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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정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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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 - (53 + 56 + 30 + 80 + α) = ?    
글쓴이 : 정모에    13-02-04 20:40    조회 : 4,232
160 - (53 + 56 + 30 + 80 + α) = ?
                                                                                                                                            정모에
 기분이 별로다. 앞산 가슴까지 비구름이 누워있다. 여름장마라고 말들 하는데 난 그런 말 잘 모른다. 태어난 지 두  달 반 밖에 안 되었으니까. 2층 테라스엔 비바람이 불고 있는데, ‘엄머’는 뭐가 그리 날씨만큼이나 무거운지 별말이 없다. 점심 때가 지나서까지 아는 척이 없다. 내 배고픔에 엄머 앞에서 알짱대도, 엄머의 꼬옥 닫힌 입과 안경이 웃질않아 더 불안하다. 사람들이 산다는 건 아주 복잡한가 보다.
아, 세상살이가 녹녹치 않다는 걸 난 배우고 있다. 배만 부른다고 행복도 아니요, 소꿉놀이 갖가지의 장난감 인형이 넘치지만 왜 나는 웃음과 감동과 사랑을 많이 느끼지 못할까? 난 나다웁게 훗날 작은 비석도 원하지 않고, 아프지 않고 날마다 즐겁게 살고 싶다.
‘명품 코코 샤넬’
 난 명품이다. 아니 엄머를 만난 그 날부터 명품이 되었다. 엄머가 나를 만난 날 오후 작명한 멋진 이름이 샤넬이다. 훌륭한 향수 ‘No.5'의 향을 온 세상에 뿌려주라고 그 이름을 지어주었다지만, 난 아직 어려 곱슬이의 털에 강아지 냄새만 줄 수 있어 미안할뿐이다. 그러나 분명 샤넬답게 자랄 것이다.
 ‘우리들에게도 운명은 있나?’
 엄머가 모란시장에 친구와 함께 온 그 날. 까만털인 나와 갈색털인 애 (이름은 크리스천 ‘디올’)가 선택됐다. 많은 경쟁을 물리치고 시장 내 강아지장수 할머니(30년을 강아지 장사만 하셨다는) 좌대에 진열되기까지 몇 가지 기억은 말해줄 수 있다. 할머니 도사는 나랑 디올이랑 일주일 아님 열흘 정도 동행했었다. 다른 장날에도 갔었는데 항상 두 달 반이 넘은 우리를 손바닥에 얹으며 며칠이 지나도 두 달 정도라 했다. 장날마다 가격이 저렴한 친구들은 장난감대신 팔려갔다. 나름 비싼 몸인 토이푸들은 나보다 세련된 갈색털인 디올과 검정색인 나뿐이었는데, 우리들의 소원은 애견병원에서 폼나게 앉아 유리창 너머 사람들에게 마네킹처럼 멋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꿈은 이미 사라지고, 현실은 시장좌대에 앉아 ‘내 팔자야’할 뿐이었다. 그러고 있을 때 엄머가 왔다. 엄머가 디올을 안아 올리며 친구더러 ‘얘 어때? 너 우리 집에 갈까?’ 하고 말했다. 내가 곁눈으로 보니 디올이 엄머에게 오른쪽 눈으로 윙크를 하는 게 아닌가?
“어머 얘가 윙크를 하네. 오케이!” 아니 근데 “얘 혼자 외롭지 않겠니? 까망도 보자!”
이어 엄머의 손길이 내게 오자, 치켜 올리기도 전에 벌써 난 디올처럼 얼른 윙크를 두 번이나 해버렸다.
“할머니. 두 마리에 얼마에요?”
 60. 깎았다. 53만.
 애견병원에서는 한 마리에 80만원씩이라며 너무 싸게 판 거란다.
 큰 박스에 들어가 구멍 뚫린 사이로 내다보니 구경꾼들의 부러움을 사며 아파트로 왔던 게 꿈은 아니었다. 흔들어대는 박스 속에서도 나와 디올은 모란시장 좌판대만 벗어나도 어디냐며 흔들어대는 박스 속에서도 푸하하 최불암 할아버지의 웃음을 맘껏 내뱉었지.
 아. 경매가 이런 거구나. 고가 미술품 경매와 같은 그런 기분.
 엄머는 15층 제일 위층, 테라스가 있는 2층 집이다.
