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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오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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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오윤정    14-11-26 00:08    조회 : 17,721
 
 
 
 
 
 
 
 
 
 사는 것이 힘겨울 때나 돌부리에 채여 넘어질 때 손 내밀어 주는 무언가를 만났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멘트이기도 했고, 우연찮게 펼친 책속의 글귀이기도 했다. 무능함에 힘겨울 때는 어거스틴의 <<인간론>>이 나를 일으켜 세웠고, 삶의 무의미함이 괴로울 때는 스베른 버그의 <<천상의 증언>>이 힘이 되어 주었다.  그것은 나의 선생님이자 인생의 조언자였다.
 몇 해 전 퇴직을 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 이라고 생각했다. 30년간 손익계산서와의 숫자게임을 끝내고 자유와 휴식을 누리리라 계획했다. 오래전부터 벼르던 참선을 위해 선방을 찾아 가부좌를 틀고, 친구들과 잦은 만남을 가졌다. 한 달 여의 긴 여행도 다녀왔다. 휴가 얻어 다녀올 때보다 해방감도 재미도 덜했다. 놀아본 사람이 놀 줄도 안다고 했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하루하루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이버대학과 문화센터의 교육프로그램을 기웃거렸다. 브런치 요리강좌, 점포진단마스터과정과 글쓰기를 선택했다. 글쓰기는 노년의 텃밭을 가꾸기 위한 길동무로 적합할 것이라 생각되어서였다. 새로운 배움은 신선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글쓰기는 가장 어려운 대상이었다. 나름의 공식과 해법이 존재했다. 이해는 되나 적용이 어려웠다. 소화시키지 못한 정보들이 머릿속에 거미줄을 쳤다. 붓 가는대로 쓰는 것이 수필인줄 알았었다. 수필의 정의와 자유사이에서 방황했다.
 명문장(名文章)은 꿈을 심어주지만 절망도 준다. 시기는 비교에서 시작되었고, 욕심이었음을 인정했을 때 열등감이 찾아왔다. 서정적 향기 내뿜는 유려한 문체들은 오랜 기간 평가와 분석에 길들여졌던 나의 언어와 비교되었다.  타고난 문재(文才)인지 닦은 기량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들이 잡은 물고기는 색채와 모양이 다양했다. 저마다의 삶과 가치관을 품고 있었다. 소재의 빈곤을 환경 탓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독서의 편식과 부족, 살아온 날들의 관념도 덫이 되었다. 재능도 사유의 창고도 궁핍했다. 그럼에도 사위지 않는 욕심은 글을 희화(戱化)시키고 진정성마저 잃게 했다. A4용지의 여백은 광활한 사막처럼 아득했다.
 글은 점점 잣대에서 멀어져 갔다. 욕심과 좌절감은 비례했다. 칭찬받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합평에 일희일비했다. 즐기자고 시작한 일에 되레 덜미를 잡힌 셈이었다. 사는 동안 간절하게 구하고자 했던 것이 없었다.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노력보다 포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른 한편에선 글을 쓰고픈 욕심이 스멀스멀했다. 넘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는 문턱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어느 날 스승은 독자를 향해 걸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글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임을 일깨우셨다. 나의 글은 독백이었다. 글은 소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글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옮겨져 뿌리내리는 씨앗이다. 여럿의 씨앗이 자라 내 삶의 꿈과 거름이 되어 주었다. 심장이 설렘으로 다시 뛰었다. 세상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모든 빛과 소리의 잔치를 노래하고 싶다. 가슴 시린 푸른 하늘, 닿을 듯 닿지 않는 밤하늘의 별을 그리고 싶다. '문학은 자기 부끄러움의 고백'(이청준)이라고 했다.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아픔과 그리움 꺼내어 세월에 실어 보내는 진혼곡을 부르고 싶다.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고 삶의 고해가 되리라. 누군가의 손 잡아주지 못할지라도 무명 옷감처럼 수줍고 소박하게 말하고 싶다. 종착역 향해 가는 동안 어릴 적 티없었던 눈과 마음으로 돌아가는 헛된 꿈 꿔본다.
 가야할 길이 멀다. 잔매에 맷집 여물기를 바랄 뿐이다.
 
 
 
 
 
 
<책과 인생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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