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박경임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Pkl1027@hanmail.net
* 홈페이지 :
  신호대기중    
글쓴이 : 박경임    23-11-06 12:39    조회 : 1,290
   신호대기중.hwp (65.5K) [0] DATE : 2023-11-06 12:39:07

신호대기 중

박경임

주말 아침, 늦잠을 잤다. 얼른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다녀와도 괜찮을 시간인데 움직이기가 싫다.

침대에 엎드려 스트레칭과 플랭크를 잠깐 하고 내려왔다.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데 느리적 거리며 실내를 걸어 다녔다. 어제 파마를 한 머리는 제멋대로 하늘로 날아갈 것 같고 한쪽 볼에는 베개 자국이 선명하다. 늘 같은 일상인데 이상하게 토요일이면 일하러 가기가 싫다. 출근길에 부부동반의 등산객을 만나는 것도 싫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저마다의 휴일을 즐기러 가는 모습을 보면 샘이 난다. 오늘은 도시락을 포기하고 맛난 점심이라도 먹어야겠다며 출근 준비를 했다.

출근 중 운전하면서 신호대기에 걸리면 신호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멍한 시간, 대상이 없는 그리움에 가슴이 조여오는 때가 있다. 사람에 대한 갈증이다. 많은 자동차. 길가에 스치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나와는 아무 연관도 없다는 생각으로 무리에서 소외된 감정은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에 따라 웃고 울게 되기도 한다.

형이상학으로 시작되었던 젊은 날의 고뇌는 결국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으로 마감되면서 형이하학이 되어버렸다. 삶을 고뇌하던 순간에 가졌던 내 개별성에 대한 질문들은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 속에 묻혀 평범해져 버렸다. 사람들 속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존재 자체를 들키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알량한 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다. 다가오는 사람들에게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침묵이었다. 무리 속에서 스스로 낙오시킨 셈이다.

여고를 졸업할 무렵 세상을 다 알 것 같았고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오만이 있었다. 하지만 돈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면서 주눅 든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물론 전부터 돈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는 어리다는 핑계로 외면할 수 있었다. 욕망이 줄어들면 좀 더 선하게 살아진다는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린 날 보았던 노쇠한 노인의 나이가 된 나는 아직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니 선하게 살기는 글렀나 보다. 사람들은 나이 들어가면 먹고사는 일에 급급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진짜 삶을 살라고 조언한다.

개뿔’. 하루를 살아내기에 먹고 사는 일을 우선하지 않으면 더한 나락으로 떨어진 경험이 없는 호사가의 말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처럼 배고프고 추운데 본인이 원하는 삶의 모습이 뭔지 가늠이나 되겠냐는 말이다. 사는 일에 재미가 없고 힘들어질 때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은 무엇일까 하며 어떤 하루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휴일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커튼을 열면 멀리 한강이 보인다. 커피를 내리고 요한 슈트라우스의 춤곡을 틀어 커피 향이 번지는 거실을 채운다. 평일의 각박한 타임테이블을 벗어나 토스트를 구우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로봇 청소기가 이리저리 애완견처럼 실내를 돌아다니고 나는 음악에 맞춰 왈츠스탭을 밟아본다. 늦은 아침의 햇살은 벌써 눈부셔서 강물 위로 윤슬을 만들고 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강변 산책을 나선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거나 연을 날리는 아빠들, 한강공원은 마치 외국의 한 곳 같은 풍경으로 풍족하고 여유롭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한껏 경쾌한 차림으로 외출을 한다. 보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 맛있는 점심을 먹고 가까운 야외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다 돌아오면 어느새 저녁 시간이다. 노을이 아름다운 강을 바라보며 노트북을 꺼내 일상을 적으며 하루를 접는다.

이렇게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의 한 장면을 그려보는 것이 내 각박한 현재를 탈출하는 시간여행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해 말하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연극으로 한다니 보러 가볼까?.

나는 지금 출발선에서 전열을 가다듬으며 신호대기 중이다. 얼른 파란불이 켜지면 좋겠다.

 

 ㅁ


 
   

박경임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14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90144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9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