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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집    
글쓴이 : 김순례    15-07-23 17:45    조회 : 4,833
                                     그 집
                                                                                                 김 순 례
 붉은 벽돌 상가건물인 그 집을 처음 보았을 땐 을씨년스러웠다. 대로변 길가에 오래된 2층짜리 건물이었다. 뒤편의 마당을 보니 넓기는 한데 온갖 패기물들이 잔뜩 쌓여있어 마치 고물상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집이 맘에 들었다. 중개인이 몇 집을 소개했지만 그 집만 눈에 삼삼했다. 주말이면 아이들이 큰댁을 오가는 길목에 있어서 더 끌렸는지 모르겠다. 부동산을 통해 알게 된 그 집, 사실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가게를 하면서 2층에서 살림집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사춘기 사내 녀석들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목에서 옷가게를 했었다. 이번 기회에 그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맘에 들었다. 여차하면 뛰어 올라가 살림도 아이들 관리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피력하며 남편을 설득했다. 여리고 성을 돌듯이 매일 밤 그 집주변을 돌면서 상권도 확인하고 집수리계획도 세우고 금융문제도 의논하며 집 주변을 돌았다. 어찌어찌 그 집을 계약하는 날 세상을 다 가진 듯 날듯이 기뻤다. 이사 가는 날까지 많은 것을 해결해야 했지만 그 만큼 기대감으로 부풀어있었다.
 
 잔금을 치른 후 집수리를 다 마치고 이사하는 날 우리가족 모두는 흥분해 있었다.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살아온 우리는 생활이 조금은 불편했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그것을 더 즐기는 듯했다. 문만 열면 버스 정류장 대로변이고 온갖 가게들이 다 있고 언제든 부르면 1층 가게에서 엄마가 달려오고 친구들도 언제든지 놀러 와도 되는 이런 집을 싫다할 이유가 없었다. 꽃을 좋아하는 나는 화단부터 정리를 했다. 뒷집과는 협의 하에 담장을 터서 펜스를 치고 그곳에 조롱박이 주렁주렁 타고 올라가게 했다. 대로변 모퉁이 삼각 꼴 뒷마당 구석에 폐기물들을 치우고 보니 앵두나무 대추나무가 있었다. 다른 쪽 담장으로는 머루나무를 심어 담장을 타고 머루넝쿨이 돌게 했다. 그 밑엔 상추, 쑥갓, 아욱 등 각종 먹을거리를 심고 또 한쪽엔 크고 작은 장독대가 올망졸망 정겹게 앉혀있었다. 뒷집 감나무가 이쪽으로 넘어와 감이 주렁주렁 열리면 주인 몰래 서리까지 하는 기회도 있었다. 여름에 피는 능소화는 꼭 장마 때쯤 피어나 꽃대가 통으로 떨어졌다. 붉은 빛이 바닥에 흥건해지면 아깝고 가여워서 내 애간장이 다 녹았다. 그 나무 밑에 파라솔을 펴고 동네 아낙들 해가는 줄 모르고 수다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대문도 없는 그 집은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훔쳤다. 가끔은 작은 공원인 줄 알고 사람들이 마당 안에 들어와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가기도 했다. 상가 건물 1층은 가게가 셋이어서 코너는 내가 옷가게로 사용하고 두 칸은 월세를 주었다. 그럭저럭 모양새가 나아지고 있었다. 한 동안 그렇게 아래 위층을 오가는 재미도 쏠쏠하게 좋았다.
 
