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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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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    
글쓴이 : 조정숙    13-09-16 15:49    조회 : 4,988
                                       난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조정숙
 
구르는 가랑잎만 보아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는 소녀들의 감성도 무겁게 내리누르는 입시의 중압감과 무더위 앞에서는 처절히 무너지고 있었다. 학력고사를 몇 달 앞둔 고3 여름방학, 이 시간은 고교 시절의 마지막 방학이기도 하지만 부족한 성적을 보강할 수 있는 천금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3학년들은 방학도 없이 보충수업을 들어야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덕분에 유래 없이 3학년도 일주일의 휴가를 얻을 수가 있었다. 우리들은 짧은 방학을 알차게 보낼 저마다의 계획을 짜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치 이번 여름이 이 세상에 주어진 마지막 일주일인 것 처럼…….
탄금대로 제천 탁사장 모래 변으로 삼탄강으로 몰려다니며 고교시절을 함께했던 나를 비롯한 다섯 명의 친구들은 간 큰 휴가 계획을 세웠다. 충주고등학교 남학생 다섯 명과 함께 대천 해수욕장행을 도모하였다.
내 고향 충주는 지금은 호수의 도시로 변해있지만 30년 전만 해도 달천강 삼탄강이 가장 큰 물이었고 대부분의 친구들은 고등학생이 되도록 바다 구경을 한 번도 못하였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는 설레는 우리들의 가슴을 더욱 흔들어 놓았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자며 마냥 유혹을 해 댔다. 마침내 우리들은 겁도 없이 젊음이 넘치는 해변을 구경하러 텐트와 배낭을 짊어지고 대천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수평선은 대체 어떤 것일까? 갈매기는 정말로 끼룩끼룩 울까? 해변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을까? 조개껍질을 묶어 목걸이도 만들어 봐야지.
첩첩이 쌓인 산봉우리만 보고 자란 우리들은 가는 동안 내내 행복한 상상에 빠져있었다.
우리학교(충주여고) 교칙은 유난히 엄해 사복차림으로 시내만 나가도 정학처분을 받을 정도였다. 아침마다 음악실엔 빵집에서 걸려온 아이들, 극장에서 걸려온 아이들이 반성문을 쓰기에 바빴고 교무실 옆 게시판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교칙을 어긴 학생들의 이름이 나붙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학생과 짝을 맞춰 떠난 우리들의 휴가는, 적발될시 최소한 무기정학 내지는 퇴학 감이었다.
무리수를 두는 일에는 항상 ‘설마’라는 단어가 스스로를 설득시키기 마련이다.
‘설마, 충주에서 대천이 얼마만한 거리인데 절대로 들킬 일은 없을 거야.’
몇 군데의 도시를 경유한 시외버스는 먼지 풀풀 날리는 논두렁길을 지나 하늘의 시야가 점점 넓어지는 바다 쪽을 향해 달렸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백사장에 우리를 내려놓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먼지만 남긴 채 사라져갔다.
몇 시간에 걸친 버스 여행의 피로도 남학생들과 짝을 맞춰 캠핑을 왔다는 불안감도 파랗게 펼쳐진 바다와 드넓은 모래사장을 보는 순간 깡그리 씻겨졌다.
“야 ! 바다다!
저마다 등에 한 짐씩 캠핑용품을 짊어진 우리들은 바다를 향해 내달렸다. 교실에 쳐 박혀 입시 공부에 찌들었던 머릿속을 시원한 바닷바람이 말끔히 비워 주는 듯 했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분명 산골마을의 풀 냄새 나는 그 것과는 달랐다.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듯한 바람은 날리는 머리칼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땀을 씻어주었다.
그렇게 선두로 달려 나가던 친구 하나가 갑자기 장승이 된 듯 멈춰 섰다. 그리곤 가던 발길을 돌려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손으로는 빨리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며 입을 틀어막고 쇳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얼핏 봐도 빨리 도망치라는 신호가 분명했다.
얼마를 달렸을까? 백사장 아래편으로 도망을 친 우리들은 그 친구로부터 청천 벽력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달려 나가던 모래밭 바로 앞에 우리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들이 짐을 풀고 있었던 것이었다. 며칠 전부터 선생님들이 야유회를 가신다는 소문이 좀 찜찜하기는 했지만 ‘설마’로 무시 했던 것이 현실 앞에 나타나고 말았다.
이미 막차도 끊겨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몸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에 떨며 텐트를 쳤다. 엄청난 거리를 뛰어 왔기에 선생님들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혹여 산책이라도 하느라 이곳까지 온다면…….백사장의 아저씨들이 다 선생님으로 보였다.
남학생 여학생으로 나눠 텐트 안에 몸을 숨긴 우리들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밥도 굶으며 그렇게 밤을 새워야 했다. 텐트 밖으로 나가면 금방이라도 선생님들과 마주칠 것 만 같았다. 텐트 지퍼를 내리고 내다본 해변에는 정말로 무수한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텐트 안에는 한숨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평소에 마음을 두었던 y와 해변도 걷고 대학 진학 후 캠퍼스에서의 미래도 함께 꿈꾸어 보려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조개껍질 목걸이를 선물 받아 첫눈이 올 때 까지 간직하고 싶었던 즐거운 상상도 후덥지근한 텐트 속에 갇혀버렸다.
부모님께 친구집에 간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감행했던 휴가는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우리들은 풀지도 못한 짐을 다시 짊어지고 시외버스 터미널을 향하는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버스안의 분위기는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았다. 마치 어퍼컷(uppercut) 을 한 대 맞은 사람 모양 모두들 입이 퉁퉁 부어있었다.
아까운 일주일의 휴가는 그렇게 속절없이 어영부영 지나고 우리들은 학교로 돌아왔다.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이면 가끔 대천 해수욕장에서의 야유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파도 이야기 갈매기 이야기, 그리고 별이 쏟아져 내리던 해변이야기를…….
도둑이 제발저리다고 나는 우리들이 한 일을 알고 계신 것 같아 선생님이랑 눈이 마주칠 때 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편으로 선생님들이 밉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전설 같은 바다이야기를 들으며 여름이 가고 가을을 보내고 우리들은 대학에 진학을 했다.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한몫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면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하며 배꼽을 쥐고 웃곤 한다. 두근거림으로 바다를 함께 누려보고 싶었던 y도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공하여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때 만일 선생님들을 마주치지 않았다면 몇 커플 정도 탄생하지 않았을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내달리던 젊음은 어디로 가고 어느덧 머리위에 하나 둘 흰 서리가 내려앉은 중년의 고갯길을 넘어서고 있다.
오늘 문득 그들이 그립다.
그 바닷가에는 아직도 별들이 무수히 쏟아져 내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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