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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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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유산    
글쓴이 : 정진희    14-03-27 18:02    조회 : 4,988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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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희
 
중학교 동창인 S는 음대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껏 음악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뵈러 이년 마다 한 번씩 한국에 온다. 올해 유월에도 6주의 휴가를 갖고 그녀가 왔다. 그런데 이번엔 특별한 계획이 있었다.
하루는 전화를 걸어 증인 좀 서 줘야겠다는 말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온 지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증인이라면 믿을만하던지 무조건 편을 들던지 해야 할 텐데 친구들 중 내가 제일 믿을만하다는 건가? 아니면 미련할 만큼 우직해 보인 걸까? 하는 생각들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은 유언장을 작성하는데 증인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유언 공증을 위해 두 명의 증인이 필요한데 그녀의 엄마 쪽에서 한 분과 내가 선발된 것이다.
증인 자격으로 오라고 한 곳은 공증인 합동사무소였다. 자리에 앉는 내게 공증인이 두툼한 서류를 주며 읽어보라고 했다. 그녀 엄마의 재산 목록과 함께 엄마가 죽으면 세 명의 자녀가 모든 부동산을 똑같이 나눠 갖게 되는 금액이 명시되어 있었다. 유산이라곤 1원도 받아보지 못한 내게 한 자녀 앞으로 배당된 수억의 숫자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공증인은 내게 아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사실대로만 말해주시면 됩니다. 라고 했다. 내 추측대로 절대 거짓말 안할 친구로 선정된 것에 대해 인생 잘 못 산 것은 아니다 싶어 안심했고, 혼자된 엄마와 이혼한 남동생을 두고 부모님의 재산을 미리 정리하는 친구의 현명함이 대견했고, 나는 유산을 한 푼도 못 받았지만 내 자녀에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되어 감사했고, 종이에 적힌 숫자가 나타내는 유산이라는 것에 대해 곰곰 고민하게 되었고, 찰스디킨스가 쓴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 이 생각났다.
 
신사를 꿈꾸는 가난한 대장장이 소년 핍은 어느 날 탈옥수의 협박으로 그를 도와주고 훗날 이름 모를 사람으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받게 된다. 상속인의 뜻에 따라 런던에서 신사 수업을 받게 되지만 순수함을 잃어가던 핍은, 유산을 물려준 사람이 예전에 자신이 도와주었던 탈옥수였다는 것을 알고 혐오감을 갖게 된다. 탈옥에 실패한 탈옥수는 사형집행 직전에 숨을 거두고 그의 중죄 때문에 핍은 받을 유산을 압수당한다. 오히려 빚까지 안게 된 핍은 그제야 후회를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자기를 돌봐주고 변호인의 보상금을 거절하는 등, 성실하고 따뜻한 사랑을 지닌 매부 조에게서 진정한 신사의 모습, 위대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위대한 유산은 불우하게 자란 디킨스의 삶이 투영된 소설로 위대한 유산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과연 위대한 유산이란 무엇일까. 디킨스는 물질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묵묵히 믿어주고 진정으로 기원해 주는 온기로 인해 꺾인 다리를 다시 펴게 하는 것. 그래서 조금씩 더 나은 삶을 향해 가게 하는 것. 다시 말하면 눈에 보이는 돈이 아니라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진정한 가치나 의미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지난여름 런던에 있는 찰스디킨스 기념관에 갔을 때였다. 4층에 의아한 구조물이 있어서 물어보니 무능력한 그의 아버지가 빚을 지고 들어갔던 감옥의 창살인데 감옥이 헐리자 가져왔다고 한다. 감옥신세를 질 만큼 무력한 부모와 가난으로 인한 온갖 경험이 그에게 세상의 부정과 모순을 보는 시각을 키우고 인간의 참 된 가치에 눈 뜨게 했으니, 영국이 낳은 대문호에겐 어린 날의 불우가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부모로부터 유산을 한 푼도 받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위대한 유산을 받은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살아생전 글만 읽던 아버지의 시골집 사랑채엔 오가는 손님들로 들끓었다. 어머니는 하루에 쌀 한 가마를 밥한 적도 있다고 했다. 지나가는 거지도 불러다 재우고 노잣돈 챙겨 주었던 아버지는 문중에선 큰 인물로 평가하지만 어머니에겐 허울 좋은 양반일 뿐이었고, 내 기억 속엔 오랫동안 가족에게 무책임한 아버지로 원망의 대상이었다. 그 내력인지 나도 사람이든 동물이든 밥 먹이는 것을 좋아 한다.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애달픈 연민을 안고, 적게 갖고 작게 꿈꾸며 낮은 것에 만족하며 살다보니, 많이 갖고 대단한 것을 이루진 못했지만 큰 화 없이 살아 온 듯하다. 더구나 나이 들면서는 내가 베푼 것보다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보답 받는 것 같아 감사하다.
나는 내 자녀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 생각하다 답을 찾는다. 세상과 나와의 관계로 아프고 고민하며, 그들과의 사랑으로 뒤척이며 쓴 한 권의 책을 남겨주고 싶다. 미숙하고 부족하면 그런대로, 내가 살아온 모습의 기록을 통해 반면교사가 되어도 좋고 선경험이 된다면 더욱 좋고, 한 권의 책으로 남아 자식들에게 부러지지 않는 회초리가 된다면 더더욱 좋겠다. 그리고 자손들이 그것을 위대한 유산으로 기억해 주는 날이 온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다.
 
세상 태어나 처음으로 증인이 되고 보니 가 갑자기 소중해 진다. 미국으로 돌아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왜 나를 증인으로 선택했는지 물었다. “, 그냥 니가 젤 편해서~”
친구의 특별할 것도 없는 대답에 두터운 신임을 기대한 것은 빗나갔지만 그냥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책임하고도 비구속적인 느낌에 나도 그냥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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