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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과 함께    
글쓴이 : 윤기정    25-02-06 23:31    조회 : 82

                                      뱀과 함께

 소금 뿌린 미꾸라지처럼 자지러진다. 팔딱일 때마다 비늘에서 햇빛이 튀었다. 두 개의 몸뚱이가 이내 빗물받이 홈통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몇 년 전 여름 한날, 길 건너 김 선생 집에서 그와 함께 장작더미 틈으로 사라진 뱀을 수색했다. 장작개비를 하나씩 내렸다. 장작더미가 한두 층 남았을 때 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서두르지 않는 품이 뙤약볕 아래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듯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놈은 한가했고 사람의 가위질은 날래고 단호했다. 커다란 가윗날, 흐트러진 장작, 마당 가 나뭇잎이 반짝였다. 두 동강 난 몸뚱이도, 김 선생의 땀방울도 반짝였다. 한 생명이 끝날 때 세상은 지나치게 반짝였다. 마당에는 두 사람의 긴 그림자와 고요만이 남았다.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사는 양평 집에서 뱀을 만난 적은 없었다, 긴 가뭄이 이어지던 몇 년 전 여름까지는. 한낮에 잔디밭을 미끄러지는 뱀을 만났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뱀도 나도 동작을 멈췄다. 눈이 마주쳤다. 그 눈에 어느 여름, 홈통 속으로 사라지던 눈빛이 겹쳤다. 간절함도 사라진, 악의 없는 눈빛이었다. 전정 가위 대신 부지깽이를 들었다. 대가리 아랫부분을 꼭 집어서 대문 밖 콘크리트 집수정(集水井) 뚜껑 틈으로 던졌다. “우리 제발 마주치지만 말고 살자.부탁했다. 다시 만난 일은 없었으니, 부탁은 한동안 통한 셈이다.

 지난여름 밭일 마치고 손 씻으려 수돗가로 가는데, 한 발짝 앞에서 무언가 집수정 안으로 급하게 뛰어들었다. ‘혹시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았다. 서늘한 예감은 왜 틀림없는지. 한 뼘은 넘어 보이는 크기의 뱀이었다. 느닷없는 추락에 놀랐는지 연신 벽면을 튀어 오르려 가망 없는 도약을 하더니, 벽의 높이를 절감했는지 바닥 가까이 뚫린 배수관으로 사라졌다. 몇 년 전 녀석은 이놈보다 길었으니 그 뱀은 아니었다. 부탁은 같았다. ‘우리 제발 마주치지만 말고 살자.’ 맨발에 슬리퍼 바람으로 마당에 나가지 말라고 아내에게 주의를 주었다.

 낙엽의 계절이 왔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다. 낙엽을 쓸다가, 화단과 덱 사이에 의자처럼 만든 나지막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꼼짝도 하지 않는 뱀을 보았다. 뱀과 마주치는 일은 촌에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인기척을 느꼈을 텐데 움직임이 없다. 떨어진 기온이 찬피동물인 녀석의 운신을 어렵게 했나 보다. 낙엽부터 처리하고, 집 밖에 내다가 버리기로 작정했다. 낙엽 더미에 낙엽을 붓고 돌아가 보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맞춤한 겨울잠 자리를 그새 마련하지는 못했을 텐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세 번의 만남이 큰일 없이 지나갔다.

요즘 뉴스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어느 정치인의 동료는 그를 뱀 같은 사람이라고 다른 동료에게 말했단다. ‘뱀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발 없이 몸으로 꿈틀대며 기어다니는 사람은 아닐 테고, 거짓으로 남을 꾀는 사람일까? 비정한 인간이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두 가지 다든가. 뱀은 긴 몸뚱이의 징그러운 움직임이 때문인지 좋은 의미로 사람들 입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 서양 신화에는 지혜, 재생, 치유의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사람의 부정한 성정이나 행위의 상징으로 드는 경우가 훨씬 많다.

 뱀은 물론, 뱀 같은 사람과도 함께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뱀 같은 사람은 물론 뱀도 홀대할 권리는 없다. 목숨을 빼앗는 일은 더구나 안 된다. 그들도 세상에 존재할 이유와 역할이 있을 것이다. 나라에서 야생동물 보호법으로 뱀을 잡거나 사고파는 행위를 막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우리 판단의 오류도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뱀을 무서워하고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만약 뱀이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사람과 마주치는 일을 어떻게 볼까? 뱀들이 인간처럼 욕심 많고, 죄짓는 일 서슴지 않고, 사람, 아니 뱀 차별하고, 거짓 일삼고 걸핏하면 다투고, 남 생명 빼앗는 일 가벼이 여기고, 잘못 저지르고도 뻗대는 뱀을 보면 뭐라 부를까? 틀림없다. 어휴. 저 인간 같은 뱀이라니 하며 갈라진 혀를 끌끌 찰 것이다. 얘들아. 그러니 같이 사는 건 좋다마는 우리와 마주치지 말거라. 우리가 너네보다 더 무섭거든.

 올해는 을사(乙巳), 뱀의 해다.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음을 뜻하는 형용사가 을씨년스럽다이다. 이 말의 유래가 120년 전, 일본과 맺은 을사늑약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나라를 빼앗긴 을사년의 암울한 상황을 가리키던 을사년스럽다는 표현이 을씨년스럽다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진위를 떠나서 올 을사년은 을씨년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뱀과 함께, 또 따로 살면서,

2025. 2.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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