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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고 싶을 만큼 살고 싶다    
글쓴이 : 노정애    17-09-05 18:37    조회 : 4,200

죽고 싶을 만큼 살고 싶다

 

노정애

 

두 알을 더 먹었다. 자리에 누웠다. 자고 싶었다. 3일 동안 거의 자지 못했다. 얼마 전부터 수면제를 먹었지만 숙면은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다. 약국 세 곳을 들러 열 알 들이 수면제 한통씩 샀다. 잠이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또 두 알. 그렇게 여덟 알을 먹을 때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직 남아있는 약은 많았다. 나의 불면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있는지도 몰랐다. 열네 알을 먹었을 때 머리는 깨어질 듯 아파왔다. 더 이상 약을 먹을 수가 없었다. 잠시 잠들어서 못 일어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했다. 잠만 잘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중학교 시절 함께 살았던 순하고 착해서 웃는 얼굴이 햇살처럼 보기 좋았던 사촌 오빠가 생각났다. 힘든 세상살이에 지쳤는지 저녁이면 술에 의지해 잠들곤 했었다. 어느 날 몸에 석유를 붓고 성냥을 그어 우리 집 거실로 뛰어들었다. 죽음의 손짓 같은 그을음 자국을 거실 벽에 남겨두고 3일 만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 한동안 눈만 감으면 불길들이 나에게 달려들곤 했었다. 오빠도 내일이 있음이 무섭도록 두려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새벽이 왔다. 잠은 오지 않았다. 두통은 가만히 누워있지 못하게 했다. 산더미 같은 과제를 싸들고 식구들이 깨기 전에 집을 나섰다. 모교에서 조교생활을 시작하면서 다른 종합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했던 봄이었다.

대학생일 때 나는 따지기 좋아하고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정의라는 지나친 자신감을 가졌었다. 교수의 수업 방식을 따지고 보란 듯이 가방을 싸서 수업중간에 튀어나와 유별나게 굴었다. 동기들을 선동해 단체로 수업을 거부하기도 했던 문제 학생이었다. 3학년이 되면서 정신은 차렸지만 그때의 교수들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조교였다.

대학원에서는 석, 박사과정을 통틀어 여자는 달랑 혼자였다. 아는 선배도, 동기도, 교수도 없었다. 교제는 전부 백과사전만한 원서였고 과제는 넘치게 많았다. 영어를 유독 어려워했던 내게 수업준비는 벅찼고 과다한 과제는 숨통을 조여 왔으며 사막에 혼자 버려진 듯 외로웠다. 괘씸죄로 낙인찍힌 교수들과의 관계는 하루하루가 외줄타기 하듯 위태로웠다. 친구에게 하소연할만한 주변머리도 없었다. 하루를 견디기 힘들었다. 부모 도움 없이 대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함께 시작했지만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내 발등을 찍고 싶었다. 내 정체성은 송두리째 뽑혀 나간 나무처럼 뿌리를 들어내고 썩어가고 있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유령처럼 새벽 도심을 걸었다. 한강 다리 같은 유혹의 수단은 없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태종대는 너무 멀었다. 다행히 수업은 없는 날이었다. 출근을 했다. 어떻게 그날을 보냈는지는 기억에 없다.

 

요즘 신문에서 자주 나오는 자살 기사를 볼 때면 그날의 나를 떠올린다. 2004년에 세웠던 자살 예방 대책 5개년 계획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자살률은 점점 올라가 2010년 통계 인구 10만명당 33.5명으로 OECD 국가중 자살률 1위라는 현실이 되었다. 자살을 개인의 정신적 문제에만 집중해 대처한 1차원적 접근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회 경제적 환경에 대한 접근을 뺀 반쪽자리 정책이 낳은 당연한 결과이리라.

1980년대 자살률 1위였던 핀란드는 자살 예방 프로젝트인 심리적 부검을 도입했다. 1986년부터 5년간 전문가 6만명이 동원되어 자살자의 자살 전의 행동과 주변 친인척, 동료 등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자살원인을 밝히는 작업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형별로 자살을 분류해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고 관리 대책을 세웠다. 자살률은 23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우리의 현실을 본다. 1020대의 사망률 1위가 자살이다. 이들은 자살에 대한 거부감이 약하다고 한다. 실제 작은아이가 중학교 3학년 시절 2학년에 다니는 여학생과 남학생이 여름방학을 전후로 자살해 학교가 발칵 뒤집혔던 사건이 있었다. 왕따도 집단 폭력도 없던 15살 아이들은 무엇이 힘들어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여학생이 죽은 한 달뒤 남학생은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000 잠깐 만나고 올께.” 그 여학생 만나고 오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119도 불러두고 그 아이가 죽었던 그곳에서 뛰어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가여워했다.

70대 또한 전년대비 7.5배가 증가했다고 한다. 전체 자살율도 IMF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매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사회복지 시스템과 실업대책이 자살예방과 연계되어야하고 초등학교부터 생명의 소중함과 내적 가치의 귀중함을 돌보게 하는 정신 보건 교육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너덜너덜해진 영혼을 끌고 귀가했다. 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따라 엄마가 들어왔다. 나의 불안의 날들을 눈치 챘는지 가방을 내려놓는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았다. 순간 무릎이 꺾였다. 눈물이 났다. 놀란 엄마는 와 그라노라며 무너지듯 앉았다. 엉엉 울면서 겨우 공부도 직장도 그만두고 싶다고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했다.

그기 뭐 중요하다고 그라노. 이라다가 아 잡겠다. 얼매나 산다꼬. 고만두고 니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된다.”

나에게 쥐는 것 보다 놓는 것이 더 힘들었나 보다. 그만 두면 되는 것을 그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실컷 울고 나니 가슴한편 시원함이 들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을 다 처리 할 수 있었다.

난 휴학계도 사표도 내지 못했다. 언제든 할 수 있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한학기가 지났다. 쪽잠은 조금씩 늘어났고 약 없이도 잠 들 수 있었다. 엄마는 사표나 휴학계를 냈는지 묻지 않았다. 식탁의 반찬이 좀 더 많아졌고 과일을 싸주기 시작했으며 늦은 저녁 술 마시고 들어오는 나를 못 본 척 눈감아 주었다. 언젠가부터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던 휴학계와 사표는 보지 않았다. 교수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나아졌고 대학원 생활도 적응했으며 동기들과 함께 공부하고 어울리는 시간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학위를 받고 결혼과 함께 서울 살림을 시작하면서 사직서를 낼 때는 아쉬움마저 남았다.

 

누군가 힘들어 하면 손 내밀어 잡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 손이 바로 우리들이어야 하고 사회가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15살 두 아이에게도 그날 내 어깨에 손을 올려준 엄마처럼 누군가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야 알았다. 수면제도 자신의 체질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하고 그 정도 먹어서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난 죽고 싶을 만큼 살고 싶었던 것이리라. 아무렴 어떤가! 난 아직 살아있고 힘든 일이 생겨도 좋은 날이 올 것임을 알기에 그날 같은 바보짓은 꿈에도 꾸지 않는다. 하루 빨리 심리적 부검재도가 정착되어서 자살률이 확 줄어들고 신문이나 방송에 안타까운 사연들이 올라오지 않는 봄날 같은 소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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