녀에게 '헬리콥터'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흠모해 마지않았다. 그녀는 흑요석(黑曜石)처럼 빛나는 '수직상승비행기'였다. 그 비행기는  단단한데다 조신하기까지 해 한 번도 엎어져 내리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면 강한 와류(渦流)가 생겨 그 누구도 가까이 다가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헬리콥터는 항상 혼자 뜨고 혼자 내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음전한 '잠자리비행기'는 더 이상 탁구장에 날아들지 않았다. 우리들 남학생들은 가문 밭[田]에 모여든 비둘기 무리처럼 모여 이제나 저제나 "구구구구" 헬리콥터의 출현을 학수고대했다. 알고 보니 탁구가 그렇게 재미있는 운동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믿기지 않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어찌 그런 일이? 헬리콥터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낯선 외지 마을 이름도 모를 어느 소총수의 눈 먼 총탄에 맞아.
                                                                              *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실제 그런 일이 발생했다. 1993년 동아프리카의 수도 모가디슈. UN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된 미국의 정예부대 델타포스의 최신예 헬리콥터 블랙 호크가 하찮은 민병대의 소총 사격으로 추락해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리들리 스콧이 감독하고 조시 하트넷, 이완 맥그리거가 출연한 영화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은 이 실화를 다룬 것이다. 두 유 카피(Do yo copy)? 이머전시(Emergency),  리피트(Repeat), 이머전시. 두 유 리드(Do you read)? 블랙 호크 다운! 블랙 호크 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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