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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백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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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알겠는가    
글쓴이 : 백두현    15-06-08 16:52    조회 : 6,392
누가 알겠는가
 
오래전, 직장 동료들끼리 강원도 원주에 있는 작은 낚시터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당시 낚시를 싫어하는 나이 어린 직원이 한 명 있었는데 하라는 낚시는 하지 않고 혼자서 뒷동산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용변이 급해 산등성이에서 훌러덩 엉덩이를 내리고 볼일을 볼 때였다. 어릴 적 동네 인삼밭에서 많이 본 인삼 이파리와 비슷한 것들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든 그는 바지를 올리는 것도 잊은 채 허겁지겁 산삼 비슷한 것을 열 네 뿌리나 캤다. 그리고 라면박스에 담아 헐레벌떡 뛰어 내려오며 소리쳤다.
“심봤다아아아아!”
낚시삼매경에 빠졌던 동료들이 무슨 일인가 하나, 둘 모이더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산삼일까?”
“에이 설마 이런 곳에 산삼이 있겠어?”
아무리 살펴봐도 산삼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설왕설래 중에 유난히 술을 좋아하던 영업담당 이사 한 분이 성큼 나섰다. 그리고 얼큰한 표정으로 감정을 한답시고 그중 제 일 큰 놈을 덥석 먹어버렸다. 동료들은 목이 빠져라 감정결과를 기다렸는데 취했는지 그는 능청스럽게 농을 던졌다.
“아무래도 한 뿌리를 더 먹어봐야 알 것 같아”
하고 그다음 큰 뿌리를 또 먹으려고 했다. 기겁을 한 직원들이 서둘러 박스를 봉하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진짜 천삼이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결국 답을 얻지 못한 직원은 다음 날 나머지 열세뿌리를 가지고 전문가에게 감정하러 갔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모두가 희귀한 천삼이라는 것이다. 가격 또한 무려 이천 삼백만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감정한답시고 영업이사가 먹어버린 제일 큰 놈의 가격이 나머지 열 세 뿌리를 합친 가격보다 세배는 더 많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놀란 사람들은 산삼을 먹은 이사에게는 횡재했다며 축하인사를 했다. 산삼을 캔 직원에게도 나머지만으로도 행운이라며 박수를 쳤다. 뜻밖의 산삼을 먹은 이사는 미안했던지 술김에 먹어 아무런 효과를 못 봤다며 쑥스러운 사과를 했다. 인사를 받은 직원은 엎질러진 물이라는 듯 괜찮다고 했지만 무척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날 이후 나도 산에 오를 때마다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혹시라도 다섯 장 이파리가 눈에 띄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게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산삼 비슷한 이파리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남들은 그렇게 작은 야산에서도 잘만 캐는 산삼이 왜 내 눈에는 높은 산에 올라도 보이지 않을까. 눈이 문제인지 심성이 문제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혹시 산행 중 나도 모르게 등산화 끈에 산삼 이파리가 달려온 적이 있었을 수도 있기는 하다. 그 많은 산행 중에 나라고 산삼이 없는 곳만 골라 다녔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뭐 어쩌겠는가. 그날 내가 지나온 길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뒤지느라 헛힘만 썼을 게 뻔하다. 누군들 캐고 싶다고 다 캐는 것이 산삼이라면 처음부터 그렇게 귀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내가 산삼을 소재로 수필을 쓸 리도 만무하다.
그런데 산삼을 발견하고도 캐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얼마 전 아마추어 사진작가를 만난 적이 있는데 산삼을 발견하고도 사진만 찍어왔다는 것이다. 처음엔 제정신이 아니려니 했지만 그 사람의 사정은 달랐다. 야생화 탐사에서 어린 산삼을 발견했는데 캐버리면 나 혼자 만의 것이 되지만 캐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호사를 누릴 것이라 여겨 눈으로만 즐겼다는 것이다. 더욱이 아직 어려 가치도 작을 뿐더러 캐지 않으면 언젠가는 진짜 유용한 약재로 쓰일 것이라 아쉽지 않았다고 한다. 참으로 흉내 내기조차 어려운 심성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 사진작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산에는 좀 더 오래된 산삼이 많아질 것이다. 지금처럼 비싸지도 않을 것이다. 부담 없는 가격에 좀 더 오래된 영약을 많은 사람이 누리게 될 테니 분명 지금보다 좋은 세상이겠다.
그래서 말이지만 사실 나는 산삼을 캐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아마추어 사진작가처럼 넓은 가슴이 내겐 없다. 그 날 산삼을 캤던 어린 직장동료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친구라서 그런지 참 순수한 청년이었다. 나보다 가난했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나보다 아래 자리에서 일했지만 집에 돌아가면 홀어머니에게 효성이 참으로 지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으니 산신령이든 조상신이든 그를 산삼에 이르도록 이끌지 않았을까.
세상은 원한다고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저 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타협하며 살아갈 뿐이다. 말하자면 다수가 원하면 옳지 않더라도 채택되는 구조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소수의 아름다운 가치를 잊고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 아름다운 소수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다수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게까지 산삼이 발견된다면 얼마나 불공평하고 가치 없는 일인가.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가치를 추구해야 어울리는 법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주말 하루를 꼬박 나의 주말 농장에서 보낸다. 언제부터인가 그곳에 도라지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도라지는 2년 이상 키우면 뿌리가 썩기 때문에 2년마다 옮겨 심어가며 다년생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도라지도 열심히 키워 인삼처럼 6년 근을 만들면 인삼가격을 받을 수 있고 산삼처럼 50년 근을 만들면 산삼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열심히 땀 흘리고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현실성 있는 횡재수다.
누가 알겠는가. 앞으로 반백년을 더 내가 죽지 않고 열심히 도라지 밭을 오가며 건강하게 살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날이 오면 나도 나의 주말농장에서 숨 가쁘게 한 번 외쳐보려고 한다. “심봤다아아아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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