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기다란 검정색 출석부에 관한 기억
공인영
중간고사를 며칠 앞두고 있던 때였다. 아침조회를 위해 교실 문을 열던 담임선생님은 그날도 마르고 구부정한 몸집을 가리고도 남을 헐렁한 곤색 양복차림이었다. 왕방울만한 눈동자를 굴리며 교실을 둘러보더니 검정 바탕에 노끈으로 묶은 기다란 출석부를 교탁 위에 펼치고 번호순대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또박또박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정자, 이정자 왔나?”
“네......”
모기소리만큼 작게 대답하던 정자는 어제 하루 결석을 했었다.
“앞으로 나와라.”
교단 앞으로 불려나간 친구는 선생님이 묻기도 전에 몸살이 나서 오지 못했노라고 했다. 우리들이 보기에도 아직 창백한 게 영 기운이 없어보였다.
뺑뺑이로 추첨된 고등학교는 집에서 멀어도 너무 멀었다. 덕분에 입학식 다음날부터 새벽같이 집을 나서야 했고 학교에 도착할 즈음에야 부옇게 밝아온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체격이 작고 멀미가 심한 난 버스 타는 일도 전쟁이었다. 한 차례 심호흡부터 한 뒤 힘 좋은 안내양의 뱃심에 의지해 버스 계단에라도 실려 가면 다행이었다. 아니면 터질 듯한 버스 창문을 뚫고 나온 직장인과 학생들의 짓눌린 표정에 기가 죽어 ‘다음에 다음에’ 하며 뒷걸음치다가 결국 지각을 해버린 날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가는 길엔 남학교까지 있어, 어디선가 우르르 올라탄 남학생들이 여학생들과 섞여 버스 안은 그야말로 묘한 냄새와 기운으로 숨이 막히곤 했었다. 학교 앞에 도착해 겨우 버스를 빠져나오고 보면 갈래 머리 한 쪽이 풀어져 있기도 하고 뽀얗게 빨아 신은 구두 속 흰 양말은 누군가의 발 도장에 얼룩져 울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온종일 힘든 수업을 마치고 당번들이 청소하는 동안 신주머니를 돌리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간 학교 앞 분식집은 우리들의 작은 쉼터였다. 라면 한 그릇으로 저녁을 때우고 유치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거릴 때면 잠시 수험생인 것도 잊고 즐거웠었다. 그리고 다시 자율학습까지 마친 뒤 교문을 나서며 깜깜한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보다가 핑, 하고 현기증에 어지러울 때도 꽉 채운 그 시간만큼 성적도 치솟아 줄 거라고 굳게 믿곤 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루고 싶은 꿈보다는 가야 할 대학에 매달려 경쟁하며 버텨내던 불쌍한 동지들이었다. 끼리끼리 어울리던 친구들은 성격도 비슷했다. 여리고 순한 건지 맹탕에 숙맥들인지 수업을 빼먹고 땡땡이를 친다든가, 몰래 영화관 한 번 가는 일 따위는 상상도 못했고 숨 막히는 입시시절에 대고 소리 한 번 내지르지 못한 소심한 영혼들이었다. 정자도 그 틈에 끼어 학교와 집만 오가던 착하고 평범한 친구였다.
“정자는 교단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앉아라.”
“.......................” 아니 이건 무슨 상황?
곧 시작될 일 교시 수업 준비를 하던 친구들은 이 갑작스런 광경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일제히 선생님을 쳐다봤다. 더 놀란 건 물론 정자였다. 겁먹은 표정으로 주춤하던 그녀는 담임선생님의 꽉 다문 입술과 실룩거리는 눈가 주름의 변화에 홀린 듯 그대로 교단 위로 올라가더니 스르르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었다.
“다 같이 손을 모으고 기도하자. 이 친구의 몸 안에 들어온 마귀를 내쫒아야 한다.”
“오 마이 갓”....
여자의 감성과 심리를 다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알 수 없는 신앙과 결부시켜 제자의 결석을 해석한 우리 선생님을 오호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아무리 남학교에만 오래 근무했고 더군다나 고 3 여학생은 처음이라고 쳐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침묵이 흘렀다. 선생님은 마땅한 듯 친구의 머리에 손을 얹더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때 소심하고 평범한 내게서, 남의 눈에 띄기는 더욱 좋아하지 않던 내 안에서 뭔지 모를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선생님, 정자는 시험 공부하다가 몸살이 나서 하루 쉬었던 것뿐인데 마귀라니요....”
이번엔 아까보다 좀 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눈을 치켜 뜬 선생님은 꾹 다문 입술을 한껏 구기며 내게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순간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싶으면서도 그러나, 아닌 건 아니잖아’ 라는 오기가 온몸에 확 돋았다. 일부러 당당한 척 걸어 나간 내 머리 위를 선생님은 순식간에 그 기다란 출석부를 들어 힘껏 내려쳤다. 작은 몸뚱이가 통째로 흔들렸다...
당연히 수업이 끝난 후 교무실로 불려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늘이 노래질 만큼 다리가 후들거리면서도 선생님과의 빳빳한 대치를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내 안 어디에 이런 배짱이 있었나 싶은 게 아주 조금은 대견한 게 감동까지 했던 것도 같다.
한참동안 날 투명인간 취급하며 일을 하던 선생님이 마침내 한마디를 하셨다.
“반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한테 대들면 안 되지...”
그리고는 조금 뒤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듣고야 ‘잘못했습니다’ 란 말이 내게서도 튀어나왔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가벼운 안도감과 함께 여전히 뭔지 모를 속상함으로 콧물 눈물이 터져나왔다.
새삼, 학창시절의 스승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 기억은 너무 오래 된 탓에 한껏 불어 만든 비눗방울이 영롱한 빛깔을 잃고 조금씩 투명하게 사라지는 것처럼 아련한 윤곽만 남겨놓았다. 인생을 잘 살아온 이들의 추억담이나 회상 속엔 훌륭한 스승이 자주 등장한다. 그게 참 부러우면서도 상대적으로 나를 가슴 깊이 감동시킨 스승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내 처지가 불쑥, 속상하고 죄스러워지기도 한다.
아주 작은 잠재를 부풀려 칭찬하고 격려했던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거창하진 않아도 역사에 관한 관심과 흥미를 갖게 하고 결국 그 분야로 전공을 택하게 해준 중학교 때의 역사 선생님,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사회에서 만나 큰 배움을 얻고 있는 선생님 모두 한결같이 고마운 분들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잊을 수 없는 분은 바로 고3때 담임선생님이다. 그분은 어쩌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 속 주인공이 되었고 그 일은 지금껏 씁쓸한 추억으로 남았지만 혹, 그날 스승의 그 한 마디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실천할 첫 기회를 이 제자에게 제공한 건 아닐까 애써 생각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날 이후 난 분명 무언가 조금 달라졌으므로.
< 한국산문 2013. 5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