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반주에 맞추어 조용필의 ‘꿈’이 리듬을 타고 있었다. 글 솜씨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선배님께서 자연스런 율동으로 곡조를 이끌고 계셨다. 금년 송년회에서 함께 노래할 곡목이라고 한다. 감격스럽게도, 오래 되신 선배님들을 위시한 거의 모든 분들이 스스럼없이 노래를 따라하고 있었다. 맑은 가을 하늘을 뒷전으로 매주 글쓰기를 배우려고 출석하는 문우들이 내겐 용감한 전사들 같았는데, 이제는 무대에 올라 노래와 춤까지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코끝에 매달리는 쌉쌀한 바람에 실려 여기저기에서 송년회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올해 날씨는 진정 초고속시대에 맞추려는가 보다. 봄을 대충 뛰어 무더위로 긴 업데이트를 하더니, 가을바람일랑 감질 맛만 보여주곤 어느새 냉기 검색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직도 지난 학기의 걸음마를 다 떼지 못했는데 서둘러 한해의 끝자락을 밟고 가라 하니, 나에겐 너무 성급한 시간들이 아닌가.
송년모임 프로그람을 의논하기 위해 수업시간 삼십분 전에 모이라는 통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영부영 십오 분이나 늦어서야 합류했다. 미리 오신 분들은 대부분 그 동안 열심히 글을 써오신 분 들이었다. 그분들에게는 매년 돌아오는 이 행사가 한해의 결산을 의미하는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모두가 참석해야 한다는 말에는 수긍하면서도, 나는 웬일인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어졌다. 꼭 다작이어야 하는 것은 아닐 터이지만, 수강한지 세 학기나 지났으니 몇 편은 더 써 놓고 가무歌舞라도 한다면 훨씬 느긋할 일이었다.
2000년 중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젠高行楗이 홍콩의 중문대학에서 강연한 ‘문학과 언어’ 에는 ‘작가는 먼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 즉 마음의 필요를 느껴야만 한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그의 말은 그간 부지런히 쓰지 못한 나를 정당화 시켜주는 듯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움직일 만한 문학적 소양과 환경을 스스로 부여해 오지 못한 것에 대해 일깨워 주는 바가 있었다. 특별히 마음의 욕구까지는 일지 않아도 좋으니, 나는 그저 작은 느낌이라도 붙들고 한번 초등학교 때처럼 천연덕스럽게 원고지 위를 미끄러져 가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이러닉(ironic)한 것은, ‘인생의 반 이상을 산 지금은 좀 더 심오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의외의 생각 때문에, 그런 자연스런 충동마저도 종종 꼬리를 내렸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뻑뻑해지니 자연 느낌도 헐렁해져서 한 뭉치의 끊어진 필름만 눈앞에 왔다 가곤 할 뿐이었으니, 이젠 마음이란 목석에게 노래라도 한번 불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조용필의 곡을 다시 만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칠십 년대에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 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 때 잠시 흥얼거려 보았을 뿐, 해외 이주에 코가 빠져 곧 그의 이름 석 자를 잊어버렸다. 발라드 곡들이 범람하던 팔구십 년대를 훨씬 지나 귀국하였으니 나에겐 가히 우리 대중가요와의 결별기라고 할만 했다. 그 간에 음반이 나온 이 ‘꿈’이란 노래도 그래서 나에겐 생소한 것이었나 보다. 물밀듯이 변화하는 가족의 성장기에 편승하여 가는 동안 노래 부르기는 글쓰기만큼이나 관심사가 아니기도 했다.
이제 강산이 두어 번 바뀐 뒤에 다시 만난 가요왕의 짜랑짜랑한 목소리가 흘러간 시간을 되돌려 주듯 애절함을 되새김 시켜준다. 집에 오자마자 가라오케 프로그람을 열어 ’꿈‘이라고 쳐보니 반주와 함께 악보가 떴다. 대충 흥얼거리기에 무리가 없어 보이는 이 곡은, 막상 마스터 해보려니 그 속엔 자칫 놓치기 쉬운 디테일(detail)들이 만연해 있었다. 작은 파편과도 같은 세밀함이 내비치는 한두 곳을 만나는 순간 곡은 야릇한 홍조를 띠기 시작한다. 단조로운 멜로디 같으면서도 들릴 듯 말듯 가사의 어미에 살짝 꼬리를 달아주거나 중간에 연음처리로 늘리거나 당겨주는 그의 작곡법은, 쉬운 소재로 담담하게 쓰인 글귀의 여기저기에서 반짝이는 적절한 감성 언어에도 견줄 만 했다. 이런 곡이라면 한번 쯤 내 것으로 만들어 노래 부르다 보면, 불현듯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책장을 덮듯 노랫가락에 완完을 주려던 순간 무엇인지 모를 호기심 하나가 다시 곡을 열어 보게 했다. 아직도 그곳엔 신비스러운 멋이 한두 군데 숨어 있었다. 전주가 어떤 꿈을 예고하듯 흐느적거리자 곧 주 멜로디가 반복되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후렴을 기다리는 간주가 시작되었을 때였다. 간주의 조는 완전히 바뀌어서 곡조는 다른 분위기를 향해 갈팡질팡하는 듯했다. 주 멜로디와는 전혀 매치 되지 않는 분열 음으로 먼 곳으로 흩어지다가, 다시금 흐느적흐느적 주제를 향해 되돌아오고 있었다. 화려하고도 쓸쓸한 도시에서 한참을 방황하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는 탕아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격렬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참을 끌리어 가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소절은 잇따를 후렴의 친숙한 곡조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오기 전까지 벌어졌던 그 간주 음들의 엑소더스(exodus)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글 쓰는 이가 마음의 필요를 다시 느끼기까지 한 번 쯤 떠돌았을지 모를 어떤 공백기에 견주어져지는 듯해서, 나는 자꾸만 그곳을 되돌려 들었다. 그 소용돌이는 이상하리만치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무엇을 준비시키기 위해 그렇게 사람을 한참씩 몰고 다녔을까.
어느새 곡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또 하나의 이색적인 결말을 맺기 시작했다. 음악이론은 잘 모르지만 엔딩 파트가 살짝 단조의 가락으로 느려지는 것을 간과하지는 않았다, 마치 끝나지 않은 꿈의 잔상을 흘려주는 듯 했다. 글의 마지막 단락도 이와 같이 여운이 남아야 하는 것일까. 과연 글의 끝맺음에서 알아 차려야 할 독자의 몫은 따로 있는 것일까.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멜로디와 가사가 점점 더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여기에 걸맞게 준비되었을 은밀한 카리오그라피( choreography)를 그려보며 슬그머니 미소 지어 본다. 이젠 나도 주저하지 않고 노래 부르기에 가담할 수 있을 것 같다. 간주라는 빈 공간에서도 한번 놀아보았으니, 잠시 잃어버렸던 제 곡조를 찾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긴 시간 동안 허공 속에 맴돌기만 하던 나만의 언어들도 이제는 쉽사리 노래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