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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최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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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만 내밀어 줬다면    
글쓴이 : 최기영    14-12-02 00:06    조회 : 8,016
손을 내밀어 줬다면
 
기상! 이른 아침 마방 입구에 들어서며 당직 점호를 받는 숙직사관처럼 고함을 질렸습니다. 지친 육신을 감추기 위한 쇼였습니다. 두 평 독방에 갇힌 말들이 창살 사이로 어렵게 주둥이를 내밀고 밤새 안녕했냐고 히잉거렸습니다. 나는 속없이 반겨주는 녀석들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사실 내 느낌일 뿐, 굉음에 가까운 말들의 울음소리는 나에게 허튼 수작 걸지 말고 어서 밥이나 달라는 아우성이었는지 모릅니다. 빨리 밥 내놓으라는 보챔을 무시하고 녀석들의 몸짓과 밤새 싸놓은 분비물을 확인했습니다.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탈 없이 반겨주는 것이 고마워 마음을 담아 사료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수년 동안 매일 아침 반복해 온 일을 갖고 웬 호들갑이냐고요? 그렇습니다. 건초와 사료를 주는 것은 하나의 일상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매일 아침마다 말들의 건강상태를 확인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난밤에 속옷을 흥건히 적시도록 꿈을 꾼 탓이었습니다.
연초록 풀잎 가득한 둔치위로 볕살 내리쬐던 날, 말을 몰고 나갔습니다. 말과 함께 걷고 뛰기를 반복하며 늦은 봄 산들바람을 가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가함을 누리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은 아이들을 말 잔등에 올린 채 바다 깊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왜 물속에 들어갔는지 모릅니다. 짠 바닷물이 코로, 입으로, 귀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나와, 아이들, 그리고 말이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뭍으로 나오려고 박차를 넣고 고삐를 당기며 버둥거렸습니다. 그 때 “조금만 기다리세요. 어른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요.”아이들은 어른들이 내린 명령에 따라 나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점점 수심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부르며 아우성쳤습니다. 나는 순간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에 급히 말고삐를 버리고 혼자서 허우적거리며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른인 나는 착한 아이들이 말과 함께 물속 깊이 빠져 들어가는 광경을 멀건이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아침 해살이 어둠을 내몰며 하루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마구간을 지키는 범순이가 컹컹거리며 말들 밥시간이라고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밤새 얻어맞은 것처럼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뒤척일 때 간밤에 만났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아저씨 혼자 살겠다고 우리를 버리고 도망갔죠? 어른이 뭐 그래요? 그게 어른인가요? 아저씨가 손만 뻗어 주었다면 우리 몇 명은 엄마 아빠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데, 그래, 비겁하게 혼자 살겠다고 나오니 좋습니까?”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하며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옆에서 수년간 같이 생활해 왔던 애마(愛馬) 누리가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밖에서 개와 말이 밥 때라며 아우성을 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난 목각인형처럼 담요위에 넋을 놓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것 같았는데 막상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주 짧은 찰나였습니다. 몇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식은땀으로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있었습니다. 악몽은 며칠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탓이었습니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물속으로 잠기는 것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배가 기울기 시작 할 때부터 완전히 뒤집혀 바닷물 속에 선채가 거꾸로 서는 시간까지는 위성이 지구를 수백 바퀴 돌고도 남을 시간이었습니다. 배가 물속에 잠기는 동안, 승선인원들을 구할 수 있는 황금시간에 방송에서는 모두를 구조했다는 새빨간 거짓 보도를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방송, 그리고 언론사가 국민을 대상으로 퍼트린 유언비어였습니다. 그리고 300명을 몽땅 수장 시킨 후 그들은 피울음을 토하며 자식들을 기다리는 유가족을 찾아 대한민국 최고의 잠수요원과 모든 구조 장비를 동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만 요란하게 찍고 갔습니다. 참 뻔뻔한 사람들입니다. 그 때 그들이 퍼트린 유언비어를 찰떡 같이 믿고 단 한명의 아이라도 구조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인터넷과 방송을 포함한 모든 보도를 뒤졌습니다. 나는 보도를 보면서 그래도 나라님이 하시는 일인데 어련할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것은 아닌데 싶지만 모른 척, 못 본 척하며 살아온 습관대로 말 타고 술 마시며, 우리는 재벌 정치인 정몽준씨 아들의 말대로 저급하지 않은 국민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었습니다.
