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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박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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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筆寫)의 힘    
글쓴이 : 박병환    15-06-22 08:22    조회 : 5,630
                  
 무조건 읽자. 읽다 보면 답이 보일 거야.
 삼십 대 중반 늦깎이로 나는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은 나를 바른 생활 선생님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냥 지나칠 때 학생들을 보면 바른 생활 선생님 뒤에 그 무언가 말줄임표를 숨기고 있는 듯하였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머리는 이해하는데 가슴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떡해요.’라고
 IMF를 겪은 뒤 우리 사회는 투명성과 경쟁, 정보화 사회가 밀물처럼 휩쓸려왔다. 당시 사회에선 학생들을 X세대로 칭하며 그들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기성세대는 의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대중 매체들은 연일 열변을 토해냈다.
 어떡하나? 옛 속담에 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야 한다고 했는데’, 하지만 한편으론 억울했다. 내 학창시절도 산업 사회 불꽃이 여기저기 피었었고, 거기에 맞는 인간이 되려고 선생님들의 생각과 지식을 주문 외우듯 필사했었으니, 그대로만 하면 멋진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것이다.
 며칠을 고민한 후 내게 잡도리를 하였다. ‘바꿔라, 바꾸지 않으면 네가 떠나야 하는 게 이치가 아니니?’
 지역 소재 군립도서관으로 갔다. 신세대에 관한 것이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중요한 문장이 나오면 그대로 필사를 했다. 그렇게 책, 오백 권을 읽었다. 신세대가 보였다. 그들은 열정적이며 개성적이고 감각적이었다. 하고 싶은 것에 관심을 보이고 K-POP을 좋아하고 옷과 신발도 유명 메이커만을 선호하고 특히 효율성을 따지는 경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문득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모르면 외워라. 그 뜻이 뭔지 알려고 하지 마라. 외우다 보면 언젠가 소리가 들린다. 길을 같이 가려면 그 정도 공()은 들여 줘야 한다. 그러니 부지런히 필사해라.”
 TV를 볼 때도 K-POP 프로를 매주 보며 순위를 외웠고, 인터넷을 통해 가수 이름도 외웠다. ‘빅뱅을 소개한 책과 게임 왕 임요한이 쓴 나만큼 미쳐봐도 읽었다. 딸내미에게는 유행하는 옷과 가방 등을 물어보았다. 또한, 경제 분야 책을 읽었다. 금융 자본주의 시대가 된다는 것과 유비쿼터스 시대 도래, 소비 트렌드를 주문 외우듯 필사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하나씩 풀어놓으니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이들은 복도를 걸어가는 나에게 밝은 인사와 함께 농담을 건넸다. 그럴수록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나의 사명감이 되었다. 드디어 내가 보였고 아이들이 보였다. 그것은 좋아하는 대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주체성을 갖는 것이 자기 삶이라는 걸 아이들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어느덧 오십 줄에 들어 선 지금, 가슴속에 압축시켜 놓은 필사란 단어를 풀어 놓고 싶다. ‘필사란 단지 베끼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기본을 알아 가는 의식(儀式)이었다. 앞선 이의 지혜를 자기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인간의 성장 단계와 닮아있다. 요즘 덴 소 날치듯하는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마지막에 해주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책을 그대로 필사해서 그 이야기를 너의 마음속에 꼭꼭 담아 보라고, 벅찬 감동으로 다른 사람 이야기를 간직해 봤어야 너의 이야기도 가슴 벅찰 수 있는 거라고,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눈은 차차 맑아진다.
 
                                                                          
                                                                          [월간 에세이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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