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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줄의 잠자리    
글쓴이 : 김창식    13-12-20 19:42    조회 : 6,763
                                          거미줄의 잠자리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다. 누렇게 빛바랜 배관이 지나는 벽면 거미줄에 죽은 잠자리가 걸려 있다빗살무늬 날개는 반쯤 어스러졌고 목은 꺾여 있는 채다.얼마간 시간이 지난 듯 먼지 쌓인 거미줄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낡은 지도처럼 보인다. 잠자리의 주검은 껍질만 남아 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치련만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걸음을 멈춘다. 거미집의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 거미는 먹이를 버려두고 어디로 옮겨간 것일까? 용도 폐기된 지 오래인 거미줄에 눈먼 잠자리가 길을 잃고 날아든 것인지도 모른다. 나방도 아니고 잠자리가 지하 층계로 날아들었다는 것 또한 수상하다. 어찌 된 셈인지 내용을 재구성해보려 하지만 포획의 현장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비슷한 장면을 묘사한 '거미줄'이란 시를 읽은 적이 있다. 대상이 잠자리가 아니라 나비인 것이 다르지만 상황이 닮았다. 시인은 거미줄에 걸린 나비의 날개를 보고 꿈속에서 몸부림치다 떨어져 나간 자신의 어깻죽지를 떠올리며 휘둘러본다. 자신의 어깨와 팔이 건재함을 확인하자 생명의 경이를 느끼며 안도한다. 삶과 죽음이 사물의 겉과 속처럼 잇닿아 있음을 새삼 체득하였음 직하다. 아니면 옥죄어 부서진 '나비의 날개'와 허공 속에서 휘저어 본 온전한 '나의 팔'이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불교의 윤회적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갔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상상력으론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허공에 걸린 잠자리가 내게 전해 준 느낌은 사뭇 다른 유의 것이다. 며칠 전 나들이 길 신호 대기 중에 보았던 장면이 생각난다. 한 사내가 피를 흘리며 도로 턱에 반쯤 몸을 걸친 채 누워 있는데 주위로 몇몇 행인이 모여들었다. 교통사고가 난 것이리라 짐작할 뿐 정확한 형편을 알 수 없었다. 신호가 바뀌어 현장을 떠나면서 석연치 않은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보이지 않는다! 특별할 것도 없는 자연 생태계의 먹이사슬 현장에서 뺑소니 사고를 연상한 것이 지나친 비약일까.
 
 사건?사고가 아니더라도 익명의 가해자와 드러난 피해자의 사례를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이버 세상의 악성 댓글로 인해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 증폭되고 그로 인해 곤혹을 치른 유명 인사들이 떠오른다. 한 탤런트는 생을 마감하기까지 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이름 모를 다수이거나 관계의 그물망 뒤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요즘 세간의 화두로 떠오른 '왕따' 문제를 비롯해, 귀책사유 없는 개인에 대한 집단 따돌림의 은밀함과 폭력성은 우리사회가 마주한 병리적 문제점인 것처럼 여겨진다.
 
 시야를 넓혀 일상의 풍경에서 그 같은 경우를 찾아본다. 이를테면, 길에서 마주하는 걸인과 부랑인, 지하도의 노숙자들. 그들 또한 딱히 누구라고 못 밖을 수 없는 가해자와 보이는 피해자의 관계를 일깨우는 곤혹스러운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응달진 곳에 자리한 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고 사연 또한 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누군들 그런 삶의 방식을 선호할 것인가. 그들이 곤궁한 처지에 내몰린 원인을 순전한 개인의 책임과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측면이 있다. 그들 또한 고도 성장사회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요,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의 작동과정에서 발생한 희생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긴 거미줄이 바람도 없는데 하늘거린다. 고개를 흔들며 황폐한 현장을 떠나 걸음을 옮긴다. 잠자리의 사체 위로 개 한 마리가 겹친다. 초등학교 입학 전 기르던 강아지가 쥐약을 먹고 널브러진 일이 있었다. 어른들이 어르고 쓰다듬어도 강아지는 목조차 돌리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죽어가는 짐승의 그렁그렁한 눈처럼 애달픈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던 중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어른들이 양잿물을 억지로 떠넘겨 토하게 하느라 소동을 벌이는 사이 강아지가 꼼지락대더니 비틀거리며 일어선 것이다. 어릴 적 되살아 난 강아지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 오고 삶의 오롯한 신비에 한 걸음 다가선 느낌이 들곤 한다.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뒤돌아본다. 잠자리도 그날의 강아지처럼 고장 난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반짝 살아날 수 없는 것일까. 볼품없던 잠자리 날개가 거짓말처럼 솟아나고, 목이 바로 서며, 살이 돋고 피가 돌아, 그 잠자리가 퍼덕거리며 그물을 걷고 살아나, 비좁고 음습한 계단을 거슬러 올라, 푸른 하늘로 헬리콥터처럼 날아오른다. 어둠의 사슬을 걷고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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