참사 열흘을 지나도록 승선인원들은 추운 바다 속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시신마저 찾지 못하는 동안 나는 매일 밤마다 바다 속에서 아이들의 원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지만 날이 갈수록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몸이 덜 피곤한 탓이라며 종일 말 위에 올라 몸을 혹사시켰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날도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자마자 바다 깊은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빛을 싫어한다는 속설을 믿고 전등을 켰습니다. 첫 날은 현관입구 전등을, 다음 날은 거실까지, 그리고 그 다음 날은 침실까지, 전등을 모두 켜고 집안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힌 후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역시 나는 깊은 바다 속에서 아이들과 바닷물을 마시며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내 몸에 이상 징후가 왔습니다. 처음엔 입술이 바짝바짝 타더니 정상이던 당뇨치수가 올라갔습니다. 뒷골이 당기더니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오장 육보가 스스로 역할을 포기했습니다. 변비가 왔습니다. 매일 같이 하루 열 시간 이상 마구간을 치우고 말을 타며 운동을 하는데 변비가 오다니, 변비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정신노동만 해야 하는 이들에게만 오는 줄 알았는데 착오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TV를 시청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렸습니다. 물론 어린 날 소처럼 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항상 흘린다고 부모님께 소리를 많이 듣기는 했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 그런 소리가 싫었는지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모두가 세상을 달관한 수도승마냥 나에게 다 그렇고 그런 것인데 뭘 그렇게 요란을 피우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지천명이 지났으면 이제 나이 값을 할 때가 되었다고 합니다. 옳습니다. 6.70년대 산업 역군이었고 더욱이 80년대 수천의 광주 민중을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한 정권과 싸우다가 감옥소까지 다녀온 분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런 분들이 지금, 오늘을 민주사회라고 웅변합니다. 나는 순간 고개를 끄덕거릴 뻔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카린을 수입해 들여와 검은 정치자금을 만들고 권력을 흔들던 썩은 똥냄새가 지금, 오늘, 팔도에 진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라져버린 우리 문화를 복원하겠다고 함께 서있는 무예인들과 노부모와 아이를 위해, 그리고 가족이 되어 수년을 같이 살아 온 말들을 위해 그런 일이 있었냐며 일상에 충실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밤새 아이들이 퉁퉁 부은 모습으로 나타나 “어른들은 우리들이 바다 속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갈 때 모른 척 했어요. 왜죠? 돈 때문이었다는데 맞나요? 손만 내밀어줬어도 우리는 엄마 아빠와 함께 오래 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단 말여요.” 천진하게 물속에서 헤헤거리던 아이가 끝내 울고 말았습니다. 내가 타고 있는 말 위에 올라 집에 데려다 달라고 아우성쳤습니다. 너무도 선명하게,
꿈을 자주 꾸기 때문이라고요. 아닙니다. 내 생에 그렇게 밤새 꿈을 꾼 적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구간으로 달려가 매일 1톤 이상 나오는 마분을 삽 한 자루로 치웁니다. 마방 청소가 끝나면 로데오를 치며 기립하는 말을 골라 훈련을 시킵니다. 그 때 운 나쁘게 말 잔등에서 날아가기라도 하면 분명 어딘가가 골절됩니다. 몸 하나로 세상을 지탱하며 말이 내쉬는 숨소리까지도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 몇 마리를 올라타고 나면 육신은 물먹은 빨래처럼 축 늘어지고 해는 서산 중턱에 걸려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가 마무리 되면 저녁 시간에 곡차 한잔하다 시체처럼 꼼짝 없이 쓰러져 잡니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떨어지는데 꿈은 무슨 꿈입니까? 꿈꿀 틈이 없습니다. 누구는 꿈을 해몽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점집까지 찾아간다고 하던데 그건 팔자 편한 인간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다를 보았습니다. 꿈에 큰 불(火)과 큰 물(水)을 보게 되면 대운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바다는 아주 잔잔하고 조각배들이 떠다니는 평화가 있었습니다. 내가 만일 꿈에서 그것만 보았다면 잠에서 깨자마자 마방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직 문도 열지 않은 복권매장 셔터를 두드려 평생 구입한 적이 없는 로또복권이라도 한 장 구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다에는 처참함이 있었습니다. 아직 세상도 모르는 300명이 넘은 어린 소년 소녀들과 착한 어른들이 물속에서 미역처럼 너울거리고 있었습니다.
바다 밑 바닥에서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왜 해양결찰 구조대는 창문 밖에서 우리를 보고도 외면했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들 중 희망이 경찰이 되겠다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119 구조대원이 되어 아프고 약한 사람을 구하고 싶었다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미래였던 경찰 제복을 입은 어른들이 손 한번 내밀어 주었다면 그들은 엄마 아빠가 있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어른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잠에서 깨었습니다. 온몸이 흥건히 젖어있었습니다. 속옷과 함께 척척히 젖은 이부자리 위에 앉아 왜? 무엇 때문에 피어보지도 못한 우리 아이들을 추운 바닷물 깊은 곳으로 수장 시켰냐고 나는 묻고 있습니다. (문학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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