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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욕의 역사도 역사다    
글쓴이 : 백춘기    14-04-29 09:08    조회 : 5,608
치욕의 역사도 역사다
                                                                                              백 춘 기 2013.1
 
지난 1992년 중앙청 건물이 완전히 철거 되었다. 철거이유가 총독부 건물이었기 때문에 일제잔재를 소탕한다는 것이 철거 이유였다. 일본의 침략과 그 역사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그 역사까지 없애는 것이 올바른 일이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이며 자랑스러운 역사도 역사이지 않는가! 그 당시 어느 건설회사에서 건물을 자비로 철거하고 다른 장소에 이전하여 역사의 교육장으로 남겨 두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벽돌 한 장도 남겨두지 말고 부셔버리라고 지시한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어떤 상징물이나 기록을 없앤다 해서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치욕의 역사라 하여도 인멸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상징물이 하나 있다. 서울 석촌호수 서호 한편에 자리한 비석 삼전도비(三田渡碑)’가 그렇다. 본래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 1636년 인조때 청나라 태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했다. ‘병자호란이다. 남한산성에 머물며 항거하던 인조는 결국 청나라 군대가 머물고 있는 한강변 삼전도 나루터에서 강화협정을 맺었는데 우리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이다. 인조는 군막의 높은 자리에 앉은 청나라 태종을 향하여 청의 관복을 입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박고 조아리는 항복의 의식, 즉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행해야만 했다. 우리의 역사에서 수난을 당한 여러 사실들 가운데 근대에 있었던 1910년 한일 합병 다음으로 가장 큰 최악의 굴욕을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후에 청의 세력이 약해지자 부끄러운 역사를 인멸하기 위하여 비석을 강물에 수장시켰는데 1913년 일제가 한강에서 꺼내 다시 세웠다고 한다. 1955년 문교부는 치욕의 역사물이란 이유로 땅에 묻어버렸다. 그 후 1963년 대홍수에 모습이 드러나자 석촌공원등 여기저기 몇 차례 옮겨졌다가 지금은 호숫가 소나무 숲속에 숨겨져 있듯이 서 있다. 송파대로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누가 볼세라 안내 표지판 하나 없다. 하루에 수천 명이 석촌 호숫가를 걸어도 삼전도비가 그곳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더구나 삼전도비가 청나라 태종을 칭송하는 굴욕적인 비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북경의 자금성에 가면 308개나 되는 커다란 항아리가 건물 주위에 곳곳이 놓여 있다. 항아리의 용도는 물을 가득 채워 궁궐의 화재 진압용으로 쓰였다. 처음에는 항아리 하나에 100냥의 황금으로 도금되어 있었다.1900년 의화단의 난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했을 때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군이 대검으로 도금을 긁어내어 그 모습이 흉측스럽게 변하였다. 중국 사람들은 그 모습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역사에 저런 일도 있었다는 것을 후세에 교훈 삼도록 남겨 두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이고 교육이다. 치욕적이고 부끄러운 역사지만 그것이야 말로 가장 좋은 역사교육장이 아니겠는가! 만약에 우리나라에 그런 것이 있었다면 새로 도금하거나 없앴을지도 모를 일이다.
 
1988년도에 아파트 건설이 한창일 때 주택연구소에서 아파트의 하자와 부실시공 사례를 모아 아파트의 하자 원인분석과 대책에 대하여 관련학회에 발표한 일이 있다. 당시로서는 처음 있는 파격적인 일로 학계에서는 환영받았으나 경영진에 불려가 크게 질책을 받고 말았다. 그런 발표를 하면 마치 우리기관에서 건설하는 아파트가 모두 부실시공 아파트라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후에 다른 기관이나 업체에서도 실패사례 발표가 보편화되어 시공기술이 발전하고 하자도 덜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 받았다. 건설시공 기술뿐만 아니라 모든 제품생산에서도 하자나 제품 불량사례를 감추지 않고 분석하고 연구하여야 더 좋은 제품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삼전도가 가르쳐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치욕과 더불어 치욕의 역사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럽다고 해서 피해버릴 문제가 아니다. 대만은 51년간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나 우리의 중앙청 건물과는 달리 수도 타이베이에 대만 총독부 건물이 건재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철거된 중앙청의 첨탑과 일부 부자재만이 현재 천안의 독립 기념관 야외에 자리한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에 전시 되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서양식 건축물의 대표작이었던 것을 원형대로 이전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역사와 문화유적 앞에 찬란한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익숙하다. 찬란한 문화유산이라는 틀은 부끄러운 과거는 지워버려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 놓았다. 전통을 무시하고 부끄러운 과거를 외면하고 지우기만 한다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는 사라지는 것이다.
 
 
한국산문 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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