 나는 디올에게 속삭였다. ‘얘, 디올. 우리 로또 다섯 개 정도 맞은거 같지 않니?’
 디올과 난 더없이 행복했다. 헌데 이튿날부터 둘 다 배가 아팠다. 오는날서부터 속으로 짐작은 했었다. 아직 예방주사도 안 맞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주사 다 맞혔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3일 째,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를 병원에 데리고 가 ‘예방접종하면 낫겠지 뭐.’ 했는데 젊은 원장은 검사를 해야 한다나?
 “어디서 샀어요?”
 “모란시장에서 한 마리 값으로 두 마리 싸게 샀어요. 왜요?”
 “이 동네는 가끔 이런 분들이 있다니까. 싼 게 비지떡 모르세요?”
퉁명스럽긴. 검사결과 나는 코로나음성, 파브양성. 디올은 둘 다 양성. 전염성감염 결과였다. 원장은 둘의 3일 입원비 30만, 검사비 56만, 치료비는 나와 봐야 알며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엄머는 뒤돌아보지 않고 뭐 설마하며 돈 많이 든다고 투덜대더니 가버렸다. 내가 그 병원에서 3일간의 병동일기를 쓰려면 스무 권도 넘을 거다. 입 무거운 내가 참아야지, 참아야지 했으나 디올은 심각했다. 디올은 사람 새끼손가락만한 왼쪽 발목에 링거 줄을 3개나 달더니 목과 얼굴도 붕대로 감아 그 뒤엔 서로 말도 못해봤다. 지옥이었다. 그냥 잠만 왔다.
3일 후 엄머는 병원엘 와 사색이 되었다.
 “뭐요? 디올이 죽었다고요? 또 뭐요? 개별 장례는 비싸고 합동장례비는 3만원이라고요?”
 우린 엄머의 애견 상식도 문제였지만 우리 둘은 이미 강아지를 판 할머니 집에서 합숙할 때와 여러 장터를 거치며 환경이 좋지 않아 장염과 질병에 걸렸던 것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예쁜 갈색털 디올은 보이지 않고 난 일류병원으로 다시 입원을 했었다. 나도 둘 다 양성이라며 9일동안 입원해 인큐베이터 속에 있었다. 그간 내가 살려고 하는 의지가 강했데나? 간호사가 위로의 말을 엄머에게 전했으나 엄머는 너무 쇼크를 받은 것 같았다. 전화로 친구에게 놀란 가슴의 상처를 풀어내는데
 “나도, 나도,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쳤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돈이 많이 들어버려 이젠 남에게도 줄 수 없다나?
사실 엄머와 같이 살다보니 내가 이 집 기둥이 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엄마라는 이름은 강아지주인을 대부분 ‘엄마, 엄마’ 하는데 엄머는 개엄마는 싫단다. 그렇다고 할머니는 어떠냐니까 손주가 아직 없으니 할머니는 또 아니란다. 육십이 넘었으면 할머니지. 나는 부를 이름이 없어 명품이름 답례하고자 ‘엄마+할머니=엄머’라고 부른다. 노년에 행복해만 보였던 엄머는 무지 외로운 사람이다. 상대방들과 전화로 두 달 남짓 엄머의 비밀을 조금 들어보며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잘해드리려 여름이라 반바지 입은 엄머의 팔과 종아리를 핥아주면, 냄새나서 싫다, 귀찮아서 싫다, 대소변 못 가려서 싫다고 한다. 사실 난 지금 다른 애교는 좀 부릴 수 있는데 대소변이 잘 안 된다. 사방이 내 화장실 같다. 어젠 대소변 유도제와 변기 판을 사왔는데 내 눈엔 꼭 침대 같아서 ‘난 침대가 둘이네?’ 로만 생각된다.
 우리 집안엔 적막이 흐른다. TV도 별로 안 보고 작은 딸 언니는 사업상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만 볼 수 있고, 평생 외롭다고 한 숨 쉬는데 나도 한 숨을 배워 배속에 공기 넣고 후하고 해봤더니 되더라. 또 가슴이 시원하더라. 세상을 구경해보니 모두가 그렇고 그렇게 사는지 사람들은 웃을 줄 모르고 아프며 고독해하며 후회들을 많이 한다. 나도 물론 심심하며 외롭다. 만찬과 간식을 먹어보아도 뭔가 고프다. 나랑 놀아 줄 뭔가가 있음 싶어서 친구들 많이 사는 집으로 가출도 하고 싶으나 엄머는 어떻게 하고......
