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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임승차 할머니    
글쓴이 : 노정애    17-09-05 18:29    조회 : 3,880

무임승차 할머니

 

노정애

 

석계역에서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6시경 귀가를 서두르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은 삶의 무게와 그날의 피곤이 쌓여서인지 더 지쳐 보였다. 길게 늘어선 정류장 끝자락에 여든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내가 버스를 잘못 타서 바로 내렸는데 버스비도 안 돌려주고 나쁜 기사양반, 돈도 없는데라며 푸념 섞인 하소연을 주위사람들에게 늘어놓고 있었다. 작고 깡마른 체구에 어떻게 들고 왔을까싶은 꽤 무거워 보이는 무릎 높이의 보따리 두 개를 옆에 두고 계속 목소리를 높이는데도 사람들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일 년쯤 전에 이사해 자리를 잡은 월계동. 집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강북구, 도봉구, 성북구가 있으니 이곳은 노원구의 초입이리라. 집이 지하철과 멀어서 들고날 때면 늘 마을버스를 이용해야했다. 서울 끝. 유난히 서민 아파트가 많은 곳이었다. 달려가 도와줄 생각도 못하는 이기적인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남의 집 불구경하듯 쳐다보며 변두리 동네 탓을 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시집와 신혼살림을 차린 곳은 시댁 옆인 장충동이었다. 그 주위를 맴돌며 큰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까지 살았다. 가까이 남산과 국립극장이 있고, 집 앞 지하철을 이용하면 동대문, 인사동, 대학로, 강남에 쉽게 갈 수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에는 학교 옆으로 이사한 덕분에 아이 친구들과 학부형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서 고독을 친구 삼을 일은 없었다.

몇 해 전 남편이 사무실 옆에 있는 모델하우스를 보고 비교적 저렴한 분양가라며 덜컥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내 집장만은 꿈같았지만 우리 형편에 저렴하다는 분양가도 부담이었고 월계동은 내게 너무나 생소한 곳이었다. 입주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커졌다. 정든 곳을 두고 서울 변두리로 밀려나는 허탈감을 어쩌지 못했다. 많은 학부형들이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할 때 중학교에 입학할 아이를 데리고 가는 곳이 8학군과는 너무 멀었기에 상실감도 한 몫 했으리라.

다세대 주택과 빌라에서의 남의집살이를 끝내고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에 내 집이라는 설렘은 좋았지만 문을 열고나서면 와락 달려드는 낯설음은 늘 우울하게 하곤 했다. 아이를 입학시키면서 만난 학부형들은 대부분 이곳 토박이들이어서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좀체 동네에 마음을 붙일 수가 없었다. 유배지로 보내진 것 같아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베란다 앞으로 보이는 초안산도, 아파트 뒤쪽으로 흐르는 우이천도 그저 보기 좋은 풍경일 뿐 내 마음을 잡아 두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침이면 식구들을 직장으로 학교로 보내고 생쥐 곳간 드나들 듯 전에 살던 동네로 가기 바빴다. 구멍 난 양말짝 버리듯 뒤도 안돌아보고 마을버스를 타고 10분 이상씩 달려 전철역으로 향했다. 타임머신을 타듯 지난 기억이 담긴 그곳으로 가는 1시간은 아깝지 않았다. 이사 가기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곳 사람들과 운동을 하고, 밥도 먹고 문화 강좌를 들으며 지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 사귀기가 힘들다고 엄살을 떨면서 아무도 내가 쌓아둔 담 안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 귀가시간에 맞춰 집으로 오는 이방인 같은 생활을 1년째 하고 있었다.

멀리서 내가 탈 버스가 왔다. 바람의 속도로 달려가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열려있는 버스 뒷문으로 보따리를 올려주는 청년 뒤에서 아까 그 깡마른 할머니가 짐을 올려준 청년에게 고마워 학생하며 빛의 속도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먼저 탔던 다른 사람들이 할머니의 짐을 노약자석 가까이로 옮겨주었다. 가만히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할머니는 버스가 출발하자 조심스럽게 운전기사 옆으로 갔다.

기사 양반. 내가 버스를 잘못타서 내렸는데 차비를 돌려주지 않아서...”

조금 전에 내가 몇 번을 들었던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묵묵히 듣던 기사 아저씨.

할머니 다음에 또 이러시면 그때는 정말 안 태워드립니다. 위험하니 자리에 앉으세요.”

아저씨의 표정은 밝고 말투는 부드러웠다. 전적이 있었던 분 이었다. 함께 차에 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 입가에 작은 미소들이 걸려 있었다. 기사 아저씨의 그때는 정말이라는 말이 내 귀에는 그때도 태워 드릴게요.’처럼 들렸다. 그 한마디가 내 속에 쌓아둔 담을 낮아지게 하고 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제주도의 돌담처럼 숨 쉴 구멍을 만들었다. 갑자기 숨이 쉬어졌다.

집으로 오는 길. 아파트 단지들 사이를 지나는 버스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밝은 얼굴과 간간히 펼쳐지는 낮은 산자락이 그때서야 눈에 들어왔다. 마음의 담을 낮추고 보는 모습들은 아침에 버려두고 떠날 때와는 전혀 달랐다. 사람들은 정 많고 생기 넘치는 활기찬 내 이웃의 모습이었으며 산은 가을 색을 짓게 드리우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여기가 월계동이구나. 난 우리 동네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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