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토끼해를 맞이하여 바라는 소망
인디언 썸머/김주선
2023년 계묘년이다. 검은 토끼가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온 해다. 토끼는 제 방귀 소리에도 놀란다던가. 십이지 중 네 번째인 토끼는 겁이 많고 예민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흔히 놀란 토끼 같다고 지레 겁먹은 경우를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자라에게 속아 바다로 갔지만 기발한 술책으로 수궁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죽을뻔했다가 살아 돌아온 토 선생의 『토끼전』은 위기를 모면하는 지혜와 헛된 욕심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 주던 전래동화였다. 지혜는 시간이 더해지고 경험이 쌓여서 얻어지는 것인가 보다. 작고 힘없고 겁이 많다고 얕보지 마시라. 호랑이 없는 골에 왕 노릇 할 만큼 꾀가 많은 동물이니 힘만 세고 어리숙한 호랑이보다야 낫지 않은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막 스케이트를 배우고 탈 때였다. 영월 장릉에서 열린 ‘여자 500m 빙상대회’에 초등부로 나간 적이 있었다. 추운 지방인데다 어느 독지가가 학교 운동장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특기생을 발굴하던 때였다. 출전 선수가 3명 밖에 없는 경기여서 메달은 ‘따 놓은 당상’인데 문제는 완주하느냐 마느냐였다. 5.6학년 선배들과 겨루는 경기라 힘이 달렸고 초보 선수라 출발선에 서는 것조차 무리였다.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완주하고 싶었는데 결국 결승점까지 내 힘으로 도달하지는 못했다. 1등을 한 선배가 와서 내 손을 잡고 끌다시피 골인했다. 덕분에 나는 (부정한) 동메달을 받았다. 무서움을 많이 타는 데다 지구력도 약해 끝까지 완주하지 못하면 ‘나는 토끼띠라 그렇다’며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시켰다. 참 부끄러운 억지였다.
어쩌다 눈이 많이 내린 산길에서 산토끼와 맞닥트린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본 토끼는 후다닥 달아나다 멈추고 주변을 살피다가 인기척이 나면 또 도망가는 식이었다. 정말 나처럼 지구력이 없었다. 아무리 급해도 평소 다니던 길만 다녀 올무를 비껴가진 못한다고, 토끼의 습성만 잘 알면 눈 덮인 산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식은 죽 먹기라고 오빠들은 허풍을 떨곤 했다.
무잎이나 배춧잎을 뜯어 먹고 푸른 똥을 싸면, 다시 자기가 눈 똥을 받아먹고 완전히 소화해 갈색 똥을 싼다고 오빠들이 말해 주었다. 할머니가 즐겨 드시던 쑥환처럼 똥글똥글 작은 알맹이처럼 생긴 배설물 근처에 올무를 놓으면 십중팔구라 했다. 교토삼굴狡兔三窟이란 토끼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세 개의 굴을 파 놓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미리 몇 가지 대비책을 짜 놓음을 이르는 말이다. 고랭지 김장밭에 써먹지도 못하는 여러 개의 굴만 파놓고 올무에 걸린 토끼를 보면, 꾀쟁이에 영리한 동물이란 말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눈길에 난 발자국마저도 볼 수 없으니 산토끼는 방아를 찧으며 달에서만 사는 신성한 동물이거나 천연기념물이 될 정도로 귀해졌다.
계묘생癸卯生인 나는 올해 환갑이 되었다. 나도 『토끼전』에 나오는 토 선생처럼 귀가 얇은가 싶어 귓불을 만져본다. 남의 말에 잘 속는 편이지만, 다행히 도톰하다.
친정아버지는 이리저리 치이는 나약한 토끼띠는 순한 양띠 남자가 궁합이 좋다고 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1987년 정묘년에 양띠 남자와 결혼했고 그해에 나하고 띠동갑인 첫 딸을 낳았다. 살아보니 ‘띠 궁합’이라고 하는 것은 ‘삶’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양순한 남자는 양을 탈을 썼는지 가정에 소홀했고 미숙아로 태어난 토깽이 딸은 비보험 인큐베이터에서 삼칠일을 보내고 2.2kg으로 겨우 퇴원했다. 그때 내 소망은 오직 하나였다. 딸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었다.
작년 임인년 호랑이해에 나의 십이신十二神살 도표는 망신살이 최고점에 다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뭘 해도 참 안되는 해였다. ‘토끼해를 맞이하여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명리학을 공부한 아버지처럼 나의 사주팔자를 풀어 갈 일은 아니지만,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돈 해이기도 하니 개인적으로 감회가 새롭다. 회갑 기념 여행도 가야하고 회갑 기념 단행본 수필집도 내야 하고 , 참 할 일도 많고 꿈도 야무지다.
털 색깔로 집토끼 산토끼를 구분 지을 것까지야 없지만,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하니 야생적이고 활동적인 산토끼처럼 온 세상을 누비고 살아볼까. 올해는 ‘장성살將星殺’이 최고조에 접어든 사주라 한다. 장군이 별을 단 형국이라니 뒤늦게 출세하려나?.
정년에 걸려 퇴직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은 나의 노동이 쓸모가 있는지 얼마간의 일 할 햇수가 더 주어졌다. 승진도 했다. 인생은 육십부터라 했던가. 다시 꿈꿔도 될 나이인지 미처 늙지 못한 마음이 나를 살살 부추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하는 나이는 아니어도 새로운 시작을 해도 늦지 않을 나이기도 해, 일과 문학 두 마리 토끼를 잡아 볼 생각이다. 언젠가 소감문에도 밝혔듯이, 무엇인가 준비가 되어 있던 일이라면 그것이 ‘시작’이 될 터이니 더욱더 정진하리라는 다짐을 했었다. ‘글을 쓰는 일은 묵은 매듭을 풀고 나의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이므로 매 순간 나를 바르게 세워야 한다고.
‘인디언 썸머’라는 말이 있다.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서 겨울로 가기 전에 잠깐 찾아오는 뜨거운 날씨처럼 인생 끝자락에 찾아온 짧고도 찬란한 순간이라는 은유적인 뜻이 담겨있단다. 인디언에게 신이 선물한 짧은 기적이라고 불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추위 속에 핀 봄꽃 같은 기후 현상이지만, 다시 찾아온 짧은 여름 동안에 겨울을 준비하는 사냥을 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가을과 겨울 사이, 중년과 말년 사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는 낙망 가운데에 뜻하지 않은 희망이랄까. 좋은 시절은 갔지만, 황혼기에 들기 전에 맛보게 되는 뜻밖의 행복감 그리고 성취감. 남들보다 한발 늦게 찾아온 선물 같은 이 순간이 어쩌면 내 인생의 인디언 썸머가 아닌가 싶다. 신이 준 이 기회마저 놓치면 나는 영영 빈손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기에 서둘러 말(言)의 안장을 손질하여 사냥터로 나갈 채비를 한다. 필마(筆馬)의 긴 갈기가 나의 목덜미에 돋는 계묘년 새해다.
2023.1월 <한국산문>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