 대로변 길가에 위치해 있어서 상권으로 좋았지만 주택으로는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대형버스가 지나가면 거실 바닥이 흔들렸다. 남향인 그 집은 여름 한낮이면 하루 종일 해가 들어 지붕 위아래에서 내리쬐는 햇볕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 놔야했다. 지대가 낮은 편도 아닌데 장마철이면 지하창고에 물이 스며들어 발 걷어 부치고 바가지로 퍼내는 작업을 남편과 두 아들이 감당해 내야했다. 여름을 몇 번인가 지내고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이들은 멀쩡한데 어른인 남편과 나의 입에서 불평불만이 쏟아졌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다 취할 수는 없는 거였다. 젊은 나이에 상가건물의 안주인이 되고 일 하면서 아이들을 내 눈 밖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감시하며 정원을 갖고 싶은 욕구도 모두 한꺼번에 해결이 된 샘인데…….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고쳤나? 빈약한 내부를 조금씩 인부를 불러다가 손을 보기 시작했다. 지붕도 더 손보고 지하실도 전문가를 불러 조치를 취했다. 오래된 건물이라 손을 대기 시작하자 끝없이 여기저기서 다시 손 볼 곳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집을 팔기로 결정했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 몇 년을 내 놔도 매도가 되지 않았다. 그럭저럭 버티며 살고 있었다. 남편이 시작하는 일 마다 바닥을 치고 나는 자꾸만 몸이 아파왔다. 큰아이가 군대에 입대하자 일을 핑계로 집을 떠나 멀리 외국으로 도피하다시피 떠나버렸다. 갔다가 와도 여전히 그 집은 오리무중이고 우리의 가정도 아이들도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답답한 일상이 이어지는 듯했다. 어느 날 극적으로 매수자가 나타났다. 다행이 생각보다 훨씬 좋은 가격으로 매매가 완료되었다. 그동안의 맘고생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10년을 우리 곁에 있던 그 집이 떠나는 순간이다.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힘겨웠던 그 집이었다. 우리에게 그 집의 몫은 거기까지 라고 애써 변명을 했다. 홀가분하게 우리는 훌훌 털고 다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애물단지 같던 그 집을 떠난 지 몇 해가 지났다. 그런데 망각 속에 잊혀 질 것만 같았던 그 집이 가끔씩 생각났다. 사춘기 아이들이 성년이 되며 왁자지껄 가족이 전쟁을 치르고 화해를 하던 곳. 수많은 희망으로 미래를 꿈꾸던 곳.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남편과 내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감정을 조율하며 측은지심으로 바라다보던 곳. 우리 부부의 중년 인생이 묻어있는 곳. 그 집을 사서 애정으로 고치고 정성으로 가꾸어 가족들과 온전히 하나가 되기를 바랐던 곳. 삐거덕 거리던 감정들이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폭처럼 포근한 스위트 홈으로 버티고 있기를 바랐던 곳.
 
 나무의 옹이는 세월의 아픔을 겪은 흔적이다. 우리 인생의 움푹 폐인 그 집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값진 경험으로 전보다 끈끈한 가족애를 경험했다. 집을 고르고 수리를 하여 마음에 맞는 집으로 만드는 과정이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과정과 흡사했다. 첫 눈에 반하고 희망과 꿈을 가지고 다듬고 만지고 서로를 조율해 간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시에서 정현종시인은 삶을 순간순간이 꽃봉오리라고 노래했다. 행복의 절정을 꿈꾸며 들어갔던 그 집이 30여년의 결혼생활 중 가장 힘든 풍랑의 시기가 되어 있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떠나왔지만 그 집과 함께한 시간이 있기에 우리의 스위트 홈은 태풍과 비바람 무사히 견뎌내고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다. 그 집이 우리가족에게 10여 년 동안 인고의 시간으로 녹여주었던 교훈은 ‘참고 인내하라’였다. 고통을 통해 주는 메시지는 쓰지만 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무의 옹이처럼 인생의 훈장으로 우리 가족의 삶의 결마다 살아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돌아보니 한 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 그 집 정원에 예쁘게 피워 아프게 졌던 능소화 꽃처럼 많은 추억과 깨달음 안겨 주었던 그 집이 새삼 그리워진다.
 
(2014. 7.5)
2015. 5월(봄호) 에쎄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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