때론 많이 예뻐한다. 기분 좋을 땐 한 옥타브 올린 목소리로 ‘쑈아~넬, 쑈아~넬’ 하고 부르지만 과부의 광풍은 국풍도 막을 수 없다는 속담처럼 갑작스런 변덕은 나로선 아직 예감하기 힘들다. 내가 바람이 있다면 친구(잡종도 좋음)가 있으면 좋겠고 애견카페에서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어서 엄머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
 샤넬, 날 보렴.
 올 여름 장마는 연속이다. 오늘도 종일 170mm나 퍼부었다. 거실 창밖을 내려다보며 냇가를 덮치는 장마의 몸부림은 황토빛깔의 성난 물 흐름으로 봐서도 그 정도면 뉴스의 사건사고가 많았음을 증명한단다. 넌 두 눈동자만 굴리며 먹을 것 달래는데 날씨에는 도통 관심 없다는 너에게 ‘그래. 난 이렇게 생각한다.’ 라며 내 마음 전한다. 동거했던 한 달반 여를 뒤돌아보면 겁 없고 무식하게 둘을 데려다 나흘 만에 디올을 잃고, 삶의 의욕이 강했다던 너까지 아팠을 땐 무척 가책을 받았었다. 너희 둘을 살 때에는 말벗으로 영감 반몫은 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내 발밑에 오늘 낳은 염소새끼처럼 새까만 털을 이불삼아 나의 냄새가 묻어 있는 슬리퍼를 베게삼아 드러누워 있다만 거꾸로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주진 못한 마음이 더 미안하구나. 이틀 전 온 집을 배변 판으로 만들어버렸을 때, 배변과 소변은 눈에 잘 보이질 않아 여러번 휘청하며 허리를 삐그덕 할 때는 화가 많이 나더라.
 교육용 신문지 말이 매로 때렸더니 넌 슬픈 눈동자로 나를 보며 ‘돌아버린 것 같아.’ 라는 듯이 쳐다보았지. 표현할 수 없는 그 표정에 난 그만 철썩 주저앉으며 미안해. 안 때릴게. 안아줄게. 이리와. 난 너를 안고 많이 울어버렸지. 힘들어. 힘들단 말야. 모든 게 힘들어. 기억들이 힘들고,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 힘들고, 불면증과 세상에 섭섭함과 미움이 생겨 힘들고, 하루가 삭혀지지 않아서 또 너 때문에 힘들고, 난 너 못 키우겠어. 너 보낼 거야. 엉엉엉. 보듬고 우는데 너도 뭔가를 아나보더라. 가만히 내 가슴팍에 안겨 얼굴만 핥더니... 그 후 한 달은 더 같이 살았다. 예쁜 짓 많이 할 때쯤, 오히려 널 잘못 키워 미안해서 식구 많은 데로 널 보내기로 했단다.
어느 날 오후 출입문에서 만난 13층 경상도 할머니는 내게 미장원에서 파마한 내 머리보다 너의 곱슬털이 더 잘나왔다며
 “이름이 뭐? 사내라꼬?”
 “아니요. 샤넬이예요.”
부르기 어렵다는 말씀 끝에
 “우째 알고 깜둥이를 샀노.”
하시고선 연이어
 “잘 샀다 마, 잘 산기라. 개는 깜둥이가 훨썩 맛나.”
하실 때, 난 너의 긴 귀를 막아버렸지. 속없는 계집애. 무슨 얘기 하는지도 모르면서 촐랑거리더니....... 샤넬아. 사람동네는 좀 살벌하단다.
 떠나보낼 때 케이지 속에서 날 바라보던 두 눈의 애달픔을 난 알아. 내 모습 간직하고자 뚫어져라 보며 내 이름 불렀지. 이별이란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떤 경우라도 숨막히게 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사랑하니까 널 보낸다. 그 후 넌 소식 들으니 골목대장이 되었다며? 잘되었다 샤넬. 내가 잘 보냈다 싶어. 친구를 많이 만나. 꼭 행복해야 해. 지금도 많이 보고 싶지만 참는다. 전화에서라도 너의 멍멍 소리가 듣고 싶어.
 훗날 네가 갈 때엔 내가 장례 치러줄게. 걱정 마. 그리고 내가 갈 때엔 너도 와. 꼭 와. “난 니 친구아이가.”
잘 크렴.
201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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