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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의 3단 콤보    
글쓴이 : 김영도    24-05-18 23:41    조회 : 912

내 이름의 3단 콤보

김영도

 

 

, 여자분이셨네요. 이름만 보고 남자인지 알았어요.”

도서관 강좌에서 첫 출석을 부르던 강사가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얼굴을 확인한다. 내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의 열에 아홉이 보이는 반응이다. 뒷자리 어디선가 오호, 이영도하고 이름이 같네. 시를 잘 쓰겠다.”라는 소리가 들린다. 으레 따라붙는 후렴구니까 익숙하다. 마지막으로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들릴 차례다. “부산이 고향인가?”

처음으로 이름을 밝히는 자리에서 자주 일어나는 3단 콤보다. 이름만으로 만들어지는 내 정체성은 시를 좀 아는 부산이 고향인 남자로 완성된다.

우리 네 남매 이름은 전부 아버지가 지었다. 태어난 아이의 성별을 보고 짓는 것이 아니라, 태아일 때 아들용, 딸용 두 개의 이름을 미리 지어 두었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급한 당신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빠, 언니에 이어 세 번째 자식을 가진 엄마의 입덧은 유별났다. 아들과 딸이 50% 확률로 정해질 터인데 어쩌자고 아버지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아들이라고 믿었을까. 작정하고 아들 이름만 지어놓고 딸일 경우는 고려하지 않았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섣달 열엿새 아침 해보다 조금 빠르게 얼굴을 드러낸 것은 딸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아버지는 밤늦은 귀가로 서운함을 드러내더니,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출생신고를 했다. 이름만 보고 남자인지 알았다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뿌리 깊은 오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시인 이영도를 들먹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문학적 소양이 높다고 자랑하는 듯하다. “유치환의 애인이었잖아요. 알지요?”라며 은근한 눈길을 보낸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인을 자신은 알고 있다는 의기양양함이 뿜어져 나온다. 유치환과 20년간 연서를 주고받은 사람이 마치 나인 듯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을 보면 없는 애인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민망한 고백을 하자면 둘의 애절한 사랑을 알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라는 청마의 시를 내가 받은 듯한 설렘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이름이 같으니 시를 잘 쓰겠다는 근거 없는 추측은 뜬금없다. 한때 문학소녀의 감성으로 시인을 꿈꾼 적이 있었으나 아직 제대로 된 시 한 편 쓰지 못했으니 얼굴이 붉어질 뿐이다.

말로만 듣던 부산 영도다리를 직접 본 것은 몇 년 전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이 부산 영도다리에서 주워 온 아이라고 놀린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한 다리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대학을 다니면서 부산에 갈 일이 많았지만, 영도다리를 떠올리지 못했던 것은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반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몇 해 전 부산에서 한달살이를 했다. 국립 부산 해사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흡연 문제로 기숙사에서 쫓겨나는 참사가 일어났다. 한 달간 퇴소 조치를 받아서 급하게 하숙집을 구해 함께 지냈다. 영도구 하리에 있는 하숙집이었다. 실체를 보지도 못하고 싫어했던 영도다리를 대면할 운명이었나보다.

영도다리는 일제강점기인 1932420일 착공되어 19341123일 준공되었다.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유일한 도개교로서 2006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된 뜻깊은 명물이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도개교라는 사실에 어깨에 뽕이 들어가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마치 다리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뿌듯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유라리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딸의 손을 꼭 잡은 어머니, 이마에 주름이 깊게 새겨진 아버지와 작은 보따리를 안은 아이가 서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 가족의 동상이다. 전쟁의 북새통 속에서 헤어지면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니 만남과 희망의 상징이 되었겠지.

영도다리가 품은 것이 희망만은 아니었다. 고달픈 삶에 지친 사람들과 전쟁 통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삶의 끈을 놓아버린 눈물의 난간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의 굴곡진 삶을 묵묵히 지켜본 영도다리가 최원준, 김광균, 윤진상 등 여러 작가의 시와 소설에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쯤 되니 내가 문학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어쩌면 이름에 따른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영도는 청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시비가 있는 청도 오누이공원과 내가 사는 경산이 지척인 것도 우연이 아닌 듯하다. 여자 이름으로 드물게 쓰는 영, 자로 한자마저도 같다. 청마와 같은 정인情人을 만날 수는 없으나 애절한 연시 한 편쯤은 읊을 수 있지 않으려나. 굳세어라 금순아를 비롯한 유행가와 다수의 문학작품에서 내 다리를 언급하고 있으니 이미 문학적이라고 우겨볼 만도 하지 않은가.

 

 -<시선> 202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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