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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세 시    
글쓴이 : 봉혜선    24-10-04 17:43    조회 : 1,170

새로 세시


봉혜선

 낮에게 빌려준 시간을 온전히 돌려받은 시간이 나를 들여다본다. 어제에도 오늘에도 속해 있지 않은 오직 감각이 가진 시간이다. 낮에게 양보한 시간을 돌려받은 이 시간은 적나라한 햇빛을 피해 오롯이 돌아앉은 때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라고 주문했다. 감각의 날을 세워 사색(思索)의 속살에 맞대보아야지.

 눈을 감고 온 감각으로 밤을 느껴야겠다. 잠을 잃고서도 도달하고픈 소망을 가꾸고 있다. 내내 잡고 있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글자들에 대한 미련으로 잠 속에 빠져들지 못하고 깨어 있기 몇 년째인지도 잊었다. 가까이 있는 나를 속속들이 점검한다.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뇌가 휑뎅그렁하다. 밤에는 평온해진다는 심장과 폐와 간과 콩팥들을 더듬는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여 본다. 쥔 것 없는 손가락 사이는 허전하다. 내장 기관들· · 사지, 즉 내가 자는가? 마음이 닿고 싶은 데가 있으니 이 시각에도 깨어 있어야 한다.

  새벽은 아직 잠깨지 않았다아직 하루가 시작 되지 않은 때이다. 시간과 공간의 틈새인 새로 세 시에는 아침을 알리는 나팔꽃도 깨어나지 않고 한여름 밤을 잊고 우는 매미도 울지 않는다. 전날의 걱정, 근심, 불안은 사라졌다. 새로 밀려들어 올 의무, 책임, 기쁨조차 닿지 않은 시간이다. ‘합리적인 이성은 사라지고, 현재 처한 그 순간에만 몰입하게 됩니다. 직관의 문이 활짝 열려 사시간과 공간의 틈새인 새로 세 시에는 아침을 알리는 나팔꽃도 깨어나지 않고 한여름 밤을 잊고 우는 매미도 울지 않는다. 전날의 걱정, 근심, 불안은 사라졌다. 새로 밀려들어 올 의무, 책임, 기쁨조차 닿지 않은 시간이다. ‘합리적인 이성은 사라지고, 현재 처한 그 순간에만 몰입하게 됩니다. 직관의 문이 활짝 열려 사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지요.’ 버지니아 울프가 <새벽 세 시여, 영원하라>에서 찬미한 시각이다. 저녁의 후회와 반성은 사라졌고 희망은 새벽의 몫이다.

 풍년을 점치려고 소쩍새 울음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들어 보라는 옛 소리도 깊이 잠들었다. 항해사인 아들이 하는 일에서 보듯 지구촌은 한 가족이라 풍작과 흉작에 상관없다는 것일까. 지구 전체의 농공상이면 굶어죽는 사람이 없다는데 배분이 문제라고 했다. 새로 세시는 아들이 6시간 차이 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석탄을 실러 가는 배에서 당직에 들 시간이다. 밤바다, 흰 거품이 사색의 무리가 되어 이리저리 쏠리는 밤바다에서 아들은 바다와 하늘의 밤을 어떻게 구별하며 길을 잡을까. 구불거리는 바다뿐인 배의 하루는 어떨까.

 깊은 물에 잠긴 듯한 한밤중 밤바다를 가던 선인들은 귀가 열리는 때가 바로 이 시각, 어두운 데라고 했다. 밤은 움직이는 것들의 소리가 사는 시간이다. 같이 지새는 라디오에서 시험 방송이니 고르지 못하더라도 양해하라는 멘트와 함께 한 가지 악기가 다양한 소리를 낸다. 피아노가, 바이올린 선율이 밤을 채운다. 매 달 한 번씩 이 시간에 점검된단다. 소리 이전의 소리다.

 창문을 연다가로등 불빛이 조는 듯 달빛과 어우러지며 고혹한 밤 풍경을 빚고 있다하늘이 본래 가진 색을 찾은 시간이다멈출 리 없는 하늘의 가없는 움직임을 안다구름이 흐르기를 멈춘 듯 하늘이 조용하다모든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했거늘,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나목을 헐벗었다 하나 그것이 나무의 본래 형태이듯 별도 제 가진 빛을 제대로 발한다건너다보이는 앞뒷집 어디에도 불빛은 없다홀로 깨어 있구나.

 30여 년 하루같이 지나다닌 길이 내려다보인다그 길을 지나는 매일 아침 수다스러운 새의 소리는 높고 기운차다밤을 지샌 새의 아침 소리무엇을 지저귄 걸까나무 위에 집을 짓지 않은 새는 어디에서 밤을 피하고 있는 걸까낮에 산소를 내놓는다는 식물과 같은 숨을 쉬러 숲에 서 보고도 싶다나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을 것 같다나무 곁에서 풀 곁에서 자연의 숨소리와 숨결을 감각하고 싶다새의 본분인 날기를 멈추고 넘치듯 웃는 소리도 지금은 멈추었다.

  회색 숲 아파트에서는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위아래 이웃집을 방해하지 않는 소극적인 소리 생활이어야 한다. 개에게 성대 수술을 해야 하고 함 사려” “메밀무욱, 찹쌀떡지르던 밤의 소리는 시대에 뒤떨어져 힘이 없다. 소리 없는 밤이 고즈넉하다. 눈이 시원찮으니 상대적으로 귀가 예민해진다. 내게 주어진 것과 남에게 줄 수 있는 것과의 사이를 생각한다. 그것들의 관계를 이어 본다. 밤은 살아있기 좋은 순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갈증을 느끼는 입. 연하게 우린 차에 넣은 다섯 가지 재료가 먼저 코를 통하고 입으로 들어온다. 새벽은, 새벽에 깨어 있는 것은, 새벽에 속한다는 것은. 너무 뜨거운 것도 너무 진한 것도 걸맞지 않는다. 계절을 여는 색인 산수유보다도 더 연하게 번지는 우린 차는 눈을 뜨게 만드는 맛이다. 은은한 색과 맛을 지닌 차를 컵 가득 채워 놓고 식기를 기다리며 펴지는 생을 쳐다본다.

 겹겹이 쌓인 밤이자 불그스름하고 불가사의한 하루의 봉오리인 세 시에 안긴 시각, 새록새록 새로운 것들이 떠 온다. 희망 없다고 거부당한 소원을 심폐소생하기에 적절한 때가 아닌가. 아직 하루를 이루지 못했으나 벌써 투명한 미래인 하루를 품에 받았다. 중심에 발을 디뎠으니 개화와 만개가 이미 맘에 들어 와 있다.

 등산을 시작하지 않아도 온 산이 내게 와 품 안에 든 듯 충족감을 받아 안는다. 등을 기대고 있기에는 선물로 받은 또 하나의 하루가 가슴 뻐근하도록 고맙다.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서 밤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죽은 자들을 소생시키려 한다.’고 오르페우스를 인용했다.

 언뜻 잠 깬 바람이 스친다. 바람에게 종일 어딜 다니겠다는 보고를 받은 듯, 무엇을 만나겠다는 다짐이라도 받은 듯하다. 오늘을 관조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아니 자유 이전의 비 자유에 속해 있다고나 할까. 이탈 이전의 이탈, 빛 이전의 빛, 시작 이전의 시작이다. 모든 이전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 더욱 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 헤르만 헤세처럼 이제는 모든 데에서 돌아앉아 밤이 닳도록 새벽이 오도록 기다리는 동안 오롯한 희망을 가꾸고 있다. 어쩌면 바라는 대로 글자 생활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에세이문예 2024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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