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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을 기다리며    
글쓴이 : 노정애    17-09-05 18:28    조회 : 4,061

아침을 기다리며

 

노 정 애

 

템플스테이를 가자는 남편. 종교 없는 내게 절에서의 하룻밤은 무료할 것 같아서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부부들도 온다며 그이는 절이나 예불은 안 해도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 오랜만에 그들을 볼 수 있다는 반가움과 주는 밥 먹고 좋은 공기마시며 쉬고 오겠다는 나름의 계산이 생겨 따라나섰다.

서울에서 3시간 달려 황간 IC를 빠져 나갔다. 10여분 시골풍경에 취해 있는데 갑자기 강처럼 넓은 석천이 나왔다. 서두르지 말라는 듯 고요히 흐르는 물속에 산이 담겨있다. 두 개의 산에 정신이 팔려있는 우리를 백화산 반야사(白華山 般若寺)’ 일주문이 맞아주었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지장산에 있는 반야사. 우리가 12일 묵을 곳이다.

이 절은 신라 728년 성덕왕때 의상대사의 제자 상원화상이 지었다. 이곳에서 조선시대 세조가 머물며 문수보살의 안내로 영천에서 목욕을 하고 고질적인 피부병을 고쳤다. 이에 왕은 문수보살의 지혜를 상징하는 반야을 어필로 하사하여 반야사라는 사명(寺名)이 되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불법을 꿰뚫은 경지에 이른다는 반야. 하룻밤만 묵어도 세상 이치를 조금은 알 것 같은 이름이다. 함께 반야의 경지를 추구하는 이들을 도반이라고 하는데 한 이불 덮은지 25년이 넘은 우리가 부부이치를 꿰뚫은 도반이 아닐까 하는 잡스러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숲길을 따라가니 너른 평지에 반야사가 있었다. 겨울이라 사람이 없어서인지 고즈넉하다. 안내를 받아 숙소로 가는 길 오른쪽에 반야사 삼층석탑 뒤로 500년된 배롱나무 두 그루가 있다. 비우고 비워 옷까지 모두 벗은 배롱나무의 하얀 속살은 혹독한 겨울추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은빛으로 빛났다. 스님들이 머무는 요사체 뒤로 보이는 백화산에 수천 년 풍화작용으로 생긴 파쇠석이 꼬리를 치켜든 호랑이 형상을 하고 지붕위에 앉은 것처럼 보였다. 반야사를 호랑이가 지키는 도량이라고 하는 말에 자꾸 눈길이 갔다.

함께 하룻밤을 보낼 두 부부들. 오랜만의 만남에 반갑다. 그들과 점심공양을 마치고 망경대 가파른 벼랑 끝을 10여분 올라 문수전에 갔다. 문수보살은 볼 생각도 않고 문수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벼랑 끝이라 그 높이에 잠시 아찔하다. 몸은 하늘 가까이 있는데 시선은 자꾸 아래를 향한다. 백화산 둘레를 굽이도는 석천이 절경이다. 저 멀리 백화산 855(쌀개봉). 주행봉을 지나 주능이 펼쳐져 있으며 뒤편 멀리 한선봉이 등산을 하지 않는 내게도 오르고 싶게 했다.

그곳을 내려와 세조가 목욕해서 피부병이 낳았다는 영천(석천)의 큰 너럭바위에 섰다. 바위가 안방같이 편안해 보여서 가만히 누웠다. 높은 산과 하늘이 내 눈에 한 가득이다. 하늘이 잘 보인다는 내 말에 일행들도 함께 누웠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이 없다. 몸을 낮추어야 보이는 것. 일상에서 놓치고 사는 것이 많다고 자연이 속삭인다. 대지와 가까워질수록 몸은 편안하다. 바위에 누워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보는 하늘은 거룩해 보였다. 간간히 흘러가는 구름과 눈이 시린 푸르름에 취해 한참을 누워있었다. 언제 이렇게 편히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었던가. 이 순간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져 약은 계산이나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백화산 둘레길을 산책하고 주지스님과 차를 마셨다. 마음비우고 살아야한다는 지루한 설교를 듣나 했는데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와 절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예불에 참석하라는 말도 없었다. 그저 공양시간에 맞춰 밥 먹고 잘 쉬었다가라는 당부만 했다. 5시 저녁 공양을 하고 방에 들어왔다. 이제부터는 우리들만의 시간이다. 그간의 안부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오갔다.

따뜻한 방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이에 밖은 어둠이 내렸다. 산사의 밤은 일찍 찾아들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절이라서인지 숙소에 화장실까지 딸려 있어 밖으로 나갈 일은 없었다. 밤공기나 쐴 생각에 외투를 걸치고 미닫이문을 열었다. 칠흑 같은 어둠. 방안에서 비치는 불빛만으로 신발을 찾아 신고 마당에 섰다. 달은 보이지 않고 검정 비로드 천에 박힌 다이아처럼 별만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별이 가까이 보였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 발을 내딛기가 무서워 장승처럼 꼼짝 못하고 서있었다. 빛으로 넘쳐나는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어둠. 두려움이 와락 다가선다.

한때 저 방에 있는 남자들은 같은 은행에 다녔던 직장동료였다. 그리고 IMF와 함께 정부의 시책으로 은행이 퇴출되면서 직장을 잃었다. 예고도 없이 실직상태에 놓인 가장들. 부인들은 그런 남편을 보며 먹고 사는 걱정을 했던 사람들이다. 우리들은 이 어두운 밤처럼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 앞에 놓여있었다. 명동성당 앞에 텐트를 치고 항의성 데모와 궐기 대회도 가졌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어느 날 이 세 남자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알리겠다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는 항의도보를 시작했다. 7월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두려워하며 그들은 걷기 시작했다. 황간의 국도변 작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하룻밤 자기도 했다. 그렇게 13일 만에 도착한 부산. 그간의 고생을 보여주듯 남편의 발은 누더기처럼 갈라져 있고 발톱 몇 개는 빠져 있었다. “무엇을 하든 두렵지 않다.” 도보를 끝내고서 남편이 내게 한 말이다. 15년 전의 일이다.

뒤돌아본 방 문밖으로 비치는 그들.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 지금에 이른 것이리라. 더 이상 그들은 은행에 다니지 않는다. 전쟁터 같은 사회에서 성실을 무기로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버티고 있다. 그들이 살아온 삶이 15년 전 여름의 그 길처럼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느새 가끔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위로하며 지낸 시간이 직장동료였던 시간보다 더 길어졌다. 15년 전 여름처럼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도반이 되어 인생의 길 위를 걷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걸어 갈 것이다.

저녁공양을 도와주시던 보살님의 말이 생각났다. “밤이 길어요. 든든히 드세요아침 공양이 있는 7시까지 공복의 시간이 길다며 미리 많이 먹어두라는 친절함이었다. 아무리 긴 밤도 지금 두렵기까지한 이 어두움도 아침이 오면 사라질 것이다. 아침을 기다리며 지금도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 황벽 희운은 번뇌를 멀리 벗어나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니 화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를 지어 가라. 추위가 한번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랴라고 했다. 지금 그들은 봄날의 매화 향기를 피워올리기 위해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견디고 있으리라.

방안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조용한 산사에 낮은 웃음소리가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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