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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정의 진혼곡    
글쓴이 : 김순례    14-06-30 17:29    조회 : 8,975
모정의 진혼곡
 
 아~아악!
 짧고 외진 한 마디가 작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다세대 주택들이 구석구석 들어와 있는 서울 외각의 골목길에서 일어난 일이다.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어른들은 출근을 하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 있을 시간이다. 자영업자인 우리는 늦은 출근을 위해 대문 앞에 주차한 차를 후진해서 다시 전진하려는 순간 바퀴 밑에서 조그만 물체가 움직인다. 남편이 차를 빼내어 조수석에 타려고 건너편에서 기다리던 나는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요즈음 동네 구석구석 야생고양이가 늘고 있어 지자체에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밤길을 걷다가도 소리 없는 고양이가 눈앞에 나타날 때면 흠칫 놀라는 횟수가 늘고 있다. 주택들이 개량되고 도시화되면서 먹이 사슬이 끊긴 고양이는 음식물 쓰레기를 취해 생명을 이어가는 추세이다. 나름대로 지자체는 지역구급대와 함께 야생고양이들을 잡아 생체수술을 통해 더 이상의 증식을 방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나날이 늘고 있는 그 숫자를 다 감당하기는 벅찬 실정이다. 수술을 한 고양이는 한쪽 귀를 조금 잘라서 표시한다. 야생고양이는 2년에 2~3회 정도 수태하며 65일정도 지나면 새끼를 낳는다. 야생고양이들은 주로 지붕 위나 담들을 타고 이동하며 자동차 엔진 밑 따뜻한 기운을 찾아 웅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겨울 자동차 엔진 밑은 그들의 최고의 보온장소다. 대도시에서 특히 자동차 밑은 그들이 몸을 피하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나른한 7월 어느 날 아마도 낳은 지 얼마 안 된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어미가 산책을 나와서 자동차 밑에 아가들을 놓고 어미는 먹이 사냥을 간 모양이었다. 누런색 새끼 두 마리가 즉사하고 검정색 새끼만 남아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꾸물거리고 있었다. 그때 새끼의 우는 소리를 듣고 나타난 누런 어미고양이가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몸을 움츠리며 슬픈 곡을 하고 있었다. 순간 당황스럽고 소름끼쳐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나보다 더 겁이 많은 사람이라 차에서 나와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발이 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남편은 창문만 열고 늦었다는 핑계로 어서 타라고 눈짓을 한다. 나 또한 놀라고 황당해 차를 타고 골목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머리끝이 쭈뼛해지고 뒤에서 내 머리채를 잡아채듯이 뒤가 켕겼지만 골목을 빠져나오기 급급했다. 집에 있는 대학생 두 아들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곤 뒷수습을 부탁했다. 군대를 다녀온 녀석들이라 잘 해내기를 바라며……. 하지만 자꾸만 그 장면이 눈에 아른거렸다. 특히 어미가 눈물까지 흘리며 애절하게 우는 모습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부터 우리들의 피 말리는 사투가 벌어졌다. 아파트에서 이사한지 한 달도 안 되어 주택가의 발정 난 고양이울음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려 힘들어하던 때였다. 그런데 거기 더해서 아침저녁으로 어미의 진혼곡소리가 온 동네를 울렸다. 울음소리도 평상시와는 다른 구슬프고 가녀린 목소리로 밤낮없이 천지간에 울려 퍼졌다. 남편은 범인, 나는 살생 방조죄, 아들들은 사체 유기죄, 우리가족들은 공범죄로 그 구슬픈 울음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시선을 두고 창문을 열어 확인해 보게 되었다. 그때마다 어미는 아가들이 죽어가며 흘린 피 뭍은 흔적이 남아있는 바닥을 핥으며 애달프고 구슬픈 곡을 하염없이 가슴에서 토해 내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도록 곡은 계속되었다. 먹지도 않고 나날이 삐쩍 말라가는 어미를 보면서 공범자인 우리도 죄책감에 같이 피 말라 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슬쩍 참치 통조림을 갖다놓기도 하고 빵을 던져 놓기도 했지만 관심도 없는 어미는 그저 통곡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 TV프로 ‘동물의 왕국’에서 동물들의 모성(母情)에 대해 집중 조명하는 것을 시청한 적이 있다. TV가 아닌 내 눈앞에서 한갓 미물인 고양이 한마리가 자식을 잃은 고통에 그토록 오래 식음을 전폐하고 구슬프게 울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가해자가 아닌 나 또한 어미로서 가슴에 동종의 통증이 느껴졌다. 밤이건 새벽녘이건 시도 때도 없는 얄궂은 곡소리가 들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눈에 띄게 비쩍 야위어가는 어미를 보며 그 장소가 바로 보이는 2층 창가에서 나는 저절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저 어미의 슬픈 눈물을 기억하시고 가엾은 어린 혼을 지켜주소서. 나 또한 어미인데 우리가 죄인입니다. 모든 것을 하루속히 잊고 남은 새끼 거두어 잘 살게 하여주소서.’ 우리 가족들은 회의를 한 끝에 지역구급대에 알리기로 했다. 일단 몸이라도 추스르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몇 해 전 중국에서 선교를 하고 있던 언니의 딸(당시 27세)이 새벽녘 친구의 생일파티를 끝내고 돌아오는 택시에서 기사의 졸음운전사고로 청춘의 꽃도 못 피우고 하늘나라로 갔다. 어이없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 앞에 차마 울음소리도 안 나와 꺼이꺼이 넘어가던 언니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떠올랐다.
2014년 잔인한 4월, 세월호 대참사 앞에서 아무 손쓸 수 없이 넋 잃고 오열하고 있는 수많은 어미의 얼굴을 보았다. 그 부모 앞에 보상금 운운하며 하루속히 무마시키려는 정부의 늑장대응과 이미 예정 되었던 재난에 대한 얄팍한 정책들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아이를 잃은 엄마의 각혈하는 절규를 보며 야위어가던 언니와 고양이의 슬픈 얼굴이 오버랩이 된다. 졸지에 사건 사고로 어이없이 이생을 달리한 자식의 운명은 형언 할 수 없는 마음속 커다란 옹이로 박혔다. 그 어떤 위로와 토닥임도 그 순간은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실감하는 정황들이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천지간 구분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시대와 동서고금을 초월한 모정(母情)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으리라.
 하나님께서 너무 바쁘셔서 모든 피조물을 고루 돌보시기가 힘들어 ‘엄마’라는 천사를 개개인에게 보내어 하나님 대신 그 마음으로 보살피게 했다는 말이 있다. 육신의 어미가 통곡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피눈물을 흘리며 애달파 하리라. 모정은 쉽게 그 어떤 것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귀한 감정임을 일깨우는 말 아닐까.
 연일 TV에서 쏟아내는 뉴스 속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지난여름 내 가슴에 지문처럼 남아 있는 새끼 고양이의 죽음에 대한 어미의 진혼제가 다시 떠오른다.
 
 며칠 전 우연히 골목어귀에서 그 고양이를 다시 만났다. 살이 통통 올라서 다른 고양이 인줄 알았다. 귀를 보니 한쪽이 살짝 잘려있는 것이 분명 그 고양이였다. 아픔을 딛고 겉모습은 평온한 듯 짝 짖기 철을 맞아 다시 얄궂은 울음을 울어대고 있었다.
                                                           (2014.4.25)  ≪한국 산문≫ 2014.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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